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여보~ 입대 준비물이라는 게 있어? 가면 팬티까지 싹 싸서 집에 보내주는 거 아니었어?"
"입대 준비물 있지~ 총 사가야지."
"누굴 바보로 아나~~~ 그 정도는 나도 알거든?"
"입대 준비물이라는 게 어딨어. 훈련소 가면 다 주고 없으면 PX에서 사는 거지."
"그래? 어떤 엄마가 글을 올렸는데, 아이가 입대를 했는데 평소 사이가 안 좋아서 안아주지도 못하고 입대 준비물도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길래."
"글쎄? 요즘은 다른가?"
궁금함에 검색창에 '입대 준비물'을 쳐보았습니다.
일회용 가글 스틱
물품보관 지퍼백
군대 필기구 모음(딱풀, 네임펜, 유성 매직)
훈련소 행군 발 보호 밴드
무릎, 팔꿈치 쿠션 보호대
소음방지 귀마개(사격장용)
이니스프리 위장크림
군대 라이트펜
밀리터리 군인 포켓 수첩
훈련소 올인원 바디워시
메모리품 충격 완화 행군 깔창
나무 면봉
바르는 모기약
군대 텀블러
선크림, 에센스
파스텔 저자극 고급 샤워볼
...
리스트를 보며 우리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이건 무슨 군대를 가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캠핑 가는 게 아닌가 싶더군요. 리스트는 군대간 남친을 살뜰히 챙겨주고 싶은 남겨진 고무신들을 위한 상술이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세상이 바뀌어서 우리가 잘 모르나 싶어 외출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OO아. 입대 준비물, 뭐 필요한 게 있니?"
"그런 게 어딨어~ 그냥 가면 되지. 웬만한 건 다 나눠주던데."
"텀블러 가져가야 된대. 텀블러. 하하하하"
"아들아~ 총사가야 된다~"
아빠의 말에 아들이 답했습니다.
"총은 PX에서 사면된대~ 총 살테니 나라사랑카드 통장에 100만 원만 넣어줘~"
그렇게 우리의 입대 준비는 끝나갑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찜, 등갈비 김치찜을 했는데 당사자는 외식하기 바빠서 가족들만 포식합니다.
적응시킨다며 아침 기상나팔 소리로 아들을 깨우고 군가 외워가라며 영상을 보내주던 아빠는 군대에서 찰 시계를 선물합니다.
반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던 체대 입시 학원 출근 마지막 날,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마지막 날인데, 엄마가 선생님들이랑 학생들한테 간식이라도 쏠까?"
"그걸 왜 해?"
"그래도, 네가 3년째 인연을 맺고 있는 곳이니까 서운하잖아. 학생들도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잘 따른다고 했으니 떠나는 마당에 아이스크림이라도..."
"그런 거 다 소용없어. 그냥 조용히 떠나는 거야."
"에이... 그래도..."
엄마에게 말은 그렇게 무뚝뚝하게 했지만 아들은 선생님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 학생들에게는 치킨을 사주었습니다. 엄마가 나대지 않아도 그 정도 성의표시는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10시 이후 친구와 한잔 더 하고 싶던 아들은 친구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아이는 밤새 친구와 수다 떨고 먹고 마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가보니 친구는 집에 갔고 거실은 싹 치워져 있었습니다. 쓰레기 분리배출함에 밤새 먹었던 흔적들을 잘 치우고 돌아왔노라 했습니다.
마냥 뒤치다꺼리해줘야 하는 아가라고 생각했는데, 뒷정리도 말끔히 해내는 스물한 살이 됐습니다.
이걸로 입영 준비는 완전히 마쳤습니다.
아빠의 농담을 받아칠 줄 아는 여유, 주변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정, 자신이 벌린 일은 스스로 처리할 줄 아는 책임감. 그거면 18개월을 건강하게 즐기다 올 것 같습니다.
아들아~ 통장에 돈 좀 넣어줄게~ 초코파이 사 먹지 말고 꼭 총 사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