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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23. 2020

백 번째 시시콜콜

< 생활 편 >

백 번째는 특별하니까, 특별한 주제를 준비하고 싶었다.

백번까지 오는데 코로나 주제가 유독 많았으니 코로나 특집을 준비하자고 마음먹었다.

< K방역은 실패했다.>  혹은  < 코로나 19에 대한 공포는 과장됐다. > 둘 중에 하나를 정해 찬성 반대로 나누어 제대로 된 입안문을 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뭔가 그럴듯한 사회적 이슈를 담아 제대로 찬반 논쟁을 담아내야지...

하지만 어제, 때마침 던져진 이슈로 그 맘을 확실히 접었다. 매거진 제목과 주제가 무엇이더냐. '시시콜콜' 아니더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이슈는 이미 포털에 가득 찼다. 내가 건드리려던 건 삶 곳곳에 묻어있는 사소한 주제들, 내가 밥 먹고 숨 쉬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대해 다루고자 한 것 아니었던가...



남편에게서 불쑥 톡이 왔다.

남편 - "전담이 뭐게?"

나 - "전담? 갑자기 뭔 소리?"

남편 - "전자담배 ㅋ"

나 - "별다줄~" (별걸 다 줄이네~)


갑자기 어디서 듣고 저런 걸 묻나 싶던 그때 남편이 전화를 해왔다. 뭔가 본격적으로 할 말이 있다는 뜻.


큰아들과 대화하던 중 훅 물어봤단다. 담배는 뭐 피우냐고. 담배 커밍아웃한 지 얼마 안 된 큰 녀석은 순순히 대답을 했다고 했다. 연초도 피우고 전자담배도 피운다고.

전자담배가 없는 아들은 친구들 것을 빌려 피운다고 했고 남편은 이게 너무 마음 아프다고 했다. 금연 5년차이긴 하지만 30년 가까이 흡연자의 삶을 살았던 터라 아들의 처지에 동화됐던 것일까?

남편은 "그래서 말인데~"라며 포문을 열었다.


남편이 다음 말을 하려는 순간, 내가 막아섰다. 내 맘대로 넘겨짚는 건 안 좋은 습관이지만 이번엔 무슨 말을 할지 확실히 감이 왔기 때문이다.

"설마 그게 안쓰러워서 전자담배를 사주겠다는 건 아니지?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들에게 전자담배를?"

어떻게 알았느냐는 대답 대신 껄껄 껄껄 웃기만 하는 남편에게 다시 한번 냅다 소리를 질렀다.

"친구들에게 얻어 피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지가 알아서 돈 벌어 살 것이고, 그것도 아니다 싶으면 담배를 끊겠지! 담배 얻어 피우는 게 뭐가 안쓰러워서 스무 살 아들한테 크리스마스 선물로 담배를 사준다는 거야?"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사랑하는 가족, 연인에게 전자담배를 선물해보세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됐다.


남편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빠 입장에서는 그게 참 맘이 아프네. 본인이 안 핀다고 하면 모를까 어차피 피고 있는 상황이잖아. 기왕 피고 있다면 양성화해서 제대로 된 걸 피도록 해주는 게 좋지 않나 싶은 거지. 자기 걸로 피는 게 위생적이기도 하고."

"그래서 당신 말은, 크리스마스이브날 살금살금 다가가 아들의 머리맡에 전자담배를 놔주겠다는 거잖아... 산타할아버지가 착한 아이에게 선물로 전자담배를 준다는 거잖아?"

"하하하하. 꼭 크리스마스여서 그런 건 아니고... 하하하하"


"혹시, 내가 요새 브런치 글 소재 고갈로 허덕이는 걸 알고 지금 이렇게 던져준 거지? 그런 거지? 알았어! 고마워! 마침 잘 됐네.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쓰면 되겠다!"

"아니야 아니야. 장인어른이랑 우리 엄마가 보시면 나 혼나. 절대 쓰지 마. 안돼. 진짜 안돼!"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흡연자 아들에게 전자담배를 선물하겠다는 남편의 판단은 옳다. >


* 메거진 이름을 잊고 있었다. <시시콜콜 디베이트 유랑단> 아니더냐. 삶 곳곳에 숨어서 날 괴롭히는 시시콜콜한 주제들에 대해 찬반 주장을 제시해보자는 취지였음을 잊었다. 오늘 반찬으로 김치찌개가 좋을지 된장찌개가 좋을지 등의 사소한 주제들을 다뤄보자고 해놓고는 자꾸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졌다. 에끼! 우리집에도 이렇게 소재가 넘쳐나는 것을.... 백 번째를 맞이하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 준 남편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산타할아버지 배낭 안에 전자담배가...

* 사태는 아들의 한마디로 종결됐다.

"내가 전자담배를 안 사봤겠어? 샀더니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게 돼서 안 사는 거야. 그러니 절대 사주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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