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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an 13. 2021

죽음의 질을 논할 시간

< 이반 일리치의 죽음><그것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다><미 비포  유>

한 달 동안 '죽음'만 생각했다.


라는 첫 문장에 모두가 당황했으리라. 이 말을 누군가가 내게 한다면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난감할 것 같다.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 '나의'라는 단어를 자의적으로 배치해놓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온갖 질문을 쏟아내기 바빴을 것이다.

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 무슨 일 있어? 많이 힘들구나? 등등...

그렇게 우리는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무력해진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볼드모트처럼 입에 올리기조차 터부시 한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눈물이 고이거나 목이 메는 단어이기도 하다. 가족이든 자신이든 죽음이 목전에 다가오기 전까지는 최대한 회피하고 싶어 한다.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삶 속으로 끌어당겨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내가 한 달 동안 죽음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마을교사 모임의 스터디 테마였기 때문이다. 일 년간 멈췄던 마을교사 활동의 첫 시작이 스터디였고 첫 주제가 죽음이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고 맥락 없이 정한 주제였지만 어쨌든, '죽음'의 개인적, 사회적 의미에 대해 고민해보기로 했다. 선정한 도서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관련 영화는 <미 비포 유>였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인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은 평범한 삶을 살던 주인공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죽음은 개인이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이기에 개별적이다. 하지만 수많은 관계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죽음의 과정은 사회적이기도 하다. 사람은 삶의 마지막 순간 돌아본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기를 원한다. 죽음을 생각하며 반드시 삶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는 서울신문사 탐사기획부가 조력자살을 위해 스위스로 향한 한국인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쫓으며  존엄사 문제를 다룬 책이다. 조력자살이란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고통을 덜기 위해 의사에게 치사약을 처방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식이다. 각국의 말기암 환자들이 외국인의 조력자살이 허용된 스위스로 향한다고 한다.


책은, 우리나라의 김씨 할머니 사건을 비롯해 각국의 안락사 사건을 소개하면서 죽음을 개인의 권리로 인식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죽음에 있어서도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하는가의 화두를 던진다.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해진다거나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등 논란의 소지는 존재한다. 하지만 자신의 삶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사람,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 등 다양한 이유로 죽음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은 죽음을 준비하기보다는 죽는 순간까지 죽음을 치료하겠다고 매달리기만 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라는 책 속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음의 탈의료화'는 '좋은 죽음'과 연결된다. 영국 정부는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가족 및 친구와 함께, 고통 없이 사망에 이르는 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정의했다.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해봐야 하지 않을까.


조력자살을 소재로 2016년에 개봉한 영화가 <미 비포 유>다. 촉망받는 젊은 사업가였고 활동적인 삶을 즐겼던 남자가 오토바이 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된다. 6개월 후 조력자살을 위해 스위스로 가기로 결정하고 그동안 간병해줄 여자를 고용한다. 수다스럽고 낙천적인 성격의 여자는 삶을 비관하는 남자에게 사랑의 감정, 로맨틱한 경험, 삶의 가치를 전하며 마지막 순간에 대한 선택이 바뀌기를 기대하지만 남자는 계획대로 존엄사를 선택한다. 여생 동안 정신이 몸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 비참함,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라야만 유지되는 삶 대신 행복한 기억만을 끌어안고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 죽을 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 죽음을 앞둔 가족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 어떤 삶이 잘 산 인생일까?

-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일까?

- 내가 말기암환자이거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면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는가?

- 부모님이나 가족이 존엄사를 원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 질문들을 정리해 디베이트 주제로 정리해봤다.

< 죽음은 개인의 문제다 vs. 사회적 문제다.>

< 한국은 존엄사를 법제화해야 한다. >

< 전 국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의무등록제를 시행해야 한다.>


책과 영화가 던진 화두에 명확한 답을 내지는 못했다. 다만, 죽음을 앞둔 개인이 사회로부터 충분히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며 최선의 노력 후에도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않는 시점에는 삶과 죽음의 선택지를 함께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다움 죽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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