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잘 지낼 거라는 걸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넌 군대에서도 적응 잘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 것임을 믿는다.
지금 엄마가 느끼는 유일한 감정은 걱정이 아니란다. 그리움이다. 그저 보고 싶다는 것뿐이다.
나라 잃은 표정, 지금껏 본 중 가장 심란한 표정을 짓던 네 앞에서 엄마는 우는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수능 전날만큼 떨린다는 네 앞에서 감히 눈물을 보일 수가 없었지.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를 사면서 여행 가는 기분이라며 한껏 격양된 소리를 내고, 우리 가족은 남들과 달리 쿨하게 보내줄 거라며 떠들었지만, 엄마는 매 순간 너의 얼굴만 살피고 있었단다. 마스크 위로 나온 눈만 봐도 느껴지더라. 긴장, 초조...
수시로 오는 친구, 선배들의 전화를 받는 너의 대화를 엿듣는 것으로 기분까지 엿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엄마 아빠에게 드러내 놓지 못하고 있던 긴장과 심란함이 그들과의 대화에서 전해져 안쓰러웠단다. 섣불리 위로도 건네지 못하고 이후로도 계속 농을 지껄인 이유다.
논산의 한 음식점에서 반찬으로 나온 양념게장을 열심히 먹는 너를 보는데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단다.
입대 전, 좋아하는 양념게장 실컷 먹이겠다고 주문했는데 너무 일찌감치 먹여서 최근에 못 먹인 것이 한스럽더라. 첫 휴가 나올 때 또 사놓겠노라 말해놓고는 더 이상은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침 친구와 통화하고 오겠다며 네가 밖으로 나간 틈에 엄마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단다. 아빠랑 동생은 갑작스러운 엄마의 오열에 당황을 했지. 양념게장이 눈물을 쏟게 한 포인트였다며 깔깔 웃다가 눈물을 닦다가 엄마 혼자 난리도 아니었다.
아빠는, 꾹꾹 참더구나. 절대 울지 말라고, 당신이 울어버리면 나도 터져버릴 것 같다고 어젯밤 신신당부를 하던 아빠였단다. 엄마 페이스에 말려 같이 통곡했다가는 통화를 마치고 갑자기 들어올 네게 들킬까 봐 참았나 보다. 하지만 난 보았다. 아빠의 두 눈에 서서히 차오르던 것을.
네 아빠는, "에구.. 우리 애기가 언제 이렇게 커서 군대를 다 갔냐..."라는 말을 거짓말 안 보태고 스무 번은 족히 했단다. "그러게..."라는 추임새를 스무 번 넘게 한 내가 증인이다. 아들을 잘 키웠다며 엄마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여러 번. 그렇게 아빠는 눈물을 말렸다.
오늘은 왜 그리 더웠을까.
너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지 않더라.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서 초겨울까지 선풍기를 틀고 자는 너인데, 하필 가장 더운 여름에 입대를 한다니 마음이 안 좋더라. 가져간 손수건으로 콧잔등의 땀을 닦아주는 엄마에게 "그만 닦아줘. 땀을 닦으면 더 찝찝해져."라고 했을 때, 난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단다. 앞으로 네가 흘릴 그 모든 땀을 내가 언제까지나 닦아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란다. 평생 닦아줄 것도 아니면서 오늘만 짠한 맘에 닦아주던 것도, 어쩌면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방역 때문에 정해진 지점에서 헤어지던 순간까지도 나는 눈물을 잘 참았다. 남겨질 우리는 셋이고 너는 혼자였기 때문이란다.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너를 아빠가 불러 돌려세우던 그 순간까지도 엄마는 참았단다. 웃는 모습으로 보내주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더 이상 네가 보이지 않게 됐을 때, 엄마는 네 땀을 닦던 손수건으로 내 눈물을 훔쳤다. 그제야 비로소 울 수 있었다.
집으로 오자마자 엄마는 네 방을 청소했단다. 어질러진 책상을 정리하고 서랍장의 옷을 죄다 꺼내 다시 갰단다. 양말을 꺼내 후줄근한 것들은 모두 버렸고 이불, 베개커버, 매트커버까지 싹싹 벗겨내 빨아버렸다. 내친김에 침대와 책상의 위치를 바꾸어도 보고 걸레질도 말끔히 했다. 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벌써부터 나는 너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빳빳하게 잘 마른 이불을 덮고 말끔히 청소된 방에서 편하게 잠들 너를, 그날을 벌써부터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날이 앞으로 548일 남았구나...
깨끗이 치운 네 방을 엄마는 수시로 열어봤단다. 뿌듯했다. 언제든 널 맞을 준비가 됐더구나. 그런데, 뒤돌아 나오면서 눈물이 차오른다.
늦은 밤, 도어록 번호를 누르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거실이나 부엌에 있던 엄마는 "누구~~~?"라고 물었었지. 너 아니면 아빠, 둘 중에 누구인지를 알기 위함이었고 거의 대부분 "나요~"라며 아빠가 등장했지. 이제는 확인할 필요가 없는 물음을 엄마는 오늘도 던졌단다. "누구~?"라고 묻고는 아차 싶었고, "이제 나 말고 누가 또 오나?"라는 아빠의 대답에 울고 싶었다.
어쩌면 오늘 밤 엄마는 자다가 환청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깊은 밤 정적을 깨고 귀가하는 너의 발자국 소리를...
방에 들어가려다 말고 부엌에 놓인 정수기에서 물을 받는 소리를...
그 물이 네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들어가는 소리를...
네 방에서 들려오는 선풍기 소리를...
쌔근쌔근 잠든 너의 숨소리를...
아들아...
입대 다음날 눈을 떴을 때, 낯선 천장을 보면서 입대를 가장 실감하게 될 것 같다고 했지?
이제 다섯 시간 후면 그 실감 나는 순간을 맞이하겠구나.
엄마도 몇 시간 뒤 아침에 눈을 뜨면서 너의 부재를 실감할 것 같다.
열린 문 틈 사이로 곤히 자고 있는 너를 보는 것으로 내 하루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주인을 기다리는 방을 둘러보는 것으로 대신해야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