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잠을 설쳤다.
울화통이 터지고 머리가 복잡해서였다. 틀린 말은 아니라서 짜증이 나는 것인지, 혹은 그 자리에서 받아치지 못한 나에게 화가 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요즘 이런 일이 잦다.
교육지원청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어제 그 준비 모임이 있었고 바로 옆에 교육장님이 앉게 되셨다. 모임이 끝나고 일어서려는데 교육장님께서 아는 척을 하셨다. '나'라는 사람을 아시는 게 아니라 내가 학부모회장으로 있는 학교를 아는척하신 것이었다. 최근 연이어 터진 코로나 사태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셨으며 학부모들의 자녀 관리 소홀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셨다. 집에 가기 위해 짐을 꾸리던 상황이라 제대로 대꾸도 못했고, 그저 화제가 된 학교의 학부모라는 사실만으로 "송구스럽습니다."라는 말만 하고 빠져나온 것이 두고두고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해당 학생과 학부모가 문제이지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부모는 문제없거든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끝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와 학부모, 지역사회가 합심해서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교육해야 할 문제이지요."
라고 똑 부러지게 말할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자리에서는 머리가 하얘졌으면서 왜 밤잠까지 설치며 분해하는 것이냐 말이다.
며칠 전에는 지인들과 함께 간 옹심이 집 때문에 흥분을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 찾아간 음식점에는 두어 테이블에만 손님이 앉아계셨다. 세명이니 골고루 시켜 함께 먹자며 옹심이 칼국수 하나, 비빔 칼국수 하나, 메밀전병을 시켰다. 주문을 받으신 사장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셨고 "그렇게 따로따로 시키면 따로따로 나오는 건 알고 시키는 거죠?"라는 말도 서슴지 않으셨다. 알고 있다는 우리의 대답이 마뜩잖으셨는지 한참을 응시하시고는 그제야 돌아섰고 주방 직원들과 누가 봐도 안 좋은 시선을 가득 담은 대화를 나누셨다.
그때 바로 일어서서 나오며 말해야 했다.
"셋이서 음식 세 개를 시켰으니 된 것 아닌가요? 바쁘신 시간도 아닌데 음식을 만드시는 분 편하게 통일해야 한다면 왜 저 많은 메뉴를 올려놓으신 건가요? 식사하러 온 손님을 그렇게 불편하게 해도 되는 건가요?"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며 말이다. 하필 구석자리여서 한껏 찌그러져서는 가져다주는 음식을 군소리 없이 먹고는 조용히 나와버렸다.
갱년기가 오는 것 아니냐거나, 나이 드니 노여움을 많이 탄다는 표현을 쓰자니 '나이듦'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왜곡시키는 것 같아 싫다.
세상 사는 게 힘들어 '한놈만 걸려라'라며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하기엔, 하루 이틀 힘들었던 게 아니다.
글을 쓰다 보니 생긴 부작용이라고 해볼까?
사람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상대의 한마디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다 보니 생긴, 직업도 아닌 일에 생겨버린 직업병이라고 해야 하나?
앞에서는 한마디 못하고선 집에 돌아와 자판을 두드리며 감정을 토해내고 있는 꼴이 참으로 비겁해 보이다가도, 이렇게라도 풀어내니 오늘 밤은 밤잠 설치지는 않겠구나 위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