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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26. 2020

우리 집엔 귀신이 산다.

휴일 점심 메뉴를 햄버거로 결정하고 드라이브 쓰루에 줄 서있는데 작은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형 전화기가 없어졌대~"

"무슨 소리야? 방금 엄마가 집에서 나오기 직전에 형이 누워서 핸드폰 만지작 거리는걸 봤는데? 형 바꿔봐~"

"엄마.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 뭔지 알겠다니까? 내가 침대에만 누워있다가 엄마 있나 안방에만 갔다가 왔거든? 소파에도 안 앉았고 아무 데도 안 갔어. 화장실도 안 들리고 침대에 다시 누웠는데 핸드폰이 없는 거야."

"매트리스랑 침대 헤드 사이에 끼었겠지. 잘 찾아봐~"

"매트리스를 아예 뒤집어도 봤어. 진짜 황당 그 자체라니까?"

"근데... 집 밖에 있는 엄마한테 전화는 왜 한거여?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니... 너무 황당해서..."

"기다려. 엄마가 들어가서 찾아볼게. 아마 침대 위에 얌전히 있을 거다. 너희들 눈에만 안보이겠지."


집으로 돌아와 아이방을 샅샅이 뒤졌다. 앉은 적도 없다는 소파부터 화장실, 심지어 안방까지 구석구석 살폈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 이럴 때마다 우리 가족은 '동수'를 찾는다.

"또 동수짓인거야? 얜 잊을만하면 꼭 나타나서 이러더라?"

"어지간히 놀았으면 갖고 와라~"


뭐만 없어졌다 하면 소환되는 '동수'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에 처음 나타났다.

크리스마스에 두 아이에게 각자 하나씩 닌텐도 게임기를 사주었는데 애지중지하며 허락된 시간에만 게임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꼼꼼하게 자기 물건 잘 챙기는 작은 아이의 게임기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어려서부터 꼼꼼했던 아이는 자기 물건의 정확한 위치도 잘 기억했는데 서랍장 세 번째 서랍에 넣어두었었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어딘가에 떨어졌거나 끼어들어갔겠거니, 그래 봤자 집안 어딘가에 있겠거니 했던 내 예상과 달리 게임기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서랍장의 서랍을 하나하나 모두 빼내어 옷을 모두 탈탈 털고 다시 정리를 했다. 없었다. 소파 사이 틈새에 손을 쑥쑥 넣어 보았다. 없었다. 나오는 것이라고는 말라 삐뚤어진 과자, 동전, 연필, 먼지 뭉탱이뿐이었다. 침대 매트리스, 이불장, 장난감 상자, 책꽂이 등 찾아볼 수 있는 모든 곳을 싹 다 뒤졌지만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게임기는 한 달 후 정확히 서랍장 세 번째 서랍에서 발견됐다. 원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얌전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건 실체를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존재를 인정하는 것밖에 없었다.

'우리 집에는 우리 아이들 또래의 귀신이 살고 있는데 너무 심심한 나머지 가끔씩 짓궂은 장난을 친다. 보통 무언가를 숨기고 며칠 만에 제자리에 놓아둔다. 무서워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불쌍히 여겨야 한다. 이름은, 동수다.'

이렇게 정리를 했다. 아무도 없는 현관 센서등이 켜질 때도, 공기청정기가 갑자기 미친 듯이 작동해도, 차키가 없어져도, 휴대폰이 안 보여도 모두 동수 짓으로 결론지었다. 참 편리한 구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신기했다. 없어져서 그렇게 열심히 찾던 물건들이 보란 듯이 잘 보이는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고는 했기 때문.


한동안은 없어지는 물건이 없어 동수가 다른 집으로 가버렸나 싶던 차였는데, 큰아들의 휴대폰으로 오래간만에 존재감을 뿜어낸 것이다. 쉽게 포기할 수 없던 나는 흡사 명탐정 코난이라도 된 것처럼 큰아들을 추궁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어디로 갔지?"

"안방으로 갔다가 다시 내 방으로 갔지."

"소파에는 안 앉았다고 했지?"

"근처도 안 갔음!"

"혹시 냉장고 근처에는?"

"냉장고? 앗!

"혹시 그 근처에 없어?"

"없는데? 그렇다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들은 빛의 속도로 부엌 구석의 간식 넣어두는 기다란 장으로 뛰어갔다. 그러고 나서는 나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들어 올리며...

"여기 있네..."


시도 때도 없이 괜히 열어보고 한참을 살펴보다가 닫아버리는 냉장고와 간식 수납장. 우리 집 남자들의 공통된 동선에서 휴대폰은 발견됐다. 뻔히 자신의 실책과 망각때문임이 분명해졌는데도 큰아이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꿋꿋이 황당해했다. 거기서 발견된 것마저 동수 짓 아니겠느냐며 깔깔거렸다. 십여 년 전 시작된 '동수에게 뒤집어 씌우기'가 우리 집에서는 여전히 먹히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웃자고 시작하고 재미 삼아 만들어낸 동수였지만 혹시 늘 누군가를 탓하고 책임을 돌리는 것으로 손쉽게 상황을 정리하며 살아온 게 아닌가 반성이 된다. 실체도 없는 '동수'를 앞세워 우리는 무죄임을, 억울함을, 면죄부를 받기를 당당하게 요구한 것은 아닐까. 실체가 없는 존재라도 억울했을진대, 그게 실존인물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동수'를 만들어내며 살아왔을까...


동수야~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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