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 실땅님

치킨가게 복기록

by 늘봄유정

우리 가게에도 실장님이 계셨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잘생겼는데 성격도 좋고 알고 보면 회장님의 손주인 그런 실장님, 어느 드라마에선가 혀가 짧은 여주인공에 의해 '실땅님'이라고 불리던, 그런 사람은 아니다.

몰려드는 주문을 단숨에 해결하고 어떤 돌발 상황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주방을 책임져 주는 사람, 깐깐한 사장도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장사를 하는 동안 주방을 맡았던 분은 총 세분이었다.

개업과 동시에 주방일을 담당했던 분은, 한 달 만에 그만두셨다. 40대 중반의 남자분이셨는데 무료한 현재와 화려했던 과거를 비교하며 매일 투덜거리시더니 허리 통증을 이유로 근무 도중 갑자기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으셨다. 당시의 당혹스러움을 떠올리면 그분은 실장님에서 제외하고 싶다. 하지만 지난 일 구태여 나쁜 기억으로 남길 거 뭐 있을까. 초보 사장들에게 더없이 힘이 되고 도움이 됐던 존재였던 것만 인정하고 첫 번째 실장님으로 새겨본다.


오랜 공백 끝에 가까스로 뽑은 실장님은 50대 중반의 여성분이셨다.

'장사 경험 무, 치킨집 가게 경험 무, 사회생활 경험 무'였던 그분을 과감하게 채용한 것은 그분의 진정성 있는 표정과 말투 때문이었다. 혹은 고상한 태도 때문이기도 했다.

고생 한번 안 하고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셨다고 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강남에 아파트 몇 채를 날리고 겨우 판교 아파트만 한채 남겼다는 그분은 좌절감과 무료함, 우울증 그 어디쯤을 방황하시다가 치킨집 주방 직원에 도전하시게 됐다.


실장님은 아이들 간식 모두를 손수 만들어 먹이셨다는 자부심만큼의 실력자셨다. 치킨부터 시작해 골뱅이 무침, 어묵탕 등 그분의 손을 거치면 한결 고급진 맛이 됐다. 골뱅이 무침을 할 때 본사 양념에 식초와 고추기름을 첨가하라는 팁 덕분에 우리 집 골뱅이 무침은 유난히 맛깔스러웠다. 치킨을 튀길 때도 정성을 다하셔서, 꽃처럼 피어오르는 크리스피 치킨의 튀김옷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치킨 포장 상자가 제대로 닫히지 않아 애를 먹는 아르바이트 직원을 바라보시며 실장님은 자부심 넘치고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으시곤 했다.

음식 솜씨만큼이나 마음도 깊으셨다. 우리 부부를 늘 안쓰럽게 생각해 바쁘지 않을 때는 당신이 가게 마무리를 맡아하겠다며 일찍 들어가 쉬라고 하셨다. 매출이 떨어지는 일요일엔 아이들과 함께 하라며 온종일 쉬도록 오픈과 마감을 책임져주셨고 이따금씩 여행도 가도록 배려해주셨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여유였다.

무리한 작업으로 인해 손목 통증이 심해지셨고 남편의 사업이 다시 일어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될 때까지 한결같은 분이셨다. 2년 정도 일하는 동안 지각이나 결근 한번 없는 성실함, 나이 어린 사장에게도 늘 존대하며 예의를 갖추시던 품위를 잊지 못한다.


실장님이 그만두시기 반년 전부터 주방을 함께 맡아준 직원이 있다. 우리 가게의 세 번째 실장님.

실장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원휘야~'라는 이름을 불렀지만, 엄연히 실장님이었다. 장사를 그만두기 1년 전부터는 온전히 주방을 책임져주었으니 말이다.

20대 후반의 그는 음악을 하는 청년이었다. 정확히 어떤 음악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는지는 몰랐지만 가정의 불화, 존재에 대한 방황을 음악으로 푸노라 했다.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이고 음울해 보였지만 성실했다. 가끔씩 해맑게 웃는 모습은 나이와 달리 어려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번째 실장님만큼 주방일에 능숙하지는 않았고 간혹 미더운 구석이 없지 않았지만 그 역시 우리 가게의 든든한 직원이었음은 인정하는 바다.


가끔 그런 후회를 하기도 했다. 주방 실장님을 고용하지 않았다면 한 달에 최소 200만 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우리 부부 중 한 명이 가게에 매달려 있었어야 했겠지만 그래도 그랬더라면 경제적인 고민은 그만큼 덜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면 그럴 수 있을 테다. 아이들도 다 컸겠다, 우리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장사에 갈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당시의 우리에게 돈 200과 맞바꾼 실장님의 존재는, 숨구멍이었고 안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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