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 봉사가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10개 학급 두 번씩의 수업만 남은 상황. 함께 하는 한 봉사자님의 배려로 내 수업시간이 줄어들었다. 덕분에 살만해졌다.
올해 용인교육자원봉사 디베이트팀의 테마는 <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 >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마주하게 된 이슈를 디베이트로 풀어보고자 선생님들과 준비했다. 그중 야심작은 두 번째 주제인 < 한국은 기본소득제를 실시해야 한다 >이다. 미증유의 바이러스는 인류의 안전과 생존뿐 아니라 노동과 소득의 문제까지 건드렸다.
기본소득제는 수년 전부터 꾸준히 논의되고 있던 주제다. 복지의 사각지대 발생, 과다한 선별 비용, 선별 과정에서의 수치심과 모멸감등 선별복지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기본 소득제다. 하지만 기본소득제가 지지받는 더 중요한 이유는, 더 이상 노동만이 소득을 위한 유효하고 유일한 전략이 아니라는 것,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에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노동력을 로봇이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 바이러스로 인한 휴업, 폐업, 실업의 증가는 이제 '노동'을 신성시했던 기존의 사고를 무너뜨렸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라는 구호가 자본가를 겨냥한 것이었든 노동자를 향한 것이었든 이제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기본소득제가 왜 필요한가.
기본소득제가 누구에게나 이로운가.
기본소득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지급할 것인가.
기본소득제는 어떤 문제를 야기할 것인가.
기본소득제는 정의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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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교실로 끌고 들어갔다. 이유는 명확했다. 기본소득제는 성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가까운 미래에 겪을 현실이고 당장 내년 대통령 선거의 가장 중요한 이슈이니 아이들도 막연하게나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딱딱하고 어려운 이 주제를 조금은 쉽게 느끼게 하려고 마을교사들은 간단한 게임, 실험을 준비했다.
생각 같아서는 TV 모 프로그램에서 했던 기본소득 블루마블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인원, 시간 등의 제약이 컸다. 짧은 시간, 대략 40분 정도 지만 아이들에게 기본소득의 의미와 재원 마련의 방법과 문제점등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1. 수업 시작전, 기본소득제 수업과 관련해 학생들과 간단한 실험을 할 것임을 안내했다.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을 하는 친구, 선생님과 친구들의 말을 잘 경청하는 친구, 필기를 열심히 하는 친구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젤리 2개씩을 제공하기로 했다. 마이쮸 두 개가 뭐라고 아이들은 팔을 귀 옆에 바짝 붙이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물론, 반 분위기에 따라 가져 간 마이쮸의 반도 소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받은 젤리는 책상 위에 잘 보이도록 놔두어야 하고, 수업이 끝나도 학교에서는 먹지 말아 줄 것을 당부했다.
2. 가능하면 반 친구들 모두에게 젤리를 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수업에 적극적인 친구들은 스무 개 이상까지도 획득하게 되고 아무 말도 안 하거나 못하는 친구들에게는 여러가지 명분을 만들어냈다. PPT 화면의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매달 일정 금액의 용돈을 받는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등의 부담 없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답해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3. 모든 설명, 질문이 끝난 후 각자 받은 젤리의 개수를 세어보도록 했다.
주어진 기준대로 일정 개수의 젤리를 세금으로 거두었다. 세금의 이유는? 여기서 '공유자산, 공유부'의 개념이 등장한다. 학생들이 젤리를 갖게 된 것, 누군가는 많은 수의 젤리를 갖게 된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자연과 사회가 우리 인류에게 물려준 유산인 자연적 공유자산과 지식, 기술과 같은 인공적 공유자산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수익 창출이 가능했다는 것이 기본소득제를 정당화하는 '공유자산'의 개념이다. 학교라는 공간, 마을교사들이 준비한 디베이트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젤리를 획득했으니 그에 맞는 세금을 내라는 것...
4. 거두어들인 세금 젤리를 학생들의 수로 나누어 다시 공평하게 지급한다.
대략 2개에서 3개 정도의 마이쮸를 학생들은 받게 된다. 어떤 친구는 세금을 내지 않고 젤리를 받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힘들게 벌어들인 젤리의 50%를 세금으로 낸 뒤 그중의 반에 반도 안 되는 젤리를 기본소득으로 받는다. 마지막으로 소감을 발표해본다.
"젤리가 한 개도 없었는데 세 개를 받으니, 뭔가 안심이 돼요."
"몇 개 없어서 세금은 안 냈는데 갑자기 세 개를 더 받아서 부자가 된 느낌이에요."
"열심히 대답해서 젤리를 스무 개 넘게 모아놨는데 10개 넘게 내고 겨우 3개를 받으니까, 내가 뭐한 건가 싶어요."
"저만 너무 많아서 친구들에게 미안했는데, 나눌 수 있어서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그냥 재밌어요."
"몇 개인지는 별로 안 중요하고, 젤리를 받았다는 것 만으로 기분 좋아요."
다양한 소감이 튀어나온다. 결과를 유도하고 만든 게임도 아니고 찬성 반대 어느 쪽을 강요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나눈다는 것, 일하지 않았는데도 소득이 생길 수 있다는 것 등에 대해 가볍게 느껴보도록 하고 싶었다.
촘촘하게 잘 만든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고민거리는 던져주지 않았을까 한다.
과연, 기본소득제는 정의로운가. 기본소득제는 합리적인가. 실시하는게 마땅한가.
지루하게 흐를 수밖에 없는 배경 설명 시간에 간단한 게임을 접목하니 수업이 훨씬 역동적으로 변했다. 그냥, 마이쭈 때문일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참여와 흥미를 끌어낼지 고민하는...
우리는 교자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