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OO이는 무슨무슨 과목 신청했어요? 아.. 그렇구나... 아들아, 너는 무슨 과목 신청해야 되니? 엄마는 봐도 잘 모르겠더라."
학교에서 실시하는 진로진학 컨설팅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컨설팅까지는 20여분이 남아있던 터라 무료해졌습니다. 뒷자리에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친한 언니와 대화를 나누려고 몸을 반쯤 돌리고 앉았더랬죠. 아들과 아들의 친구에게도 말을 걸었구요. 그러다가 휴대폰을 들어 셀카 모드로 잡고 저와 뒤에 앉은 언니, 옆에 앉은 아들이 나오도록 구도를 잡았습니다. 그때 아들이 작은 소리로 경고를 날렸습니다.
"사진은 왜 찍어! 아까는 계속 떠들더니..."
"사진은 쫌 그런가? 아까 언제? 선택과목 이야기할 때?"
"어! 대기실에서 엄마 혼자만 떠들고 있었잖아!"
"그랬어? 알았어. 이제 조용히 할게..."
순간 무안해졌습니다. 조용하던 아들에게 핀잔을 듣고 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더군요.
'피... 그렇게 크게 떠들지도 않았는데... 청소년이라 엄마의 그런 모습이 창피한가 보군... 안 떠든다 안 떠들어. 치사하다 뭐. 흥칫뿡!'
속으로 뾰로통해진 저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휴대폰만 들여다봤습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됐습니다. 1층 대기실에서 컨설팅 선생님이 계신 2학년 각반 교실로 이동해야 했죠. 배정된 교실로 들어가기 전, 아이가 저를 붙잡더니 묻더군요.
"아까, 내가 한 말 때문에 화났어?"
짧은 시간 제 머릿속은 바빠졌습니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묻지? 내 기분이 상해 보였나? 그렇게 질러 놓고 마음에 걸리긴 했나 보지? 기분 안 좋은 엄마랑 상담 들어갔다가 엄마 눈치 보느라 제대로 상담 못 받을까 봐 그런 걸까? 그런데, 내가 화가 났었나? 화난 것처럼 보이기는 했겠지? 화가 났다기보다는 무안했다는 표현이 더 맞지. 진짜 내가 그렇게 시끄러웠는지 돌이켜 보기도 했고...'
"화났냐고? 아니.. 화낼 일인가... 반성할 일이지.. 미안~"
어떻게 말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기도 전에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이었습니다. 아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전에 전 흠칫 놀랐습니다. 자존심을 내려놓은 쿨한 엄마의 모습, 제 자신이 좀 멋져 보였달까요? ㅎㅎㅎ
아이들과의 갈등은 엄마가 처음인 제게 늘 숙제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갈등 없이 늘 평화로울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죠. 어느 순간,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갈등을 교육의 기회로 생각하기로 말이죠.
갈등 없는 삶,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이란 없으니 그런 삶을 마주했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만들기로요. 물론, 매번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저란 사람은, 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그저 가능한 순간에만, '노력'정도를 할 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다행히 가능한 순간이었고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자존심 상해 기분 나쁜 목소리로 화내는 대신, 스스로를 반성했노라며 침착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언젠가 아이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과거의 엄마를 떠올리고 그렇게 행동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다만...
혼자 만족스러워하며 '나 좀 멋있는 듯?'이라고 생각하던 엄마의 표정까지 떠오르는 건 아닐까, 살짝 창피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