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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28. 2020

일흔여덟 번째 시시콜콜

바람직한 성교육이란...

"한쪽 팔을 높이 들어봐!"

퍽!

"아! 겨드랑이를 왜 때려! 아프잖아!"
"그게 바로 남자와 잠을 잘 때 느끼는 고통이래. 그렇게 아픈 거래."


고등학생 시절, 쉬는 시간 친구에게서 들었던 충격적인 내용이 어쩌면 내 인생의 첫 성교육이었을지 모르겠다. 사물함 가득 꽂아둔 할리퀸 소설책을 친구들에게 무료 대여해주고, 쉬는 시간마다 인상적인 장면, 주로 가장 야한 장면을 실감 나게 읽어주던 나였다. 하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건 쥐뿔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찾아볼 책도, 검색할 인터넷도 없던 시절. 그렇게 무지했던 내가 하교 후 독서실로 향하던 루틴에서 벗어나 예상보다 일찍 귀가하던 어느 날, 걸쇠가 걸려 더 이상 열리지 않는 현관문과 그 사이로 들려오는 야릇한 부모님의 소리에 놀라 몇 시간을 밖에서 울기만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을 몰랐기에 겪어야 했던 일이었다.

"아무것도 몰랐어도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해 잘 살고 있지 않아?"라고 묻는다면, 처음에 꽤 두렵고 힘들었노라 말해주겠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가 '나다움 어린이책'으로 추천한 성교육 책 몇 권이 논란이 돼 회수되는 일이 있었다. 동성애를 미화하고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성인지 감수성과 성평등문화교육을 제공하겠다던 사업 취지는 문화적 수용성의 이슈로 덮였다. 해외에서는 유수의 아동도서상을 받기도 하고 여러 나라에서 번역돼 널리 읽히고 있는 책들이지만 아직 우리나라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논리다.

그보다 더 전에 비슷한 논란은 또 있었다.

한 고등학교 성교육 수업시간에 콘돔 끼우기 연습용 바나나를 준비해오도록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일부 학부모들의 항의로 실습은 취소되었다. 먹는 음식을 사용한 게 문제라는 것으로 논점이 변질되기도 했지만 성교육 책 배포 논란과 맥락은 같다. 우리나라 성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


한 국회의원은, 책에서 '섹스를 즐겁고 신나고 멋진 일이다'라고 표현한 것을 문제 삼으며 초등학생에게 성관계를 장려하는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또한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해 조기성애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여가부에서 또 한 건 하셨네."

"집에서는 <why 사춘기와 성> 책을 간수하고 숨기느라 애를 쓰는데 나랏돈으로 이런 책을 하필 초등학교에 굳이 비치하려는 이유가 이해 안 된다."

"너무 충격적이에요. 남편에게 보여주기도 민망하네요."

"성교육이 아닌 성행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책 아닌가요?"

현실적인 성교육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초등학생에게 제공하기에는 위험해 보인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사랑할 권리에 대해서만 강조했지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는 점도 지적했다.


반면, 실제로 책을 읽은 사람들은 책이 알려진 바와 달리 외설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다고 반박했다. 남녀가 사랑에 빠져 성관계를 맺고 임신, 출산하는 과정을 해부학적 그림으로 설명했다는 것이다.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은 26일 낸 논평에서 "50년이 지난 오늘까지 보건과 금욕 중심의 학교 성교육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논평을 냈다. 또한 "인권과 성평등 기반의 포괄적 성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성희롱과 성폭력을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뿌리 깊은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 문화를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기존의 형식적이고 모호한 성교육에서 벗어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유네스코의 '국제 성교육 가이드'에 맞춘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아이들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음란물을 접해서 생기는 부작용보다 더 교육적인 책"이라는 아하 청소년 문화센터장의 말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도 있다. 직접적이며 객관적인 성교육을 실시하면 성행위 시작 시기가 지연되고 성행위 빈도가 감소하며 콘돔 사용 및 피임 증가, 위험한 행동의 감소 등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n번방 사건'등의 성관련 사건사고들은 한국의 성교육이 완벽하게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해외에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고 아동교육에 널리 쓰이는 책이라고 해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아동들에게 배포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받을 충격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다. 아이들은 늘 준비가 되어있다. 부모들도 자신을 대신해 지혜롭게 설명해줄 방안을 원한다. 문제는, 부모 본인이 허용 가능한 수준, 부모 자신이 그어놓은 선을 넘기지 않는 정도의 교육만을 원한다는 것이다.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성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넘지 않는 수준의 성교육을 말이다.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나다움 어린이책'의 회수 결정은 철회되어야 한다. >

< 부모 대상 성교육이 먼저다. >


*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이 읽혀 너덜너덜해진 책은 <구성애의 초딩아우성>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밤낮없이 그 책을 읽고 또 읽고 하는 모습을 보며 전전긍긍했던 내가 떠오른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밥 먹고 똥 싸듯 자연스러운 것이 성이다. 어떻게 하면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어떻게 하면 똥 잘 싸는 건강한 몸을 만들지에 대해 평생 고민하고 살면서,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성생활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왜 차단하는 걸까.

밥 얘기만 한다고 돼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똥 얘기만 한다고 더려 워지는 것도 아닌 것처럼, 성에 대해 얘기한다고 해서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꾸 얘기해야 제대로 된 길을 찾게 된다.


* 아이가 스스로 밥을 먹게 하기 위해 숟가락 젓가락 사용법을 익히도록 부모들은 갖은 노력을 다한다. 에디슨 젓가락 등 손가락을 어디에 넣어야 제대로 먹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도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스스로 화장실 뒤처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또 가르친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는 거 아니니 성행위하는 방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느냐 말할 수도 있겠다. 혼자 밥 먹고 혼자 똥 닦는 것과는 다른 구석이 있으니 더 잘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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