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연예인 OOO이 왔던 집

치킨가게 복기록

by 늘봄유정

유명한 음식점에 가면 한쪽 벽에 빼곡히 들어찬 것들이 있다. 그곳을 다녀간 연예인들의 사인이나 주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그것이다. 우리 가게에도 가끔 연예인들이 왔었다. 문제는, 그들이 연예인인지를 젊은 직원들이 잘 못 알아봤다는 것... 그만큼 당시의 핫한 스타들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가수 강수지 씨가 가게 근처에 거주하는 언니와 함께 매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 내내 어느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마침 친구분들과 오셨던 친정 엄마가 알아보셨지만 실례가 될까 봐 아는 척을 못했다고 했다. 그녀가 가버린 후 얘기를 해주셨으니 주방에 있던 나 역시 얼굴을 보지 못했다.


2012년, 2013년 즈음엔 농구선수 현주엽씨와 축구선수 조재진씨가 자주 왔다. 사업상의 문제가 있는지 누군가와 늘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곤 해서 쉽게 아는 체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여러 번 방문했던 터라 분위기 좋을 때 치킨 접시에 사인도 받아두었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이후 그들이 함께 소송에 휘말렸다는 기사를 접하며 우리 가게에서 왜 그리 심각했었는지를 알았다. 시시비비를 따지기 전에, 괜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인지. 옷깃만 스쳤던 인연도 무섭다.


어느 눈 오던 날에는 탤런트 장용님이 와주셨다. 근처에서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오셨다는데, 푸근한 그 인상 그대로셨다. 기분 좋게 사인도 해주셨고 "뭘 사진까지~~"라고 하시면서도 흔쾌히 사진도 찍어주셨다.


매번 고민스러웠던 것이, 연예인을 마주했을 때 아는 척을 하는 것이 예의일까, 모른척하는 것이 예의 일까였다. 모른척하자니 자존심이 상할 수 있겠다 싶었고, 아는 척을 하자니 사적인 시간, 만남에 대한 방해가 아닐까 여겨지기도 했다. 조갑경씨가 온 적이 있었는데, 사진과 사인을 정중히 거절하셨다. 이해가 가면서도 왠지 모르게 섭섭한 마음도 들었던 이유를 모르겠다. 스스로를 연예인에 호들갑 떠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긴 나였지만 TV에서만 보던 사람을 만났을 때 이상하게 흥분됐음을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겠다. 상대의 인기 여부는 문제가 안됐다. 나의 이 흥분을 전하고 사진이든 사인이든 흔적을 남겨놔야겠다는 호들갑. 나 같은 사람을 하루에도 수십 명씩 상대해야 하는 그들은 얼마나 피곤했을는지... 새삼 죄송스럽다.



그 누구보다도, 아는 체를 하지 못해 가장 아쉽고 안타까웠던 인물이 있다. 제발... 한 번만 다시 찾아주신다면 격하게 알아봐 주고 싶었던 사람. 이미 두 번이나 왔지만 아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던... 권상우 씨다.

주방에 있을 때는 누가 주문을 하고 포장을 해가는지 모른다. 오픈 주방이지만 계산대는 잘 안보이기도 하고 조리를 하다 보면 손님을 살필 경황이 없다. 손님이 가시고 난 후 직원이 끝을 흐리며 얘기했다.

"방금 왔던 분... 권상우 씨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엥? 뭐라고? 물어보지~"

"그러기엔 좀..."

"아... 아쉽다. 사인이라도 받아둘걸. 지난번에도 못 알아봤는데 기분 상해서 우리 가게 다시는 안 오는 거 아닐까? ㅎㅎㅎ"

그의 팬도 아니면서 뭐가 그리 아쉬웠던지... 결국 가게 CCTV를 돌려 권상우 씨를 찾아내고 말았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계산대에 서있는 모습이라 말 안 하면 권상우인지 전혀 모를 사진이었지만 지인이라도 만날라치면 CCTV 캡처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가게에 권상우 씨도 왔었다~"라며 자랑을 하곤 했다. 그러면 상대는 말했다.

"이 사진 어디를 봐서 권상우라는 거야? 사진도 흐릿하고 얼굴도 제대로 안 보이는 구만."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가게도 연예인이 오는 가게라는 게 그리 흐뭇할 수가 없었다. 음식점마다 사인과 사진이 붙어있는 이유. 사장님들의 공통된 심리.

연예인 OOO이 왔던 집!


물론 소문난 맛집이라 일부러 우리 가게를 찾은 것은 아님을 고백한다. 그저 지나가던 그 자리에 우리 가게가 있었기 때문이지 판교에 여섯 개나 되는 프랜차이즈 치킨집 중 우리 가게를 콕 집어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 가게는, 연예인도 왔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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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보이겠지만... 권상우씨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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