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할머니가 큰 부잣집 딸이었어. 안흥항에 일본 왔다 갔다 하는 중선을 띄우는 집 딸이었거든. 식모에 찬모까지 줄줄이 있었고 대궐 같은 기와집에 시골이지만 목욕탕까지 있는 집에서 자랐대. 내가 학교 다녀오면 외할머니가 '감기 들었지 아가야?' 하면서 식모들 몰래 벽장에 감춰뒀던 귤을 꺼내줬어. 그 시절에 귤이 어디 있나? 일본에서 들여온 귤이었지. 그런데 외할머니 집에 아들이 없었네? 외할머니랑 외할머니의 언니, 그렇게 딸만 둘이니 그 많은 재산을 양자로 들인 10촌 사촌오빠한테 다 물려줬지."
어머님의 옛날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버님 산소에 성묘 갔을 때입니다. 조부모님과 아버님 묘소에 절을 올린 후 과일과 포를 먹을 때면 어머님은 "참...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참 아까운 사람이야. 그렇게 어머니들이 정성을 쏟았어도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며 먼바다를 쳐다보십니다. 이때입니다. 질문 하나만 잘 던지면 그게 도화선이 되어 이야기주머니를 터뜨립니다.
어머니의 성은 희귀성인 '가' 씨입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가씨 성을 가진 이는 만 명이 안됩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파병온 소주 가씨 장군의 후손이 퍼뜨린 성씨이며 태안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버님의 묘소가 있는 태안에 가면 어디로 눈을 돌려도 옛 생각이 절로 나실테지요.
"외할머니네 집이 얼마나 부자였던지, 외할머니가 시집갈 때 외할머니의 아버지가 기와집을 지어줬대. 중선 배를 가진 분이셨으니 일본에서 나무까지 수입해 와서 집을 지어줬단다. 아버지 돈을 잔뜩 물려받은 사촌오빠한테서 생활비를 받아와 썼는데 돈을 마땅히 담아 올 데가 없어서 요강을 들고 가서 담아왔대. 부잣집 딸로 살았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계속 찾았던 음식이 뭔지 아니? 전복과 해삼이었어. 젊어서 맨~ 그런 것만 먹고 살아왔으니까... 안흥에서 광우리(광주리) 가~~득 이만~~ 큼 큰 꽃게를 인 사람이 부자 최씨네로, 그러니까 우리 외할머니네로 갖고 들어온다는 거야. 그걸 사줄 사람이 외할머니네밖에 없었던 거지. "
어머님의 외할머니가 얼마나 부자였는지 어머님은 한참 설명하십니다.
"어머니! 그건 어머니가 누구한테 들은 거예요, 아니면 기억하는 거예요?"
잠자코 듣는 저와는 달리 남편은 어머니의 1인칭 시점 이야기에 의문을 던집니다.
"내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한테서 직접 들은 거지~ 본 것도 있고~ 동네에 외할머니집 찬모, 식모 살던 사람들이 있어서 그이들한테 들은 것도 있어~"
억울해하는 어머님을 달래는 것도 남편입니다.
"70년 전, 어머니 어렸을 때를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어머니는 무슨 치매를 걱정하셔?"
금세 기분이 풀린 어머니가 이야기를 이어나가려는데 남편이 한마디 더 거듭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 상선을 띄워서 일본으로 무역을 하는 집이었으면 친일파였을 수도 있겠는데?"
또다시 찬물을 휙 끼얹는 남편의 말에 어머니는 껄껄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그냥, 그렇게 우리 외할머니 덕에 나도 어렸을 때 잘 살았다는 얘기야~ 보리밥도 한 번 안 먹고~~"
어렸을 때 보리밥 먹어보는 게 소원이셨다는 어머니는 요즘 보리밥만 드십니다. 보리밥을 먹으면서도, 꽃게를 보아도, 귤을 까 드시면서도 어렸을 적 기억이 어제일처럼 생각나시나 봅니다. 가장 유복하고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이 광우리 가득인데, 왜 잠 못 드는 밤이 많으신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