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무식한데 용감하면 안된다.

치킨가게 복기록

by 늘봄유정

처음 장사를 시작한 2010년의 나는 7살, 10살 아이들의 엄마이자 가정주부로 10년을 살아온,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었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틈틈이 놀러 다니고 주중엔 축구, 수영, 미술 등 학원 데리고 다니느라 바빴다. 오전엔 커피숍에서 동네 지인들과 만나 커피를 마시거나 학교, 유치원 봉사, 참관수업, 운동 등으로 매일 바쁜 스케줄이 있었다. 내손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이,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살고 있었다. 생활이 여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육아, 가사라는 소임에 대한 가치를 중요시했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신념이 있었던 까닭이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고는 하나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었다. 결혼 전 1년간 학원강사를 했지만 작은 보습학원이라 직장생활을 했다고 하기에는 경험한 바가 적었다. 그러니, 장사를 해보자는 남편의 제안이 당황스러웠고 남편의 손에 이끌려 가게 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는 것은 데이트하는 걸로 받아들였다. 부동산에 들어갈 때도 남편 뒤꽁무니에 숨어있었고 부동산 사장님과 남편의 대화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치킨집 자리로 알아보러 다닌 곳은 핫한 신도시, 판교였다.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곳이었고 도시 한가운데에는 IT회사들이 밀집해 있었다. 상권이 거주지 곳곳에 펼쳐진 게 아니라 중간중간 모여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뭔가를 먹으려면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것. 그러니 가게를 돌아보며 크게 신경 쓴 것은 접근이 쉬운가, 주차가 용이 한가였다.


세 개의 후보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 장소는 대로변 복층 가게였다. 인테리어를 해놓는다면 꽤 예쁘게 빠질 것 같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가 맘에 걸렸는데 일단,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아파트 입구로 돌아 들어가면 뒤편 어딘가에 차를 댈 수 있다고 했지만 번거로운 일이었다. 대로변이라고는 해도 공원처럼 꾸며놓은 넓은 인도를 한참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위치. 내가 손님이라면 동네 마실 나왔다가 들르거나, 잠깐 포장하기 위해 들르는 거 말고는 일부러 찾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월세가 5천에 600만 원. 물론 판교 대부분의 상가가 높은 분양가 때문에 월세 역시 높을 수밖에 없었지만 선뜻 내키지 않았다.


두 번째 장소는, 서판교 상가주택단지에 위치해 있었다. 큰 도서관이 있고 인근에 공영주차장 부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상가주택 골목에 위치한 가게는, 접근성이 꽤 떨어졌다. 대로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았고 유동인구도 별로 없는 곳이니 '이 치킨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손님이 일부러 찾아오는 게 아니면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세 번째 장소는, 동판교에서 서판교 방면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해있었다.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허허벌판에 건물이 덜렁 하나. 파리바게트와 편의점만 입점이 되어 있었고 상가 전체가 모두 공실. 그나마 코너 자리여서 보이기는 참 잘 보였다. 가게 뒤편으로는 원마을 9,10,11단지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옆으로는 전원주택단지가 있었다. 근처에 초등학교, 중학교가 있으니 젊은 부부들도 많이 살 테고 무엇보다, 판교 테크노벨리에서 가까우니 직장인들의 유입도 기대해볼 만했다.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는 이 가게가 왠지 모르지만 마음에 들었다. 월세가 싼 것도 아니었다. 1억에 450만 원. 그런데도 이 가게여야만 하는 이유를 계속 만들어냈다.

가게 옆에 주차를 하거나 야외테이블을 펼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것, 주중엔 직장인 주말엔 가족 손님까지 상대할 수 있다는 이점, 바로 옆에 큰 상가건물이 들어설 예정인데 아웃렛이 계획되어 있다는 부동산 사장님의 은밀한 정보, 파리바게트가 입점한 건물이니 어느 정도 믿어도 되는 상권 아니겠냐는 안도.


최종 선정한 가게를 계약하던 날, 월세를 조금이라도 더 받겠다는 임대주와 젊은 부부가 처음으로 장사한다는데 조금 신경 써달라며 중재하던 부동산 중개인 사이에서 어찌할 바 몰랐다. 얘기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자 화가 나서 잠시 나가버렸던 임대주님을 기다리며 가슴이 얼마나 콩닥거렸는지 모른다. 분명 남편과 함께 있었는데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그날 난 꽤나 긴장하고 경황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찌어찌하여 계약을 하고 집에 돌아오던 길에 속절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억나는 건, 그것이 기쁨의 눈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창업을 했다는 설렘이나 새로운 출발에 대한 벅참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끼니때가 훨씬 지나도록 집에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다가 배를 곯고 있을 아이들 생각이 났고, 앞으로 이런 날이 많아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장사였으니 내 도장을 찍기는 찍었는데 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각이 없었다. 애초부터 계획이 있던 남편을 따라다니며 그가 하는 대로 따라 했다. 지나고 보니 난 껍데기만 움직였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무식했다. 무식한 줄도 몰랐다. 그래서 겁도 없었다. 가장 나쁜 케이스...


무식해서 용감한 게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사진에서 묘한 설렘이 느껴지는 건 뭐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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