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Jun 17. 2021

양심 고백

"이건 비밀인데요, 교자봉이 늘 보람 있던 것만은 아니었어요. 이런 말 해도 되나? 제 말은 그냥 잊어주세요..."

오랜 시간 교육자원봉사를 해오신 봉사자님의 말씀이셨다. 중학교 영어 선생님, 교장선생님을 거쳐 어느 지역 교육자원봉사센터 센터장까지 역임하신 분이었다. 아이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학교 교육에 대한 믿음을 갖고 어떻게든 학교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열심인 분의 말씀이라 적잖이 놀랐다.


지난 5년간 교육자원봉사센터를 통해 개인적으로 학습지도 봉사를 해준 아이가 몇 명 있다고 하셨다. 길게는 2년 동안 한 아이를 맡아 부족한 공부를 봐주셨단다. 성적이 크게 오르지도 않고 수업에 엄청 집중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건 괜찮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에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아 연락을 해보면 가족들이 모두 여행을 가있었다거나 연락두절 이후 다시 만났을 때 일언반구 하지 않았을 때, 선생님 앞에 있을 때와 180도 다른 모습, 부정적인 모습의 아이를 봤을 때 봉사 의지가 꺾이고 "참, 보람 없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셨다고 했다.


봉사도 그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어떤 이는 회사를 다니고 어떤 이는 학교를 다니듯이 어떤 이는 봉사를 할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똥 싸고 잠자는 것처럼 일반적인 일이다.

따라서 어떠한 미화도 부담스럽다. 어떠한 고충도 있게 마련임을 인정해야 한다.

'보람'이라는 개인적 동기를 갖고 하는 일이지만 보람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일이든 그늘이 있듯이 이 일 역시 왜 없겠는가.


'보람 없는 봉사'

금기어를 말씀하기라도 한 듯 조심스러워하고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자신을 책망하셨던 센터장님. 그분이 가진 마음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봉사는 아름다운 것이며 봉사자는 굉장한 일을 하는 것이라는 시선, 어찌 보면 편견 때문에 싫을 때도 있고 힘든 부분도 있다고, 아닐 땐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그건 봉사가 성역화된 것이라 생각한다.


'누가 감히 봉사에 대해 부정적인 면을 언급하는가?'라고 묻고 따지는 사람이라도 있는 듯 한껏 눈치를 보며 말씀하시는 분께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이라고는 이것뿐이었다.

"봉사가 절대적 숭고함으로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항상 보람을 느끼겠어요~ 하다 보면 맥 빠질 때도 많고 하기 싫어질 때도 있겠죠. 실제로 보람되지 않아 그만두시는 분들도 많을 테고요. 그런 죄책감 갖지 마셔요~"


얼마나 봉사를 해봤다고 위로인지 조언인지 모를 말을 건네는지, 나 스스로가 같잖게 느껴졌다. 어쩌면 언젠가 나 역시 봉사가 지긋지긋해지고  보람따위는 느끼지 못할 날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불쑥 튀어나온 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보람되지 않은 봉사도 있을 수 있다고 믿는...

나는 교자봉이다.

작가의 이전글 교자봉의 BT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