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진상은 없다.

치킨가게 복기록

by 늘봄유정
‘진상’은 본래 ‘진귀한 물품이나 지방의 특산물을 윗사람에게 바치는 행위’를 의미했으나, 진상이 지닌 폐단이 부각되면서 ‘허름하고 나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진상’은 이 말의 부정적 의미를 차용하여 ‘못생기거나 못나고 꼴불견이라 할 수 있는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진상 떨다’라는 말은 ‘유독 까탈스럽게 굴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 출처 : 대중문화사전 >


장사를 하는 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고객 유형이 있다. 흔히 '진상'이라고 이야기하는...

치킨집을 하던 당시, 우리에게도 감당하기 힘들었거나 이해할 수 없는 손님들이 더러 있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경험하면서 때로는 조아리기도, 때로는 무표정으로 응대하기도 하면서 순간의 당혹스러움을 이겨내 보고자 했다. 그리 곱게 자라지도 않았으면서 곱게 자란 시늉을 하느라 그랬는지 험지에 내몰린 것 같은 심정으로 3년을 버텼다. '난 절대 저런 손님이 되지 말아야지...'를 되뇌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가장 흔하게 겪은 험난한 손님은 '이런저런 불만을 표현하는' 손님이었다.

먹는장사가 힘든 이유는 모두의 입맛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만드는 이가 누구인지에 따라 맛의 미묘한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고, 예민한 손님의 경우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 버린다.

골뱅이 무침의 경우 본사 레시피에서 제시한 소스 정량은 세 스푼이었다. 숟가락에 묻은 소스를 모두 떼어내 가며 정직하게 퍼담은 세 스푼인지 거칠게 퍼담은 세 스푼인지에 따라 맵고 짠맛이 달라졌다. 기존에 본인이 먹던 맛과 다를 때 다시 무쳐달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손님의 정당한 요구였다. 하지만 '골뱅이 양이 적다, 쫄면 사리를 오늘만 서비스로 달라, 여기는 왜 국수사리가 아니고 쫄면이냐.'등의 불만과 요구에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매번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치킨무를 직접 만들어 내놓던 때에는 본사에서 공급하는 치킨무를 내어놓으라 하고, 본사 공급 무를 내놓으면 수제 치킨무가 더 좋았다고 했다. 짜다, 싱겁다, 맵다 등 맛에 대한 불만부터 덜 익은 것 같다, 바싹 익었다, 더 튀겨달라, 새것으로 다시 튀겨 달라 까지 손님들의 요구사항은 다양했다.

음식 장사꾼의 일은 백인백색의 입맛과 요구사항에 답해야 하는 것이었다. 힘들어도 어쩌겠는가. 그들에게 우리의 생계가 달려있는것을., .

하지만, '무플보다 악플'이랬다. 이 말은 장사에 더 들어맞는 말이라 생각된다. 우리 가게 음식에 관심과 애정이 없는 손님은 아무 말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반면 무언가를 요구하는 손님이란, '다시 올 테니 잘해보자~'라고 제안하는 손님이다. 불만이 있다고 해서 그들을 진상으로만 몰아세울 수 없는 이유다.



또 다른 험난한 손님 유형은 '비도덕적'인 사람들이었다.

누가 봐도 불륜인 커플이 있었다.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중년의 남녀였는데 초저녁부터 들르곤 했다. 기본으로 주는 마카로니 뻥튀기를 몇 그릇씩 비워가며 맥주만 시켰다. 취기가 오를수록 남자의 목소리는 커졌고 여자의 목소리는 울음에 가려졌다. 일을 하면서도 온통 귀는 그들에게 열려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예뻐 보이지도 않는 사랑을 한답시고 저리 앉아있는 건지 궁금했다. 때로는 싸우고 나가버리느라 돈도 안 내고 가버리기도 했고 때로는 만취해 고꾸라져 마감시간이 되도록 못 일어나기도 했다. '내로남불'이란 이런 것임을 제대로 보여줬던 그들... 아직도 사랑하고 있으려나...


