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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an 08. 2021

Are You Mother?

< 넷플릭스 오리지널 - 나의 마더 >

인류 재건시설

멸종 사건 이후 경과일 수 001

인간배아 개수 63,000

현재 인간 거주자 수 000


영화는 인류가 멸종한 첫날에서 시작된다.

인공 자궁에서 24시간 만에 태어난 아이는 자신을 키워준 로봇을 "마더"라 부르고 로봇은 아이를 "도터"라 부른다. 인간 엄마와 마찬가지로 마더는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애쓰며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재생시켰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 혼자 잠드는 걸 무서워하는 아이의 침대를 자신의 곁에 놓아주고 아이가 잠들 때까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준다. 아이가 자신의 몸에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도 마더는 다정하게 아이와 눈을 맞춘다. 인공지능로봇이지만 라포 형성이 제대로 된 마더와 아이의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갑자기 등장한 외부 생존 여성에 의해 모녀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의심과 갈등이 생기지만 그런 모습 역시 낯설지 않았다. 사람 사이에도 늘 따르는 관계의 변화 양상이기 때문이다.


< I Am Mother > 은 '인공지능'에 관한 영화다.

마더는 인공지능로봇이다. <에이 아이>의 데이빗처럼 사람과 똑 닮은 외형을 갖추지 않았고  <바이센테니얼맨>의 앤드류처럼 감정이 풍부해 보이지는 않지만 엄마로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특히 아이의 안전을 염려하는 것에는 유난하다. 프로그래밍대로 움직이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꼭 나쁠까?' 질문하게 된다. 제멋대로 판단하고 행동해서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아이의 안전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을까.


영국 드라마 <Humans>에서 가정주부 로봇인 아니타는 자신의 역할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엄마에게 말한다. "제가 당신보다 아이를 더 잘 돌볼 수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에요, 로라. 전 기억을 잊지 않고, 화내지도 않으며 우울해하거나 술이나 마약에 취하지도 않죠. 저는 더 빠르고, 강하며 관찰력이 더 뛰어납니다. 저는 두려움도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그들을 사랑할 수는 없죠."

인간인 우리는, '엄마의 사랑은 로봇이 대신할 수는 없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과하거나 어긋난 사랑, 엄마라는 이름을 뒤집어쓴 악마보다는 인공지능이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이를 안전하고 온전하게 키워내겠다는 프로그램, 더 나은 인류를 만들어내겠다는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더처럼 말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류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라는 주제로 디베이트를 할 때 쟁점이 되는 주장 중 하나는,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도덕성이 문제라는 것. 토론의 여지는 있지만 시사하는 점은 있다.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 넘치는 상황에서 주제넘게 인공지능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 I Am Mother > 은 '엄마'에 관한 영화다.

왜 자기 한 명만 만들었느냐는 아이의 질문에 마더는 다른 배아들을 보여준다.

"왜 우린 함께 태어나지 못했어요?"

"엄마들은 학습할 시간이 필요해. 아이를 키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영화 말미, 아이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해 소각된 아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더 나은 인간이 되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해 죽은 아이들은 마더에게는 실패로 저장된 기록이다. 같은 실패를 피하기 위해 기존과는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가르치고 돌보았는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마더의 말에서 추측하건대,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로봇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더 나은 인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마더는 반복해서, 될 때까지 학습한 것이다. 한낮 기계도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공부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 한 방울 아니 기름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인간 자녀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인간 중에는 그 신성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공부는커녕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이들 말이다. 로봇에게는 학습이 일이요 삶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엄마에게는 무엇이 일이요 삶인가? '엄마'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자는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아이를 위해 엄마의 삶을 송두리째 헌신할 수는 없다. 다만, 엄마의 길을 택했다면 한 아이가 자라서 온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때까지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재우며 잘 놀아주고 잘 가르치는 것이 엄마의 삶이다. '엄마'의 삶을 '선택'했다면 말이다.


< I Am Mother >는 '관계'에 관한 영화다.

아이를 위해 모든 걸 완벽하게 갖춰주는 마더도 자의식이 강해지는 딸 앞에서는 무력해진 듯 보였다.

엄마품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아이가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한 발 한 발 더 넓게 움직일 때 엄마는 불안하다. 게다가 영화에 등장하는 외부 거주 여성처럼 낯선 것들의 등장으로 아이의 가치관이 흔들리기라도 하면 엄마의 불안은 공포가 된다.

처음 아이가 유치원을 갔던 날이 떠오른다. 아이가 벌써 그만큼 컸다는 생각에 감격스럽기도 했고 몇 시간이라도 자유시간이 생겼다며 홀가분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컸던 건 아쉬움이었다. 이 아이의 삶 중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 생겼다는 섭섭함이었다. 아이가 크면서 그 아쉬움에 적응해야 하는 높은 계단들이 때때로 나타났다. 연락 없이 귀가가 늦어지던 어느 밤 느꼈던 불안함, 처음 들어보는 아이의 베프 이야기에 느꼈던 낯섬, 엄마 없이도 무엇이든 해내고 충분히 즐거운 삶을 사는 아이를 보며 느낀 소외감...그 계단들을 한 칸 한 칸 힘겹게 오르면서 엄마는 체념과 포기를 하다가 아이의 개별적 삶을 인정하는 계단 꼭대기에 오르게 된다. 영화에서 마더는 결국 아이의 판단과 결정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는 성숙한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놓아주는 엄마의 모습으로 해석됐다. 아이의 성장과 성숙은 엄마의 한없는 내려놓음으로 가능해진다.


"사실 그 검사는 너보다는 내 능력을 테스트하는 거야."라는 마더의 대사가 대부분의 엄마들이 흔히 하는 고민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아니다. 나만의 고민이라고 해두자. 대부분이라고 쓰고 그 뒤에 숨고 싶은 마음일 게다.

난, 아이의 성적이 엄마 성적표라고 여겼다. 나는 다르다고, 그건 그 아이의 삶이고 난 내 삶을 산다고 나 자신을 속였지만 아이의 대학이 내 20년을 평가한 성적표인 것처럼 괜한 위축감에 의기소침했던 적도 있다.

영화에서 결국 테스트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갑작스레 들어온 외부 여성에 의해, 그녀 때문에 흔들린 아이에 의해 번번이 좌초됐다. 하지만 마더가 던진, '인류를 재건할 도덕성과 판단력을 가졌는가'를 검증하는 마지막 테스트를 아이는 통과했다. 그런 아이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마더는 자신의 능력에 흡족해하며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아이가 건강하고 밝게 자라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는 성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사람.

그것을 엄마로 정의해본다.

그렇다면 당신은, 엄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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