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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an 05. 2021

체스는 떠오르지 않는 체스 영화

< 넷플릭스 오리지널 - 퀸스 갬빗 >

"위인전은 읽고 싶지 않아요! 너무 뻔해요."

이제는 20대 중반이 된 조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했던 말이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은 당연히 위인전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내가 창피했으며 정확히 어떤 말로 아이를 설득해야 할지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불우한 성장과정을 거쳤지만 삶에 대한 열정과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성공한다는 뻔한 스토리 전개'를 전복시킬만한 획기적인 이유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어쩌면 위인전이란,  되지도 않는 목표일지라도 바보처럼 묵묵히, 조용히 일만 하는 국민을 만들려는 국가의 획책일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 퀸스 갬빗 > 역시 위인전과 맥락이 같다. 영화 기본 정보만 읽어봐도 어떤 스토리인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7회까지 정주행하고 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고난 극복 성장기가 왜 유의미한지를 알 수 있다. 심지어 주인공이 허구의 인물일지라도 말이다. 


- 줄탁동시 -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은 '성장'을 다루는 모든 작품에 대입 가능하다. 알을 함께 쪼아주는 어미닭의 존재를 뜻하는 '줄탁동시' 역시 성장에는 필수다.  퀸스 갬빗도 예외가 아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보육원에 가게 된 주인공 베스 하먼의 투쟁기 곳곳에는 조력자들이 등장한다. 

보육원의 관리인 샤이벌은 무뚝뚝하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침묵으로 하먼의 인생에 체스를 안겨주고 천재성을 드러낼 기회를 연결시킨다. 베스조차도 잊고 살았지만 첫 체스대회의 참가비를 보내준 이가 샤이벌 아니었던가.

베스를 앞세워 팔자 좀 고쳐보려는 아줌마가 아닐까 경계했던 양어머니는 가장 든든한 매니저가 되어 베스와 동행한다. 승부에 집착하는 경주마 같은 베스에게 "늘 모든 걸 완벽하게 할 순 없어" 라며 엄마다운 조언을 해준다. 체스는 해본 적도 없지 않냐며 날 선 반응을 하던 베스였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양어머니의 손을 무심하게 잡는 장면은 그 둘의 관계가 상호 조력자의 관계로 성숙하는 모습을 담았다고 본다. 양어머니 역시 아이를 잃은 슬픔과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픔, 알코올 중독으로 의욕 없는 삶을 살았지만 베스에 의해 구원받은 것이리라. 

친엄마 역시 베스 인생의 멘토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생전에 그녀가 했던 말들은 작품 곳곳에서 베스가 보여주는 당당함의 원천이 되었다.

"어둠은 무서워할 게 못돼. 사실, 세상에 무서워할 건 하나도 없어. 정말 강한 사람은 혼자인 걸 두려워하지 않아."
"남자들은 꼭 모든 걸 다 가르치려고 해. 넌 그냥 그들이 뭐라고 하든 내버려 두고, 넌 네가 생각하는 대로 하면 돼."
"너 자신이 누구인지 절대 잊지 마."

법무사가 되어 베스 앞에 나타나 그녀의 모스크바행 경비를 대주는 졸린, 베스의 하룻밤 연인이자 체스 코치를 자처했던 해리와 베니 모두 베스가 알을 깰 수 있도록 해 준 귀한 사람들이었다. 


-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

이념 대립이 있던 시대, 여성과 인종에 대한 차별이 당연하던 시절이었지만 주인공은 그악스럽게 물고 늘어지며 따지지 않는다. 

여성 플레이어가 드문 체스판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당당하다. 곳곳에서 내 귀에 거슬릴 정도로 "여성 우승자", "여성 참가자"등의 대사가 나오지만 오히려 주인공은 신경 쓰지 않는다. 

양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냉소적이기만 하던 양아버지. 그가 베스에게 버리듯 주었던 집을 되찾으러 왔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7,000을 건넨다. 통쾌한 것은 그녀가 아닌 나의 몫이었다.

촌스럽다고 무시할 땐 언제고 체스로 명성이 높아지자 베스를 우스꽝스러운 '애플파이 클럽'에 초대하던 고등학교 동창 마거릿. 졸업과 동시에 결혼과 출산을 한 그녀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베스는 묘하게 우월해 보였다.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대회 출전 경비 후원을 명목으로 공산주의 반대 성명을 강권하는 기독교 단체의 제안을 거절하는 장면, 모스크바에서 경기 우승 후 정부 행사 대신 공원으로 향하는 장면 모두 담담하게 당당하다. 