치킨을 먹고 여러 마리 포장까지 해달라 하시고는 그대로 사라지신 어느 중년 신사분도 생각난다. 한 푼이 아쉽던 시절, 정신없이 바쁜 날이었다. 전기구이 한 마리를 맛있게 드시고는 포장된 닭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지셔서 영영 나타나지 않으셨다. 고의가 아니었을 거라고 여겼다. 계산을 한 것으로 착각하셨을 거라고, 술에 취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가신 걸 거라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사정이 있어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배는 고프고 치킨 냄새는 진동하는 길에서 저도 모르게 치킨집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리라. 한 마리를 맛있게 먹노라니 집에서 기다릴 배곯은 아이들이 떠올랐고 호기롭게 두 마리 포장을 주문했으리라. 비어있는 지갑과 그보다 먼저 비어버린 통장을 생각하며 주인과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던 중,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틈을 타 여유롭게, 들키지 않을 정도의 잰걸음으로 나간 것이리라... 어떤 이유이건간에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잡아보겠다고 CCTV를 돌려보았지만 그저 맛있게 치킨을 뜯고 나서 봉투를 들고 천천히 뒷문으로 나가는 모습뿐이었다. 그 화면에 어떤 고민과 격정이 담겨있었겠는가...



우리에게 '치대는' 손님으로 힘들었던 기억도 난다. 방식은 좀 달랐지만 말이다.

주문을 할 때부터 계산할 때까지 우리가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압적으로 대하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내가 치킨 따위나 먹으러 다니는 사람이 아닌데 와줬으니 알아서 모셔라!'라는 듯한 느낌을 전하던 분. 반복되는 날카로움에 우리가 뭐 잘못했나 싶었던 의문은 그녀가 자녀들과 함께 왔을 때 해소되었다. 그녀는 원래 그런 말투와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주눅 들어있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못마땅해하는 그녀. 어쩌다 만나는 우리보다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여겼다. 이제 생각해보니 누구보다도 그녀가 오히려 짠하게 기억된다. 삶에 어떤 불만이 쌓였기에 그리 날을 세우고 살았던 걸까... 아니 그전에, 난 그녀의 무엇을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쉽게 판단했던 걸까. 지금도 마찬가지... 무엇을 얼마나 기억한다고 그녀를 평가하고 있는 것인가.


문 닫기 꼭 한 시간 전에 찾아와서 주문을 하고는, 나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자 했던 여자분도 생각난다. 손님이 있건 없건 영업 마감시간인 1시가 훨씬 지나도 갈 생각을 안 하셨다. 혀는 꼬였고 취할수록 말은 많아지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은 팔짝팔짝 뛰며 들어와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하셨는데, 본인이 당선이라도 된 것처럼 나의 열렬한 환호와 축하를 원하셨다. 속에 없는 말과 행동은 못하는 편이라 아무리 손님이라도 거짓된 축하, 환호를 조금도 전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꼬장꼬장하고 냉랭하게 대하는 내가 못마땅하셨는지 한동안 발길을 안 하셨다. 지나고 보니 '그게 뭐라고...'라는 마음이 인다. 장사꾼이 돼서는 손님의 마음 하나 어루만져드리는 게 뭐라고 그걸 지나쳤을까. 그저 호응과 공감을 원했을 뿐인 그녀를 뒤돌아서며 진상이라고 욕했던 내가 더 진상이 아니었을까...



장사를 접은 후 다시 손님의 역할로 돌아왔을 때, 손님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나만의 수칙이 수십 가지는 생긴 듯해서 뭘 먹으러 가거나 사러 가는 게 꽤 부담이 됐다. 음식에 이물질이 들어갔어도 입을 닫았고 불친절해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싶었다. 사장에게 이입된 감정에서 좀처럼 나오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나니, 사장의 입장과 고객의 입장이 두루두루 보인다. 다들 그럴만한 사연과 사정이 있다. 애초부터 못된 사람이 아니고서는 사장이건 손님이건, 진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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