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들은 수학을 잘합니다. 수포자 엄마 아빠 사이에서 돌연변이가 태어난 거죠. 얼마 전 치른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는 만점을 받았고 1학년 2학기 성적표에는 319명 중에 1등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가문의 영광이었지요.
"OO아. 넌 어떻게 그렇게 수학을 잘하니? 진짜, 대단하다~"
"글쎄?"
"너만의 어떤 비법 같은 게 있어? 어떻게 하며 수학을 잘한다는?"
"난 그냥 할 게 없어서 수학 문제를 많이 풀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뭐냐~~ 남이 들으면 재수 없다고 하겠어~"
"그런 의미가 아니라... 친구들은 취미로 배우고 싶은 게 있었잖아. OO 이는 기타 치는 걸 좋아했고 OO 이는 농구를 좋아하고. 그런데 난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더라. 그런데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는 뭐해서 수학 공부를 했던 거야."
"아... 슬픈 이야기인데?"
"대학 전공을 정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야. 이것도 괜찮을 것 같고 저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딱히 막 끌리는 건 없어. 문과 이과 중에서는 이과고, 그중에서도 공대가 그나마 관심 있는데 또 세부적으로 생각하면 잘 모르겠어.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모두 건축을 하셨으니까 그럼 나도 건축을 전공해볼까 생각한 거지만 거기서 또 건축학과를 가야 할지 건축 공학과를 가야 할지는 잘 모르겠고..."
"급하다면 급할 수 있지만 그래도 신중히 잘 생각해봐. 책도 읽어보고 검색도 해보고... 학종을 준비하려면 비교과 활동도 챙겨야 하니까 빨리 전공을 정해서 그것과 관련된 활동을 해야 한다지만, 그렇게 쫓기듯 정하지는 말자. 대학 가서 뭘 배우면 재미있을지를 제일 우선으로 생각해봐."
"건축도 뭐... 재미있을 것 같아."
"너 맨날 신서유기랑 무한도전 무한 반복으로 보잖아. 그런 예능 프로그램 만드는 PD는 어때? 넌 아이디어도 좋으니 잘할 것 같은데?"
"그것도 좋지."
뭐든 다 좋다고 하니 그것도 큰일입니다.
"넌 뭘 할 때 가장 즐거워?"
"딱히?"
"그럼, 넌 언제 큰 성취감, 만족감을 느껴?"
"그것도 딱히..."
"성적이 잘 나오면 성취감을 느끼지 않아?"
"성취감보다는, 애들은 왜 이런 쉬운 걸 틀렸을까 생각하는데? 푸하하하"
"아! 재수읎어!"
엄마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남의 집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명확히 아는 아이,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지를 아는 아이를 최고로 치죠.
수학이 만점이면 뭐합니까. 자신이 뭘 원하는지 언제 가장 즐거운지를 모르는데요. 그걸 챙기지 못한 엄마라는 자괴감이 커져만 갑니다. '공부 공부 공부'하며 달달 볶은 엄마는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여유를 갖고 자신의 꿈을 찾으면 좋을 텐데 고등학교는 그럴 틈을 주지 않습니다. 빨리 정하라고 재촉하죠.
생기부에 자동봉진(자율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을 전공과 관련된 내용으로 통일감 있게 채울 것을 요구합니다. 과목별 선생님들이 기록해주는 세특(세부능력 특기사항)의 내용도 전공과 관련되어야 하기에 수업시간에 하는 발표, 과제도 모두 전공을 염두해 준비해야 한답니다. 1학년부터 탄탄한 생기부를 만들어야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대학을 가기가 수월하니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전공을 확실히 정해놓는 것이 유리하다고 하죠.
혹자는 다 필요 없고 결국은 성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대학에서 비교과 활동을 잘 챙겨보지 않는다며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성적을 올리는 일이나, 학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일이나 아이들에게 버겁기는 매 한 가지입니다. 하루하루 일분일초도 허투루 살지 말라며 채찍질을 하는 꼴이죠.
작은 아들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찾지 못한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대회에도 나가고 수업시간에 자진해서 주제발표도 하고 귀찮지만 임원선거에도 나갑니다.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며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고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절망합니다. 바꿀 수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은 했지만 책을 펴고 문제를 풉니다.
하루는 수학과, 하루는 컴퓨터 공학과, 하루는 전기전자공학과를 기웃거리다가 며칠째 건축학과를 기웃거리는 중입니다.
압니다. 배부른 고민이죠...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대학, 학과가 있어도 성적이 안돼 고민하는 친구들이 더 많다는 것, 압니다. 저희 집에 그런 고민을 안겨주었던 아이가 있거든요. 그때 생각했죠. 참, 마음대로 안되는구나...
그런데 반대의 경우, 목표의식이 없는 경우도 환장할 노릇입니다.
공부를 대신해줄 수 없듯이 진로, 인생에 대한 고민도 대신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얘기 나눠주고 시답잖은 농담을 던져주는 것 외에는요...
이제라도 전, 무엇을 해줘야 할까요?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