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윤문노 할아버님을 찾습니다.
치킨가게 복기록
'손님은 왕이다'라는 고루한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 왕처럼 군림하면서 무리한 요구를 해오거나 무조건적인 친절을 강요하는 사람에게는 존중과 예우가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폭군 같은 손님보다 친구 같고 이웃 같은 손님들이 훨씬 많았다. 사랑방 드나들 듯 오셔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시던 분들... 사람을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세세하게 챙기지 못하는 내 성격 때문에 그분들의 연락처 한 장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결국 귀한 인연들이 장사 종료와 함께 끊어져버렸다.
단골손님 중 근처 회사의 중역이셨던 중년 남자분이 기억난다. 늘 직원들을 서너 명 이끌고 오셔서 푸짐하게 시켜 드시고는 직원들 손에 치킨 한 마리씩을 꼭 들려 보내시던 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오셨는데 매번 십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주셨으니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분이다. 지나고 보면 마냥 감사한데 어느 날 그분이 던지신 농담 한마디에 기분이 상했던 나는 이후로 꿍한 마음을 품고 그분을 대하게 됐다.
가족들과 며칠간의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오래간만에 나타난 우리 부부를 보고 "좋은데 다녀왔다며? 그거 내가 보내준 거 아닌가? 맞잖아~ 내가 여기서 팔아준 게 얼만데~ 허허허"라며 농담을 던지셨다. 따지고 보면 손님들이 십시일반 보내준 여행이 맞는데, 당시에는 베베 꼬여버린 마음으로 '흥! 칫! 뿡' 해버렸던 것이다. 이후로 냉랭하게 그분을 대했던 나의 쫌스러움이 내내 후회되곤 했다.
남편과 유난히 돈독해져 함께 운동을 다니던 손님도 계셨다. 친동생처럼 여기셨는지 사놓고 한 번도 안 입은 옷이라며 고가의 옷을 주기도 하셨고 맥주 한잔 생각날 때면 혼자 오셔서 남편과 맥주 한잔 하고 가시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술상무 해드리던 손님들이 꽤 있었다.) 가게 바로 옆 주택에 사셨으니 그분에게는 우리 가게가 동네 마실 겸 들르는 사랑방이었던 것이다.
젊은 부부가 고생한다고 안쓰러워하시며 독일 이민을 적극 권유하시던 중년 부부도 생각난다. 퇴근길에 자주 들러 새로 출시된 매운 치킨을 포장해가시던 그들은, 독일의 '옥토버페스트'에서 치킨을 판다면 대박 날 것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 어마어마한 축제에 안주라고는 소시지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나라 치킨 갖고 가서 팔아봐~ 충분히 경쟁력 있을걸? 게다가 애들 대학교까지 다 공짜잖아~"
진지한 말씀에 잠시 고민해본 적은 있지만 어쨌든 한국을 떠나지는 않았다.
그 모든 분들에 대한 기억을 뒤로하고 가장 만나 뵙고 싶은 분은 '윤문노 할아버님'이다.
당시, 칠순에 가까운 연세였던 걸로 기억한다. 친구분과 거의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시던 그분은 한결같이 '마늘 전기구이'만 드셨다. 거기에 내가 직접 만든 무 피클과 본인이 직접 들고 오신 채소를 곁들이셨다. 항상 검은 봉지에 비트, 순무 같은 채소를 서너 개 담아오셔서 "나는 딱 한 개만 깎아주고 나머지는 주인들 드시게~"라고 하셨다. 때로는 그게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늘 변함없이 같은 시간에 같은 친구분과 오셔서 한두 시간 동안 저녁을 드신 후 귀가하는 루틴에 우리도 적응을 해버렸다.
언젠가는 우리 부부에게 맛있는 점심 한 끼 사주고 싶다시며 청계산 자락의 유명한 곤드레밥집으로 부르셨다.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그 마음이 꽤나 크고 따뜻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치킨 튀겨 먹고사는 30대 젊은 부부를 보며 어떤 애환을 느끼셨기에 따뜻한 밥 한 끼 사주고 싶으셨던 건지, 저간의 사정은 모르겠지만 참 감사한 마음이다.
이분 역시 연락처 하나 없이 이별하게 됐다. 가게를 넘길 때 즈음해서 발길이 뜸해지셨던지라 어디가 편찮으신지, 이사를 가신 건지 안부도 모른 채 단절된 인연.
만나야 할 사람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언젠가 길에서라도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두 손 꼭 잡고 그때 참 감사했노라 인사드리고 싶다.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할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