"I'm just chess player."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당당함은  그녀의 실력에 기인한다. 여성이어서, 가난해서, 고아여서 받았던 편견과 차별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지그시 지르밟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열정만큼이나 받쳐주었던 체스 실력이었다. 그런 한심한 것들에 신경 쓰고 계산하며 살지 말 것, 실력으로 극복하면 그뿐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극 후반 소련의 보르고프와의 경기에서 우승하는 장면은 그녀가 갖고 있던 아킬레스건까지 극복하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한다. 보르고프는 베스에게 체스 세계챔피언 이상의 존재였다. 경기전에 가족들과 함께 동물원을 찾고 매 경기 가족들의 응원을 받는 아버지. 베스가 가져보지 못한 단란한 가족과 함께하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이겼어요."라고 말하며 퀸을 손에 쥐어주는 장면은 그녀가 가진 불완전한 가정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모습으로 해석됐다. 


- I My Me Mine -

체스를 만난 것도, 그녀 삶의 무수한 조력자들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가능하게 했던 것은 '그녀 자신'이다. 

눈 감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미친 듯이 쫓은 것도 그녀였다.

때로는 오만불손해 보이고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도 적절히 하지 못했으며 실패를 인정하지도 못하던 그녀였다. 약물과 알코올 중독으로 나락에 떨어진 그녀였다. 하지만 보르고프와의 대국을 앞두고 안정제에 의존하려던 마음과 함께 약을 버린 것 역시 그녀 자신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련을 극복했으며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던 것은 그녀의 선택이자 용기였다. 

보르고프와의 어드전 게임을 앞둔 베스에게 체스 여정 곳곳에 등장했던 상대 선수들의 전화가 걸려온다. 한자리에 모여 예상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한 전략을 전해준다. 단순히 그들이 선한 오지라퍼들이었기 때문이겠는가. 체스에 대한 열정과 편견 없는 태도를 통해 엿보인 베스의 진정성을 알아보았기 때문 아니었겠는가.


멕시코시티에서의 대회에서 만난 13살의 조르지 기레브에게 베스는 묻는다. 

"(세계 챔피언 대회에서) 우승하면, 그다음엔 뭘 할 거야? 16살에 세계 챔피언이 되면 남은 평생 뭘 하겠느냐고."

이 질문은 체스만 생각하며 살아온 베스가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결국 모든 것을 이룬 그녀는 체스가 흔한 일상인 어느 공원으로 향한다. 거기에서 그저 평범한 할아버지 한분과 체스를 시작한다. 체스를 사랑하던 시절로의 회귀를 선택한 것이다.

결국 모든 우연과 필연은 베스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 종합선물세트 -

어렸을 때 선물 받았던 과자종합선물셋트처럼 아껴먹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구색 맞춰 넣은 인기 없는 과자를 발견했을 때처럼 아쉽기도 했다. 

양어머니와 베스의 여정은 <델마와 루이스> 같은 로드무비를 연상시켰다. 때때로 여성영화 같다가 때때로 성장 영화를 표방하는 듯도 했다. 6,70년대를 느끼게 하는 의상, 음악들도 좋았다. 차려놓은 반찬이 많아 이것저것 집어 먹다 보니 배도 부르고 뭘 제일 맛있게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배불리 잘 먹었다. 

그녀가 보여준 당당함, 편견과 차별에 조용히 맞선 용기는 빼어난 체스 실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주인공의 노력은 인정하지만 엄마가 코넬대 수학과 박사까지 한 인재였음을 슬쩍 보여주는 장면은 씁쓸했다. 주인공에게 호의적이기만 한 주변인들의 존재, 눈의 띄는 빌런이 없다는 것도 현실감이 떨어지는 설정이 아닌가 싶었다. 특별한 재능도 없고 인생에 태클 거는 사람 한둘 정도는 기본으로 탑재하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허탈감을 안겨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안(체스판)에서 편안함을 느껴요. 내가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어요. 그리고 예측 가능하죠. 만약 내가 다치면 그건 내 잘못일 뿐이에요."라는 베스의 대사를 곱씹으며, 모두의 인생이 체스판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체스가 그저 체스이듯이 인생도 그저 인생이기를... 그깟 전염병 앞에서 종교, 이념, 정치색 등 각자의 신념이랍시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릴게 뭐람... 


이제 위인전이 싫다던 조카에게 해줄 말이 생겼다. 

억지스러운 위기 설정, 전지전능한 주인공으로 가슴에 남는 것이 뻔하디 뻔한 게 위인전이라지만 결국 우리가 언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고민하게 해주는 것이 위인전이다. 책에 나온 그대로를 해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라면 어떻게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브런치에 작가님마다의 시선으로 써 내려간 <퀸스 갬빗> 감상글이 100개가 넘는다는 사실이 반가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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