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Nov 17. 2020

익숙할때 사고난다!

잔잔한 팝송의 선율이 흘러나오고 노을이 지는 텅 빈 도로를 부드럽게 달리는 자동차. 행복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조수석의 연인을 바라보는 운전자...

는 개뿔. 잠에서 깬 지 두 시간도 채 안되었는데 졸렸다. 도로는 여기저기 공사판이라 좁아졌다 넓어졌다를 반복한다. 옆에 계신 선생님은 오늘따라 잠에서 헤어 나올 줄 모르신다. 곤한 잠을 주무시니 라디오도 못 켜겠고 잠을 쫓을 사탕을 까기도 조심스러워 그만두었다.

윗입술, 아랫입술을 번갈아가며 최대한 아프게 깨물어본다. 왼쪽 볼, 오른쪽 을 수도 없이 꼬집는다. 눈에 잔뜩 힘을 주어 눈물을 쏟아본다. 성냥개비가 있다면 만화처럼 눈 위아래에 꽂아놓고 싶은 심정. 좋아하는 곡을 크게 틀어놓고 소리 질러 따라 부르고 싶다. 창문을 한껏 열고 찬바람을 쏘이고 싶다. 입안 가득 사탕을 넣고 와그작와그작 씹어대고 싶다.


오늘따라 이정표도 눈에 안 들어오고 늘 다니던 고속도로 진입로도 놓쳤다. 유난히 차들이 내 앞으로 예고도 없이 들어오고 그렇게 들어와서는 갑자기 속도를 늦춘다.

23년 무사고의 영예가 오늘로 막을 내리나 싶은 날이다. 완만한 회전 구간에서도 벽에 닿을듯하고 직진 차선에서도 뭔 일이 날 것 같다.


이 갑작스러운 서투름은 무엇 때문일까.

8시가 다 되어도 새벽 어스름이 지워지지 않은 계절 탓인가.

마지막 수업이라고 긴장이 풀린 내 마음 탓인가.

옆에서 말 걸어주지 않고 내내 주무시는 선생님 탓인가.

23년째 해오는 운전이라며 안일해진 탓인가.


긴장이 풀리고 안일해질 때 사고는 나는 법. 다시 한번 몸을 추스른다.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주시한다. 핸들을 잡은 두 손에 더 힘을 주고 힘없이 늘어졌던 왼쪽 다리도 가지런히 모은다. 오늘이 안전운전 23년을 0년으로 리셋되는 날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인간관계나 삶도 마찬가지일 게다. 익숙해지고 안일해지는 순간 관계는 틀어지기 쉽고 일상은 어그러지기 쉽다. 가끔씩 고삐를 조이고 자세를 고쳐야 오래, 탄탄히 갈 수 있으리라...


라는 상념을 벗 삼아 두 시간 반의 운전을 마쳤다. 도착하자마자 글로 남기리라, 메모를 못했으니 머릿속에서 휘발돼 사라져 버리면 안 되는데 하며 조바심을 냈다.

그나저나... 오후에 집에 갈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대리라도 부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