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정기가 결혼했다.

치킨가게 복기록

by 늘봄유정

정기가 결혼한대~


뭐라고? 그 어린애가 결혼한다고?

뭐라고? 걔가 벌써 서른이라고?

남편이 전해준 정기의 결혼 소식에 아득한 기억이 소환됐다.


정기는 우리 가게 첫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고 부모님 동의서를 들고 나타난 앳된 청년은 '믿고 맡기는' 직원이었다. 흔한 지각 한번 하는 법 없었고 초지일관 예의 바르게 행동했으며 속내가 깊었다. 말끔한 얼굴에 날렵한 몸, 깔끔한 옷차림. 뭐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일은 또 얼마나 시원시원하게 하던지, 가게를 날아다닐 정도였다. 마치 내 아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을 하고 다녔다. 간혹 정기의 부모님을 뵐 때가 있었는데, "어쩜 아드님을 이리 잘 키우셨어요~"라는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미용을 배우고 싶다며 일찌감치 진로를 정한 그는 미용 전문대학을 다녔다. 남들 다 하듯 대학을 가고 남들 다 하듯 회사에 취직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설정해 신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던 청년...

나보다 한참 어려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최초의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런 그 아이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수업을 마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갔다. 빠듯하게 도착한 예식장은 마스크 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신랑은 입장을 앞두고 서 있었다. 기다렸다가 식이 끝난 후 인사해도 될 것을 반가운 마음이 주책맞게 튀어나온 나는 긴장하며 땀 흘리고 서 있는 신랑에게 아는 척을 하고 말았다.

처음엔 '누구?' 하는 표정을 짓던 정기는 이내 마스크 너머의 '옛 사장'을 용케도 알아봤다. 입장을 앞두고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두 손을 내밀어 내 손을 꼭 잡아주는 그 아이는 변함없이 멋있는 사람이었다.

"남자 사장님은요?"라며 남편을 찾은 정기는, 일정이 있어 참석 못했다는 얘기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신랑 입장!'이라는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늠름하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노라니 아들의 결혼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뿌듯할게 뭐다냐...


정기의 결혼은 10년 전, 3년 동안 치열하게 참전했던 전쟁터를 떠올리게 했다. 다리 한쪽을 잃는 부상자가 된 것도 아니요, 끈끈했던 전우를 잃었던 것도 아니지만 40여 년의 내 인생 중 가장 험난했던 시절로 기억된다. 가게를 넘기고 나오면서 언젠가 꼭 글로 쓰리라 다짐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던 3년이었다. 어딘가에 끄적여놓았던 메모들도 있을 텐데...


집에 오자마자 여기저기를 들췄다. 그날그날의 매출을 기록했던 탁상 달력, 알바생들의 근태를 기록했던 수첩, 가게 임대 계약서,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 계약서 등 그때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 인생 제2막을 치킨집으로 시작하고 싶은 이들, 막연하지만 왠지 자영업이 회사원보다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하거나 청사진을 제시하고픈 거창한 시도는 아니다. '나처럼 하면 망하지는 않는다.'라든가 '나처럼만 하지 말아라.'등의 노하우랄 것도 없다.

돌아보니 돈은 안 남았지만 사람에 대한 기억만 남은, 개인의 기록이다. 제대로 기억을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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