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 의좋은 형제

치킨가게 복기록

by 늘봄유정

가끔씩 가게에 들르던 형제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그런 이들로 기억한다.

형은 어깨에 닿을 듯한 파마머리였는데 가끔은 머리띠를 하기도 했다. 잘생기고 가무잡잡한 얼굴은 밝았고, 사람 좋은 인상을 풍겼다.

동생은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뽀얀 얼굴이었다. 인상 좋기는 형과 마찬가지였고 '반듯'한 느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해졌다.

두어 달, 어떤 때는 그보다도 더 뜸하게 들렀지만 그들이 진하게 기억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다정다감했다.

20대 후반의 형제들이 어떻다고 성급히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보통 대면 대면하거나 으르렁거릴 것이라는 내 선입견을 말끔히 갈아치운 이들이었다. 두어 시간 동안 맥주를 마시는 내내 도란도란 정겨운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형제 사이에 무슨 할 말이 저리 많을까? 둘이 뭐가 저렇게 재미있을까?' 싶었다. 형제 사이인걸 몰랐다면 연인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예의 바른 청년들이었다.

주문을 받는 직원들에게 참 깍듯했고 가끔씩 말을 걸며 친한 척하는 우리 부부에게도 친절했다. 뭐라도 하나 더 주고 싶은 마음에 감자튀김을 서비스로 줄라치면, 이러시지 않으셔도 된다고 손사래를 치며 어쩔 줄 몰라했다. 둘이 대화를 하며 편하게 늘어져 앉아 있다가도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가면 자세를 곧추 세우며 바로 앉았다. 느긋하게 술 한잔 하러 왔는데 되려 나 때문에 불편했겠구나 싶다.


그들은 그냥, 예뻤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형은 한국에 나올 때마다 동생과 우리 가게에 들른다고 했다. 동생은 서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맡은 프로젝트가 있어 자주 못 왔다며 미안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에 우리는 그들의 부모라도 된 것처럼 흐뭇했다. 오래간만에 고향집에 내려와 밥을 먹는 아들들을 보듯...

"우리 아들들도 커서 저들처럼 사이도 좋고 각자의 삶을 잘 찾아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종종 얘기하곤 했다.


언젠가 그들이 처음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가게에 온 적이 있었다. 생각보다 연세가 많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책맞게도 난 내 속마음을 고백하고 말았다.

"아드님들이 두 분 다 너무 멋지셔서 어머님을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

돌이켜보니 참 주제넘고, 어찌 보면 무례한 말이었다 싶다. 당시 그 아들들의 나이와 내 나이 차이가 5년 남짓 됐을까 싶기 때문이다. 아들뻘 되는 치킨집 사장이 자식 잘 키웠다고 칭찬하는 꼴이었으니... 어머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황당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말은 진심이었고 그 맘은 지금도 여전하다. 게다가, 아들을 잘 키웠다는 칭찬은 언제, 누구에게, 얼마큼 들어도 절대 기분 나쁜 말이 아님을 아는 나이가 됐다.



작년 이맘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 아이가 몇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자유로운 영혼에 자기주장도 강한 아이라 학창 시절엔 조금은 버거운 아이였는데,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싹싹하고 빠릿빠릿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집에서는 방도 안 치우고 자기가 먹던 컵 하나도 안 치우던 녀석이 하루 종일 설거지를 했고 주방 일을 하고 있었다. 백화점 지하에 있던 매장을 종종 들르곤 하던 나를 어느 날 주방 실장님이라는 분께서 부르셨다.

"빈말이 아니라, 요즘 보기 드문 아이예요. 어찌나 성실하고 바른지... 아드님을 너무 잘 키우셨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어요~"라고 했다. 그분은 일한 지 한 달도 안된 큰아들에게 엄마 생일 케이크를 사다 드리라며 2만 원을 건네셨다. 한사코 거절하다가 만원만 받아왔다는 큰 아이의 말은 어떤 생일 선물보다도 기쁜 선물이었다.


큰 아이와 모든 게 정반대인 작은 아이도 늘 나의 걱정이었다. 집에서는 다정다감하지만 자기 할 일 외에 다른 사람이나 주변 상황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와 학원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전해주시는 칭찬은 모든 게 엄마의 기우였음을 알게 해 주었다. 공부도 잘하고 반듯하며 주변 친구들도 잘 챙기는 아들을 두셔서 얼마나 좋으시냐는 칭찬을 듣는 날이면 남편에게 했던 말을 또 하고 "아까 했어!"라는 타박을 들어도 마냥 좋았다.


10년 전 만났던 그 형제와 똑 닮아가는 아들들을 보며, 언젠가 우리 아들들도 야심한 밤 치킨집에 앉아 두런두런 정답게 얘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꿔본다. 그들도 어느 치킨집 사장의 눈에 참 정다워 보이고 바르게 큰 청년들로 보였으면 좋겠고, "아드님 둘을 어떻게 그리 잘 키우셨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난 그저 아들바보다. 치킨이나 손님에 대해서만 생각해도 모자를 시간에 오로지 아들들 생각만 했던 셈이다. 10년 전엔 정겨운 형제를 보면서 우리 아들들을 떠올렸고, 이제는 다 큰 아들들을 보며 그들을 떠올리고 있으니...


어린이날, 엄마 아빠와 치킨집으로 출근했던 아이들. 저 멀리 남편의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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