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이야기

by 늘봄유정

올해 고2, 열여덟인 작은 아이는 세상에 불만이 가득합니다.

학교, 입시제도, 사회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맘에 안 드는 것 투성이랍니다.

늘 엄마를 붙잡고 투덜거립니다. 구시렁거릴 뿐인데 듣는 엄마 입장에선 피로감이 몰려옵니다. 엄마의 양팔을 잡고 앞뒤로 흔들며 "도대체 뭐 때문이냐고!"라고 따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교장선생님도 아니고 교육부 장관도 아니며 대통령도 아닌데 나한테 뭘 어쩌라는 걸까 짜증이 몰려오다가도, '그저 들어주기라도 하자..'라고 체념을 해봅니다. 이제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고, 왜 나한테 그러냐고 따지고 싶다가도 오죽 답답하면 저럴까 안쓰럽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원하는 건 그냥 잠자코 들어주는 게 아니었습니다. 자신과 대화하기를 원했습니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어 했고 세상을 바꾸지 못해 답답한 자신의 마음을 엄마가 한껏 공감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이럴 때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저런 것까지 지 애비 똑 닮아가지고는..."


남편도 그렇거든요. 들어주기를 넘어 공감해주기를 원합니다. 다른 의견을 말하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발사합니다. 아들에게서도 보이는 그 눈빛. 이쯤 되면 '내가 문젠가?'싶습니다.


무조건 공감해줘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으니까요. 모르는 것에 맞장구치기는 힘듭니다. 그런데 맞장구를 쳐달랍니다. 그들은 뭔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디베이트 코치는 상대의 말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경청'까지 입니다. 그저 들어주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라고 해주는 것까지... 사실, 그들의 말을 듣고 나면 제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됩니다.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를 들고 와서 함께 풀어보자고 하니 죽을 맛입니다.


어제도 아들과 저녁을 먹다가 늘 하던 이야기를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습니다. 작은 아들과 저는 둘 다 집돌이 집순이라서 일주일 대부분의 끼니를 둘이 함께하거든요. 자연스레 대화를 많이 할 수밖에요...


"세상에 맘에 드는 일이 하나도 없어. 열이면 열 모두 맘에 안 들어!"

"뭐가 제일 맘에 안 들어?"

"다.. 하나같이 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아까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데..."

"그냥 피곤해서 그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없어."

"그렇구나... 시험 보느라 피곤했나 보네."

저는 한참 동안 아들의 눈치만 살피며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들이 멈췄던 말을 다시 꺼냈습니다.

"국어 시험문제, 내가 이상하다고 한 거 있잖아. 선생님한테 질문하고 싶었는데 질문도 하기 전에 딱 차단하시더라. 선생님들끼리 여러 번 확인해서 이상한 문제없다고. 결국 시간 없어서 질문 못했어."

"아... 말이 뭔가 이상하다고 했던 거? '사회의 거대한 부조리에 대한 불신'이면 부조리를 불신한다는 뜻 아니냐고 했던 거?"

"어..."

"그러게... 그건 좀 이상하긴 하던데..."
"이런 게 문제라는 거야. 아예 들을 생각들을 안 하잖아."


늘 우리의 대화는 이런 패턴입니다. 그런데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학교나 선생님을 두둔할 수도 없고 아들의 이야기에 무조건 맞장구쳐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다가는 당장, "학부모회장이니까 정식으로 건의해보면 안 돼?"라며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할까 봐 겁이 나는 까닭입니다. 결국 우리의 대화는 밥숟가락을 부지런히 놀린 후 각자의 길로 부지런히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서로 기분 상하지 않은 척, 이해한 척 말입니다.


자식은 참... 숙제입니다.

큰아들은 고등학생 때 '술 마시나? 담배 피나? 독서실 간다고 하고는 딴 데 갔나? 연애하나?' 등의 고민을 안겨줬던데 반해, 작은아들은 매일매일 엄청난 질문을 던집니다. 큰아들은 집에 들어올 생각을 안 해 언제 들어오는지,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해했는데, 작은아들은 무슨 고민이 저리 깊은지 표정을 살피게 됩니다.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생이 된 큰아이는 슬쩍슬쩍 학창 시절의 만행을 보고합니다. 본인 입장에서는 추억이지요. 어쨌든 제 입장에서도 일단은 제출해버린 숙제입니다.

작은 아이는, 아직 풀고 지우 고를 반복 중인 숙제 같습니다. 문제를 풀기 위해 꾸준히 엄마를 들볶는 중이죠. 문제를 풀어줄 수는 없지만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답을 찾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그것조차 어렵습니다. 수학 까막눈이 미적분 시험지를 받아 든 것 같은 기분...


그래서 제게 늘 문제를 들고 마주 앉는 이들과 본격적으로 '대화'라는 걸 해보려고 합니다. 일명, 마주이야기.

마주이야기는 '대화'의 순우리말입니다. 작은아이, 남편, 때로는 큰아이. 혹은 주변의 그 누구와든 하게 되는 일상의 대화를 기록하려 합니다.


마주이야기가 뭔지 아직도 모르시겠다고요?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닐 때 '마주이야기'라는 공책이 있었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나눈 일상의 대화를 적는 것이었는데요, 저 쪼그만 머릿속에 뭐가 들었다고 저런 신박한 말이 나올까 싶은 것들을 주로 적었지요. 예를 들어, 세 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작은 아이가 입속의 밥을 오랫동안 삼키지 않았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한 숟가락 가득 퍼서 입 앞으로 가져간 엄마에게 아이는 말했습니다.

"잠깐만~ 내 입은 지금 빨간불이라구~"

한참을 기다리니 그제야 삼키고서는, "이제 됐어. 파란불이야!"

그때는 그저 신통하기만 하던 대화였습니다. 경이롭고 신기한 경험...


이제부터 써나갈 마주이야기는, '저 아이의 머릿속에는 어떤 질문들이 가득할까?', '상대의 이야기는 나와 어느 지점에서 왜 이렇게 다를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합니다.

묵묵히 공부만 하던 아이는, 제법 잘하고 있어서 엄마 아빠의 기대를 한껏 부풀린 아이는, 자신의 갈급함이 해소되어야 공부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겠다며 힘을 주고 서있습니다.

열심히 살던 남편은, 50이 다 돼가니 세상은 부조리함으로 가득 차 있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며 절망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재미있게 사는 것만 같은 큰아이는 집에 오면 잠만 잡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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