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로 들인 십촌 사촌 오빠들이랑 외숙모들 꼴보기가 너무 싫었어. 우리 외할아버지 재산 받아서 허리춤에 찰랑찰랑 곳간 열쇠 차고, 머슴들에 식모 찬모 두고 떵떵거리고 살았어. 그 시절에 시골에서 화신백화점까지 가서 쇼핑하고 은반지를 찰랑찰랑 끼고 다녔어. 그 집 애들이 나보다 한두 살 어렸는데 파마도 하고 다니더라구. 우리는 못 가고 못했어~ 아이구 참... 그러면 뭐 하냐. 나중엔 다 망했더라."
아들이 없어 양자를 들이고 재산을 모두 주어야 했던 외할머니에 대한 연민 때문일까요, 어머님의 어린 시절 속 주인공은 내내 외할머니입니다. 학교 다녀온 국민학생 어머님에게 김치 송송송 썰어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셨다거나, 외할머니의 언니가 미스코리아급으로 이쁘고 멋쟁이였다거나, 그 언니의 남편이 재무부 차관까지 갈뻔하다가 화폐개혁을 앞두고 금을 잔뜩 사들이는 바람에 좌초됐다거나, 외할아버지가 백마 타고 다니셨다는 이야기. 외할아버지의 성함과 외할머니 언니의 남편 이름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계시는 어머님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간땅오꼬입고 그 시절에 학교를 다녔어. 간땅오꼬? 원피스를 그렇게 불렀어. 우리 반이 20명이었는데 6.25 나니까 남자 열에 영자라는 친구랑 나, 영등포에서 피난 온 이, 이렇게 여자 셋이 남았지. 그 시절에 여자가 학교를 다닌다는 건 돈이 있거나 부모가 깨어있거나 했어야 가능한 일이었어. 특히, 돈이 있어도 부모가 깨어있지 않으면 못했던 일이었지. 어렸을 때는 고생도 않고 살았는데 다 커서 서울 와서는 엄청나게 없이 살았지. 내가 벌고 그러면서 살았어..."
중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니 "안 해~ 이제~ 그만 물어봐. 그땐 그냥 놀기만 했다."라며 입을 닫으십니다. 뭐 하고 놀았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십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보따리를 풀어헤치시지요.
"아버지가 쉰여섯에 돌아가셨어. 반경 5km는 우리 땅이었나 봐. 농사 한번 지으신 적이 없지. 머슴 한 명을 식모 하나랑 맺어줘서 때옴빵 하나 내주고 살게 했어. 때옴빵이 뭐냐고? 방 두 칸 있는 쪼그만 집이야. 그 머슴이랑 식모가 우리 집 일 다 해줬지. 그 두 내외가 아기를 낳았는데 이름이 영숙이야. 얼마나 예쁜지 나랑 내 동생이 매일 놀아주고 그랬어. 모심고 그럴 때는 일꾼이 3,40명인데 그러면 꽃게철에는 꽃게를, 미나리철에는 미나리를 잔뜩 손질해서 먹이는 거야. 어머니도 부잣집 딸이었지만 아버지도 부자였어."
어머님 옛날이야기의 대부분은 잘 살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고 살았던 그때의 자잘한 기억까지 곱씹느라 깊은 잠에 못 드시나 봅니다.
20년도 훨씬 전에 먼저 하늘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아깝고 그리운 남편을 떠올리느라 긴긴 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시며 자식이 다섯이라 걱정이 마를 날 없다는 오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시절 말이지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는 친정어머니가 편찮으셨고, 가세가 기울었고, 성인이 되며 서울에 올라와 직장에 다니면서 고생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그 시절의 기억까지 편안하게 끄집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꿀잠을 주무시지 않을까요...
* 대문 사진
아이들이 어렸을 때 놀러갔던 태안 시골집 터입니다. 폭신한 건초 더미 위에 누워 신나게 놀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