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 이심전심진심

치킨가게 복기록

by 늘봄유정

작은 아이는 장이 예민하다.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참지 못하고 바지에 실례를 한적도 더러 있다. 뭘 잘못 먹은 건지, 어디서 잘못된 건지 찾을 길은 없었다. 학교 급식이 문제였는지, 아침에 빵을 먹어서인지, 어제 먹은 무엇 때문인지.


배탈이라는 게 그렇다. 무엇 때문인지 명확히 밝혀내기 힘들다. 역학조사를 면밀히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집단급식의 경우는 당일 급식을 144시간 동안 의무적으로 보관해야 한다. 집단 식중독 발생 시 역학조사를 위해서다. 하지만 일반음식점의 경우는 그런 조항이 없다. 손님이 우리 가게에서 먹은 음식 때문에 배탈이 났다고 하면 확인할 길이 없는 이유다.


다수의 고객, 서로 연관성 없는 고객분들이 우리 가게에서 먹은 치킨 때문에 배탈이 났다고 한다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체계적인 대응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 주문해서 새벽에 받은 닭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본사와 상의했을 것이고 조리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는지도 적극 검토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가게를 다녀간 많은 고객 중 한 무리의 일행만 식중독 증세로 고생했다고 하면 난감하다. 식중독의 직접적인 원인이 과연 우리 가게 음식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책임을 면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왜 우리한테 근거 없는 책임 추긍을 하는지 화가 나기도 한다.


장사를 하던 그때 우리에게도 그런 시련이 있었다.

근처 회사원 네 분이 퇴근 후 가게를 찾았다. 치킨 한 마리에 골뱅이 무침, 맥주 한두 잔씩을 드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간단한 치맥을 즐기셨던 그분들에게서 다음날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일행 중 한 명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심한 복통으로 고생을 했고 다른 사람들도 오전에 배탈로 병원에 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배상을 해줄 수 있냐는 손님에게 즉답을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사장님께 말씀드리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전하는 것으로 시간을 벌었다. (이럴 땐 남편을 사장으로 내세웠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속상했다. 식중독의 정확한 이유가 우리 가게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왜 우리에게 그러는 것인지 약간은 억울하기도 했다. 일행 모두가 공통으로 함께 먹은 건 우리 가게 음식밖에 없었다는 결정적 한마디를 들었지만 거짓말일 수도 있지 않겠냐며 빠져나갈 구실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무조건 환불' 및 '치료비 지원'이었다.


남편은 당사자에게 사과 전화를 드렸다.

"고객님~ 저희 가게 음식을 드시고 불편하셨다니 너무 죄송합니다. 이제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날 드신 음식값을 환불해드리고 치료비를 조금이라도 드리고 싶은데, 번거로우시겠지만 잠깐 들러주실 수 있으실까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자동차 영업을 하며 서비스 마인드가 배어 있던 사람답게 남편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친절한 목소리로 고객에게 응대했다. 솔직히 나라면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약간은 뾰로통해져서 뚱한 목소리로 말했을 테고 그랬다면 그것이 또 다른 불쾌감을 낳았을 것이다.


"진짜 여기 음식밖에는 함께 먹은 게 없어요. 사장님께는 죄송하지만 그래도 저희로서는 여기밖에 책임을 물을 데가 없었어요."

환불하러 오셨던 손님에게 남편은 다시 한번 정성 어린 사과를 했고 흰 봉투에 치료비로 약간의 금액을 넣어드렸다.

그것으로 상황은 일단락되었고 우리도 찜찜한 기분을 내려놓았다. 6만 원가량 되던 음식값을 환불해주었고 위로금만큼의 손해도 감수해야 했지만 그렇게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약한 손님들이라서 우리의 어떤 조건에도 만족하지 않았더라면?

배탈 정도가 아니라 더 큰 피해를 입으셨더라면?

그분들뿐 아니라 그날 왔던 모든 손님들에게 문제가 생겼더라면?

아찔하다.


모든 장사가 힘들겠지만 음식장사는 사람의 건강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더 민감하고 조심스럽다. 맛, 분위기, 친절함에 더해 위생과 안전까지 신경 써야 한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보험을 가입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완전한 대비책은 안 되는 것 같다. 베트남 음식 프랜차이즈의 한 매장에서는 사고에 대비해 보험을 가입해두었는데 올해는 보험 가입이 거절됐다고 한다. 지난 한 해 화상 사고를 비롯한 두, 세 건의 사고에 대해 상당한 금액의 보험금 지급이 있었기 때문... 1년에 십여만 원의 보험료를 받고 천만 원이 넘는 보험금 지급을 했으니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큰 손해였던 것이다.


보험에만 기댈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음식 장사하는 사람은 그저 겸손한 마음만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99명이 맛있다고 해도 한 명에게는 별로일 수 있다는 생각.

99명은 괜찮고 1명만 탈이 났어도 우리 음식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

스스로 충분하게 응대했다고 생각해도 불만족스러운 고객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스스로를 비하하고 자존감이 떨어져서 갖게 되는 열등한 마음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죄인처럼 조아리라는 것도 아니다. 고객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리고 '그럴 수 있다'라고 인정하는 마음가짐을 갖자는 것이다. 그런 마음은 손님에게도 전해진다.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반성하는 업주의 모습을 보면 고객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리라 믿는다. 상대의 말 한마디에 흥분했던 마음이 가라앉기도 하고, 눈빛 하나에 들끓었던 분노도 잠재워지지 않겠는가... 그러면 고객도 이런 마음의 여유가 생기리라.

다른 사람들은 다 맛있다고 하는 거 보니 내 입맛에만 안 맞는 곳일 수 있다는 생각.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나만 탈 난 걸 보면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이 가게에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나랑 안 맞는 곳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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