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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an 20. 2021

백 투 더 낭만적 연애의 시기...

< 넷플릭스 오리지널 - 브리저튼 >

시간이 얼마 없었다. 넷플릭스 한 달 무료 이용 만료를 이틀 앞둔 시점에 8화짜리 드라마를 소화하려면 밤을 새우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깟 드라마 좀 안 본다고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니 시간이 없었다는 건 위장이다. 다음 편을 보지 않고서는 잠을 잘 수 없어 날밤을 샜다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겠다.

<브리저튼>을 소개해준 지인은, 1800년대 런던 사교계의 모습과 의상이 충분한 볼거리였으며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뻔하지만 재미있었다며 애써 의연한 척했다. 하지만 그녀의 '밤을 꼴딱 새우고 봤다'는 한마디에 실린 힘을 외면할 수 없어 1회부터 정주행을 시작했다.


동명의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브리저튼> 은 '로맨스 소설'이 가져야 하는 모든 것을 가졌다. 능력, 외모 등 모든 게 완벽하지만 마음 한편 아픔이 있는 남자 주인공, 성격 좋고 매력적이며 현명한 여자 주인공, 그들을 시기 질투하는 약간의 빌런, 작은 것에서 시작된 오해,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갈등을 극복하는 사랑의 힘...


다만 <브리저튼>에는 과거의 로맨스 소설에서는 볼 수 없던, 2021년의 장치들이 많이 등장하는 듯하다.

일단, 변화된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한다. 최근 보았던 <퀸스 갬빗> <애놀라 홈즈>등의 작품들에서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브리저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 시장에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해 청혼받기를 원하는 수동적인 존재이지만 주인공을 비롯한 몇몇 중심인물들은 문제를 인지하고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극 중 여성들은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 크게 반기를 들지는 못하고 사회적인 변화까지 유도하지는 못한다. 그저 자신이 속한 가정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주체적인 존재로 나서는 정도. 하지만 완벽한 남주에 무임승차하는 여주는 자취를 감췄다. 오히려 어느 순간 찌질 해 보이기까지 하는 남성들을 자신의 손위에 올려놓고 훈계, 계도하는 여성들이 부각됐다. 런던 전체를 들썩이게 하는 사교계 소식지인  <레이디 휘슬다운>의 존재감이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오랜 세월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권력과 명예를 손에 넣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으며 확고한 지위를 누려왔지만 정작 남성들도 '맨박스'라는 사회적 고정관념에 갇혀 자유롭지 않았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 권력의 심각한 불균형을 마주해야 했던 남성들은 그 간극을 채우기 위해 차별과 폭력을 강화하고 재생산했던 게 아니었을까.


<브리저튼>에 나오는 여왕, 공작, 공작의 든든한 지원자인 레이디 댄버리 등의 귀족들이 흑인이라는 설정 역시 오늘날의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고자 한 장치가 아닐까. 역사적 팩트와는 동떨어졌을지 모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 해도 로맨스 소설이든 영화든 완벽한 외모의 남녀를 내세워야 성공한다는 공식은 사라지기 힘들 것 같다. '주인공들의 얼굴이 개연성이요 몸매가 미장센이다'라는 누군가의 감상평을 보며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감상평이라고 비판하고 싶다가도 8화까지 숨죽이며 밤을 새버린 내가 할 비판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외모보다 내면을 보라고는 하지만 근육질 몸매의 남자 주인공과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여자 주인공의 러브신을 아름답지 않다고 할 수는 없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꼭 혼자서만 보라고 신신당부하는 후기들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친구들과 쉬는 시간마다 모여서 할리퀸 소설 낭독회를 가졌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남녀 주인공들의 뜨거운 사랑과 엇갈린 운명, 행복한 결말에 취해 세상의 모든 연애는 그럴 것이며 그래야 한다고 믿던 때였다. 10대의 나는 내 삶을 송두리째 행복으로 바꿔놓을 백마 탄 왕자님과의 완벽한 로맨스를 꿈꿨다.

스무 살에 시작한 연애는 낭만적이었다고 감히 말한다. 그는 나에게 완벽한 남주였다. 나까지 완벽한 여주였다고 당당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에게도 얼마간의 갈등이 있었으며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시간이 있었다. 열정적으로 사랑했으며 보통의 로맨스 소설처럼 '결혼'과 '출산'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이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말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삶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가 죽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이다."


<브리저튼> 은 한쪽의 일방적인 헌신과 희생을 강요하는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관계의 성장과정을 지켜보게 한다. 사실, 멋진 남주와 아름다운 여주의 러브신은 그러한 가치를 알게 해주는 장치에 불과하다. 그 장치가 꽤 훌륭해서 밤을 꼴딱 새우게 만들었고 잠을 잊은 몰입 덕분에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됐다. 낭만적 연애의 시절과 함께 진짜 로맨스였던 결혼생활을 회상했다. 우리 관계는 얼마만큼 성장, 성숙했을까?


"당신이 무슨 20대인 줄 알아? 그렇게 밤새워 드라마를 보게? 이제 우리는 그러면 죽어~~"라며 홀딱 깨는 내 삶의 남주는... 절대 안 볼 시리즈  <브리저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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