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충전

by 늘봄유정

작은아이의 고등학교 1차 지필 평가가 끝났습니다.

입시가 뭐라고, 시험이 끝나면 엄마들까지 참아왔던 숨을 크게 내쉽니다.

3일 동안 8과목의 시험을 친 아이는 몇 주간 참아왔던 게임을 실컷 했습니다.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각까지 마우스와 키보드를 넘나들며 친구들과 회포를 풀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시험 끝난 주말을 제외하고는 게임을 안 하겠다는 결심을 지키고 있는 아이입니다. 아이가 밤을 새워서 게임을 해도 제가 잔소리를 하지 않는 이유죠.


시험이 끝난 주말엔 아이의 학원 등원을 쉬게 합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6월 모평 준비를 위해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학원의 알림이 왔지만 이번 주말엔 푹 쉬라고 했습니다.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빠지게 되는 하루만큼의 수업료나 진도를 생각해 아까운 마음이 훅 치고 올라와 공을 아이에게 넘겼습니다.

"OO아, 학원 어떻게 할래? 쉴래?"

"글쎄... 어떻게 할까?"

"쉬고 싶지? 쉴까? 쉬자~"

"그래... 쉴래."

"그래. 주말에 게임이나 실컷 하면서 푹 쉬어."

"나 엄마 아빠 따라서 할아버지 성묘 갈래."

"뭘 그 먼 데까지? 엄마 아빠 둘이 빨리 다녀올게."

"바람 쐬고 싶어."


게임을 포기하고 엄마 아빠를 따라 할아버지 산소 성묘를 따라간다는 아이가, 딱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학교 선생님들은 너무 악해."

시골을 향하는 차에서 대뜸 아이가 한 말입니다.

"악하다고? 선생님들이? 어떤 부분이?"

"아니... 시험이 끝나자마자 수행을 내주는 게 어딨어?"

"목요일에 시험 끝났는데 그새 수행을 내줬어?"

"어! 담임선생님이 제일 악해."

"담임 선생님도 수행 내주셨니?"

"차라리 그냥 내주지. 주말 동안 재충전하라고 말하면서 수행을 내주는 건 뭐야? 재충전을 언제 하라는 거야?"

"하하하. 재충전하라면서 숙제를 내주는 건 진짜 쫌 그렇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재충전 시간이 너희들이 생각하는 주말 내내를 말하는 게 아닌가 보네. 휴대폰 충전되는 딱 그만큼의 시간만 말씀하시는 거 아니야? 하하하"

"그런가 봐. 그냥 우릴 기계로 생각하나 봐. 충전 얼른 해버리고 다시 할 일 하라고... 그래서 내가 선생님들이 악하다고 하는 거야. 진짜 너무해."


'선생님들도 밀린 학사일정을 소화하시느라 어쩔 수 없으셨겠지...'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가뜩이나 불만이 가득한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봐야 엄마도 마찬가지로 악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게 뻔해 보였거든요.


시험이 끝나자마자 수행이 기다리고 있고 수행이 끝날 즈음 모의고사와 기말고사가 기다리고 있는,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고단한 삶이 안타깝습니다.

선생님이 악한 게 아니라 입시제도가 사악한 것임을 아이도 모르는 바 아닐 겁니다. 다만, 비난할 대상을 특정해야 그나마 분이 좀 가라앉는 게 아닐는지...

매거진의 이전글마주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