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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10. 2020

여든한 번째 시시콜콜

선택적 불매

2019년 7월부터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

1년이 지난 지금, 수입차 신규등록대수 중 일본 자동차의 점유율은 반토막이 났고 일본산 맥주 수입은 84.2% 줄었다. 어떤 브랜드보다 미운털이 박혔던 유니클로는 1년간 23곳의 매장이 폐점됐다. '가지 않습니다'라며 시작된 일본 여행상품 불매는 코로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소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대체제를 찾아가며 이성적인 소비자로 거듭나는 과정이기도 했다.


나 역시 그러한 소비자라고 자부했다. 불매운동이 시작되면서 유니클로로 향하던 발길을 끊었다. 아이들 옷이나 남편 내의는 유니클로 제품만 사용했었는데 국산 브랜드의 비슷한 제품으로 갈아탔다. 백화점에 들렀다 유니클로 매장 앞을 지나갈 때면 안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을 한번 흘겨봐 주었다. 얼마 전 외근 나갔다가 세일중인 유니클로 코트를 입어보는 사진을 보낸 남편에게 단호히 "거긴 안돼!"라고 답해주었다.

작년에 대형마트에서 번들로 구입한 일본산 고추냉이를 다 먹은 최근에는 맛 좋은 순수 국내 브랜드를 찾아냈다. 일본 제품보다 맛도 좋고 가성비도 괜찮은 제품을 구입한 내가 얼마나 기특하던지...


나름의 철저함으로 불매운동을 지속하고 있다고 여기던 내가 고민에 빠졌다. 1,000원짜리 볼펜 한 자루 때문이었다.

나의 독서습관은 이렇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은 구절이나 꼭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 곳에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인다. 한 권이 끝날 때쯤엔 어마어마한 양이 붙어있을 때도 있지만 그 얘긴 그만큼 나에게 괜찮은 책이라는 인장 같은 것이다. 완독을 한 뒤에는 독서노트를 펼친다. 처음부터 플래그를 하나하나 떼어가며 책 구절 필사를 한다. 길게는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하는 작업이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책 내용을 다시 한번 곱씹을 수 있고 나중에 필요한 부분을 인용하기 위해 찾는데도 용이하다.


필사할 내용이 꽤 많기 때문에 필기도구가 중요하다. 오랜 시간 잡고 있어도 가운데 손가락 가운데 마디가 움푹 들어가지 않도록 감싸주는 그립감,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갈 때 막힘없이 나아가는 부드러움, 다음 줄로 내려갔어도 윗줄 글씨를 해치지 않도록 똥도 남기지 않고 빨리 마르는 잉크 뒷마무리...

그 모든 걸 만족하는 볼펜이 일본 제품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 역시 오래전 사놓은 10개들이 한 박스가 있어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는데 마지막 한 자루 잉크가 오늘내일하고 있다.

모든 조건에 맞는 볼펜을 찾기 위해 국산 제품 여러 개를 경험해본 적이 있다. 아무리 좋다고 하는 제품을 써도 너무 가볍다거나, 손에 안 익는다거나, 미세한 똥을 흘린다거나 하는 등의 작은 차이점들이 크게 느껴졌다. 이것저것 써보다가 다시 그 제품을 쓰다 보면 "역시 이것만 한 볼펜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만일 내가 다시 이 제품을 한 박스 사들인다면, 유니클로는 불매하지만 닌텐도 동물의 숲을 사기 위해 혈안이 된 이들과 다를게 무엇일까 고민한다. 문제의식 없이 일본 제품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불편한 눈초리를 보낼 자격이 있을 것인가. 국산 브랜드 중 대체할 만한 제품을 찾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아무 필기구나 쓰면 뭐 어떻다고 이 난리일까.


하지만...

유니클로에는 국산 스파 브랜드라는 대체제가 있지만 동물의 숲은 대체제가 없 고한 영역이니 이해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일본산 자동차, 일본산 맥주, 유니클로 같은 굵직굵직한 기업들 제품에 대한 불매는 단순히 매출 하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불매운동이었으니 소소한 볼펜쯤은 사용해도 큰 문제가 없는 게 아닐까.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선택적 불매는 안 하니만 못하다. >


*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애정하던 그 볼펜의 제조사가 전범기업과 상호만 같지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겁한 변명을 이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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