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이렇게 꿈을 많이 꾸지? 참 이상해... 9시에 잠들지? 한참 자고 난 거 같아서 눈뜨면 11시예요. 그때 깨면 잠이 또 드나? 유튜브 좀 보다가 골프 채널 좀 보다가 다시 깜빡 잠이 들면 또 꿈을 꿔요. 그러고 일어나면 1시. 또 자다 일어나면 3시... 하룻밤에 꿈을 세 개, 네 개씩 꾸니 살 수가 있나. 꿈도 별 꿈을 다 꿔요. 평생 안 가본 야구구경은 왜 간다니? 엊그저께는 애들 아빠가 나왔는데 글쎄, 식구들 모두한테는 인사를 하면서 나한테는 안 하는 거야. 그게 또 얼마나 속상하던지..."
어머님의 고정 레퍼토리가 또 시작됐습니다. 자식들만 봤다 하면 시작되는 꿈이야기, 꿈 때문에 깬 이야기에 이제는 어느 자식 하나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게 또 서운하셨던 어머님의 역정이 이어집니다.
"내가 진짜, 죽으면 끝날까 생각도 해봤다. 어느 자식 하나 진지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도 없고 얼마나 서럽던지."
혼자서 신경과도 가보셨답니다. 의사라고 뾰족한 수가 있었을까요. 얘기 좀 들어드리고 신경안정제 처방을 해드리는 것으로 달래 드렸나 봅니다. 결국 어머님은 당신이 생각하는 '희한한 병'에 대해 시원하게 해소하지 못하셨습니다.
남편과 저는 작전을 바꿨습니다. 적극적으로 반응해 드리기로 말이죠.
"병원에 입원해야 하나?" 하시기에 수면클리닉을 권했습니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셨습니다. 그런 데서 혼자 자는 거 싫으시다네요.
"어머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머님의 수면상태를 제대로 알 수가 없잖아요. 잠들기 시작하실 때부터 아침까지 깊은 잠은 얼마나 주무시는지, 꿈 많이 꾸는 시간에 뇌는 어떤 상태인지를 확인해 봐야 이후에 어떻게 치료를 할지 알 수 있잖아요."
라고 말씀드렸지만 "무서운데... 그렇게 한다고 의사가 알까?"라며 얼버무리셨습니다. 그러면서 "정신과 상담을 받아봐야 하나?"라고 물으셨습니다. 헉! 자식들이 정신과 상담을 제안했을 때는 그게 무슨 정신과 소관이냐며 버럭 하셨었는데 말입니다.
그녀의 병에 대한 처방은 의사에게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그녀의 살아온 과거를 듬뿍 들어드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외로움, 그리움, 서러움등의 복합적인 감정으로 막혀버린 꿀잠 길을 뚫어드려야 했습니다.
꿈에 자주 등장하신다는 애틋한 남편과의 소꿉놀이에 초대되어 응석받이 아이가 되어주기도 하고, 20대의 도도한 은행직원이었다던 그녀의 커리어를 취재해 주면 어떨까. 양손에 아이 둘 손 잡고 등에는 포대기로 한 명 업고 머리에는 기저귀가방 짊어지고 시골 가는 버스에 오르던 시절 애기 엄마의 치열했던 육아기에 맞장구쳐준다면 그날밤은 단꿈에 빠지지 않으실까...
그래서 시작된 시어머니 자서전 대신 써드리기...
어머님이 살아오신 시간 순서대로 쓰고 싶지만 제 시어머님은 그리 호락호락한 분이 아닙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서 딱 막혔지요.
"됐어! 그만해! 이제 생각도 안 나!"
저 역시 만만찮은 며느리입니다. 틈틈이 기록해 둔 어머님과의 일상대화 목록이 서랍에 있으니까요.
자랑스러운 효부상이 탐나서가 아니라, 글의 소재가 바닥을 드러내니 남의 인생사에라도 빌붙어 계속 글을 쓰고자 하는 글거지의 발악쯤으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시어머니, 친정아버지, 친정어머니의 자서전까지 쓰다 보면 브런치에 천년 만년 발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