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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16. 2021

술, 그 위대한 발견의 순간

"난 성인이 돼도 형처럼 그렇게 술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왜?"

"별로 맛없던데?"

"OO아... 술은 맛으로 마시는 게 아니야... 분위기로 먹고, 사람에 취해 먹고, 나중엔 술이 술을 먹고... 넌 취해본 적도 없잖아."

"에이... 그래도 난 안 마실 것 같아."

"그렇게 예단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ㅎㅎ 잊지 마라. 넌 송민석 씨 손자다."

"하하하하. 외할아버지 닮았으면 술 좋아하겠네... 그런데, 술은 처음에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러게? 진짜 대단한 발명이네, 발견인가? 최초의 장면을 상상해볼까?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주부가 부엌 구석에 놓여있던 단지 하나를 발견한 거야. 단지 뚜껑을 열었더니 웬걸, 시큼하면서 톡 쏘는 냄새가 나는 거야. 생각해보니 아주 오래전에 남은 밥을 잔뜩 넣어놨었는데 잊고 있었고 거기다 마을 우물에서 길어왔던 물을 잔뜩 채워놨는데 그것도 잊어버렸어. 그러고는 여름이 다 가도록 방치돼 있었던 거야. 부엌이 엉망이었거든. 뭐가 어디 있는지 안 보여서 몰랐던 거지.  으이구, 내 정신 좀 봐, 이 아까운 밥을... 미쳤어 미쳤어... 하면서 스스로를 원망했겠지. 그고 나서 버리려고 하니 너무 아까운 거지. 그 시절에 곡식이 얼마나 귀했을 거야? 그래서 이 아주머니는 자기가 밥 대신 먹기로 결정하지. 바닥에 가라앉은 뿌연 물이랑 맑은 윗물을 위아래 뒤섞어서 밥그릇에 담았어. 그리고는 사약 먹듯 눈을 꼭 감고 꿀꺽꿀꺽 삼켰지. 어라? 먹을만하네? 한 그릇 더 먹었어. 온몸이 뜨끈해지고 힘이 빠지면서 나른해지네? 에이, 배도 덜 찼으니 한잔 더 먹자. 그렇게 먹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나온 거야. 옆에 있던 아이가 자기도 달라고 졸랐지. 엄마는 말했어. 안돼..이건 엄마가 엄마에게 주는 벌이야..엄마만 먹을게..  그러면서 혼자 부어라 마셔라 했어.  부엌에서 혼자 웃는 아내의 소리를 듣고 남편이 뛰어왔어.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아내는 그냥 웃기만 하네. 늘 무뚝뚝하던 아내였는데, 오늘따라 콧소리도 내고 아양도 떠는 거야. 나긋나긋해진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자기는 그저 오래된 밥 삭은 물을 먹었을 뿐이라고 말하더니 쓰러져 잠이 들어. 궁금해진 남편은 단지에 남은 을 한 그릇 퍼먹고는 혼자 중얼거렸지. 이게 뭔데 이렇게 술술 들어가냐?"

"하하하하~"

"그게 최초의 술이 탄생한 순간일 수도 있지 않을까? ㅎㅎ"

"그럴 수도 있겠네 ㅎㅎ 재밌다. ㅋㅋ"


주말 오후, 집 근처 삼겹살집으로 걸어가던 중 작은 아이가 덥다며 투덜대기 시작했습니다. 어떨 땐 한없이 속이 깊다가 어떨 땐 어린 시절 떼쟁이로 돌아가 버리는 석입니다. 위를 잊게 하려고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야기를 만들어봤습니다.

세상 모든 것의 첫 순간, 그 우연한 발견이 자못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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