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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18. 2020

거짓말의 역사, 아니 집착의 역사

풀소유하신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남산타워'.

요 며칠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스님을 조롱하는 문구다. 과거 불자였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다.

구독하는 작가님 한분이 쓰신 혜민스님의 소유와 거짓말에 대한 담론을 읽다가 문득 '나는 어떤 거짓말을 했었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도 '거짓말'하면 동의어처럼 떠올라 날 괴롭히는 것들에 대한 기억이다.


1. 멜론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에는 전교 1등 아이가 있었다. 주는 것 없이 왠지 싫은 그런 애였다. 그렇다고 내가 전교 2등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한 번은 짝이 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아이가 내게 도발을 해왔다.

"너 멜론 먹어본 적 있어?"

멜론... 듣보잡 과일이었다. 머릿속에 형태가 떠오르지도 않았으며 과일인 줄도 몰랐다. 그런데 무슨 심보가 발동했는지 냅다 거짓말을 던졌다.

"응! 먹어봤어."

그랬더니 확인 질문이 들어왔다.

"무슨 맛인데?"

헐... 저러니 내가 싫어하지.

맛을 알 리 없는 내가 우물쭈물하자 그 아이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참외가 맛있어, 멜론이 맛있어?"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아마도 두 과일이 뭔가 비슷한 구석이 있나 보구나...

"난 참외가 더 맛있더라 뭐."

먹어본 적 없는 과일이 더 맛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짓말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고 싶었던 걸까...

"하하하. 너 멜론 먹어본 적 없지? 먹어봤으면 참외가 맛있다는 말은 못 할걸?"

한껏 날 비웃는 그 아이에게 난 끝까지 최선을 다해 거짓말을 했다.

"먹어봤거던? 그래도 난 참외가 더 맛있거던?"


30년도 더 된 그날의 교실 풍경이나 그 아이의 얼굴은 희미하다. 다만 쪼그라들었던 내 심장소리와 한올 한올 곤두섰던 온몸의 털들은 생생히 기억난다. 아직도 멜론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2. 전세

결혼 전, 아버지 사업이 제법 잘 되던 시절이었는데우리 집이 전세였던게 난 그렇게 창피했다. 그래서 평소 지금의 남편이자 당시 같은 과 선배'오빠'였던 이와의 대화중 '자가'라며 은근히 거짓말을 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오빠가 우리 집에 초대되었을 때였다. 나의 사정을 알리 없던 부모님은 딸의 남자 친구 앞에서 가계 살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고 내용 중엔 우리 집이 전세라는 것도 포함되어있었다.

'오빠가 눈치챘을까? 내가 자가라고 거짓말한 걸 알고 실망했을까? 엄마 아빠는 지금 저 얘길 대체 왜 하는 걸까?' 왁자지껄한 거실 한복판에서 혼자 복잡한 머릿속으로 앉아있던 내가 떠오른다.

전세건 자가건간에 빚 없는 게 최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지금은, 전세 살았던 당시의 나보다 거짓말을 했던 내가 더 창피하다.


모르는데도 아는 척, 없는데도 있는척했던 거짓말. 타인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는 않았겠지만 분명 나에게는 해를 끼쳤다. 평생 내 뒤를 쫓아다니며 "거짓말이나 하는 나쁜 년!"이라는 죄책감을 심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거짓말을 하는 순간 모든 해악은 내게로 돌아온다. 거짓말로 얻는 이익보다 돌아오는 해악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에 거짓말을 최소화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니, 말을 줄이며 살고 있다는 것이 더 맞다. 거짓말을 안 할 자신이 없을 땐 입을 닫는다.

이상순이 나무의자를 만들면서 의자 바닥까지 사포질 하는 것을 본 이효리가 "여긴 안보이잖아. 누가 알겠어?"라고 물었단다. 그러자 이상순 왈, "누가 알긴, 내가 알잖아."...

타인과 세상은 속일 수 있겠지만 나를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거짓말한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게 더 끔찍한 고문이 된다. '나한테라도 떳떳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집착이 거짓말 앞에서 전전긍긍하게 만드나 보다.


거짓말도 집착에서 시작되고 거짓말에 대한 후회도 집착에서 비롯된다.


* 기사를 접한 남편이 물었다.

"그런데, 스님은 좋은 집에 살면 안 돼?"

난 이 말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스님은 절에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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