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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13. 2020

이 책을 꺼내먹어요~

네일아트를 한 보드랍고 뽀얀 손,  굵은 볼륨이 살아있는 헤어스타일, 무심한 듯 옆구리에 끼고 있는 명품 클러치, 어디 한 군데 단정하지 않은 구석이 없는 깔끔함. 내가 생각하는 '팔자 좋은 중년 여성'의 전형이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면 완벽하게 세상 걱정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여유롭게 미술 전시를 관람하며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이야기하는 것.'


미술전시 감상이란, 다가오는 카드 결제일에 대한 압박감이나 요동치는 부동산 시장으로 인한 불안감 따위는 없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상한 취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인들과의 식사 약속이 미술 전시 감상과 세트로 묶이는 날엔 빌린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문화생활을 누릴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남편의 눈치도 보였고 말이다. 하지만 잠시 여유를 부리는 그 시간은 꽤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나 보던 작품을 눈앞에서 직접 감상하는 즐거움에 더해 삶의 가치나 의미를 책이나 영화와는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게 되는 경험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남편과 꼭 다시 와보고 싶다는 바람도 가졌지만 "난 아직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어!"라는 대답이 돌아올게 뻔해 권하지도 못했다.


아트소믈리에 지니 작가님의 < 당신을 위한 맛있는 미술관 > 은 미술작품 감상에 대한 나의 편견과 허기를 달래주는 책이었다. 17편의 이야기 속에는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된 생각의 흐름과 거기에 맞닿은 가와 작품이 소개되어 있었다. 거기에 대중문화까지 더해져 이야기는 한층 친숙해졌다. 자이언티의 < 꺼내먹어요 >라는 곡을  책 소개와 1화에서 언급한 부분이 한 예다. 쉬고 싶고 집에 가고 싶을 때 초콜릿처럼 자신의 노래를 꺼내 먹으라는 가사처럼, 작가에게도 '그림'이 그런 존재였음을 설명했다.

"저에겐 '그림'이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힘들 때 남몰래 꺼내 먹곤 하는 마음의 비밀 식량, 믿음직한 삶의 무기"

그 식량과 무기를 들고 삶과 마주하다 보면 스스로와 삶을 반추하게 되었고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의미 있는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한 마음이 < 당신을 위한 맛있는 미술관 > 집필의 이유일 것이다.


나다움을 찾아가는 자화상 이야기 <13화>, 내면을 찾기 위해 사색하는 이의 뒷모습 < 3화>,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한 <4화>등을 통해 자신을 관찰하고 존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시대에 반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추구하던 조셉 뒤크레와 그의 작품을 소개한  < 13화>,  작가 자신의 단발병과 클림트의 작품 < 헬레네 클림트의 초상>을 연결하며 이야기를 풀어간  <10화>는 자신만의 색과 결을 지키는 것이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제시하는 듯했다.


빌레로이 앤 보흐 그릇의 그림을 그린 라플라우 < 5화 >, 룰랭과 외젠보흐라는 친구를 가졌던 고흐 < 8화 >, 별과 인연, 김환기 작가 아내의 헌신을 노래한 < 9화 >에서는 나를 사랑해주는 '단 한 사람'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나의 가치를 알고 인정해주는 타인의 존재라는 것.


그렇게 '나'에게서 시작한 이야기는 '너'를 지나 '관계'를 넘어 '사회'로 확장된다.

< 한국에서의 학살 >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했던 피카소 < 15화 >,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는 스트릿 아티스트인 뱅크시 <16화 >에 대한 설명을 읽고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나'에 대한 고민은 나만의 것이 아니며 결국 관계와 사회에 대한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에게 '사회'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 대한 고민과 맞닿는다. 힘들고 지칠 때 초콜릿을 꺼내먹듯 미술작품을 꺼내먹는 것이 거창하고 허세 작렬한 행위가 아닌 이유다.


누군가는 지친 하루를 술로, BTS의 음악으로, 나훈아의 '테스형'으로 위로받을 것이다. 그러다가 더 이상 그것들로도 위로가 안된다고 여길 땐 외도하듯 다른 것들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내게 미술관은 그런 공간이었다. 어쩌다 우연히 찾아갔다가 뜻하지 않게 큰 위로를 얻고 오는 곳. 하지만 근거 없이 만들어진 편견으로 인해 허세에 물든 것처럼 죄책감도 함께 가져오곤 했던 곳.

이제는 작가님의 책 덕분에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미술관 나들이를 갈 수 있을 것 같다.

순수 문화예술이라고 여겨져 멀고 난해하게만 생각되던 미술작품 역시 여타 대중문화예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과 사랑, 애환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삶은 곧 우리의 삶과 같아서 작품 속에는 일상 속 자신과 관계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에게 끊임없는 고민과 질문을 던지다 보면 어느새 명쾌한 해답까지 찾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아니다. 멀리 미술관까지 갈 필요도 없이 그 고민과 질문의 길을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 될 일이다. 명화 감상을 하며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내 삶의 무게도 조금은 가벼워져있을 것이다. 작가님의 책을 종종 꺼내먹어야겠다.



* 브런치북 <브런치 라디오>  공모전 안내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이 바로 < 당신을 위한 맛있는 미술관 >이었습니다. 브런치에 올라온 이웃들의 글을 읽는 재미에 빠져 평소 독서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독서 편식은 고칠 수 있게 되었지요.

어쩌면 평생 읽어보지 않았을 장르의 책,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책, 미술 감상 책이었습니다. 편견 없이 펼쳐들었기에 더 큰 공감을 일으키고 위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흥미로운 도서관이자 놀이터인 브런치에서 만난 이 책을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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