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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l 16. 2021

회자정리

"저... 어머님~ 아무래도 AA이, BB이와의 수업을 이제 그만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어요."

"네? 왜요?"

"저희가 벌써 함께한 지 2년이 되기도 했고 고1이라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AA나 저나 그만둔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AA가 너무 좋아하는 수업인데..."

"에구... 저도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기도 했고 하던 대로 통합사회 수업을 쭉 하는 게 어떨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서로에게 비효율적인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AA가 너무 실망할 것 같아요. 선생님 수업 들으면서 많이 똑똑해진 것 같았거든요. 아빠랑 대화도 많이 하고요."

"수업 시간마다 진지하게 참여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저도 너무 아쉽습니다만, 그래도 이제는 결정할 때가 된 것 같네요."

"네... AA랑 이야기해보고 연락드릴게요."

BB의 어머님과도 같은 대화가 오갔습니다.


가장 어려운 대화였습니다.

가르치던 아이들이 이런저런 사정, 이유로 저를 먼저 떠나는 경우는 많았지만 제가 먼저 이별을 고한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이들과 어머님들 입장에서는 '잘하던 수업을 왜 갑자기?'라며 의아해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만둘까 말까 망설이기만 두어 달, 수업을 앞두고 계속해서 절 괴롭히던 고민에 이제는 종지부를 찍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고민 1. 디베이트 수업인데 통합사회 내신 대비를 해도 되는 걸까?

아이들을 처음 만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소문난 개구쟁이 녀석들 네 명. 그들과의 수업은 늘 저를 긴장시켰습니다. 제가 아들 둘 엄마여서 그들의 모든 돌발행동에 관대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으며 큰아이를 키우며 경험한 것이 내 능력치를 높여놓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했지요. 3명이 한 명을 몰아붙여 그 한 명이 씩씩거리다가 우는 경우도 있었고 수업을 주도하던 녀석이 저한테 삐져 파업을 선언해 분위기가 싸해지던 적도 있었습니다. 매 수업시간이 시끌벅적, 우당탕탕, 조마조마였습니다만, 다른 학원은 거부해서 아무것도 안 다니는데 오로지 일주일에 하루, 디베이트는 재밌다며 배우러 오는 아이들이 신기하고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1년 반을 함께 보냈습니다. 지난 2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두 아이는 이별을 고해왔습니다. 디베이트 덕분에 공부에 흥미를 붙인 그 아이들은 일반 아이들처럼 국영수 학원을 다니며 입시를 준비하겠노라 했습니다.

다른 두 아이는 잔류를 희망했습니다. 어머니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냥 데리고만 있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고1 남학생 둘과의 수업이 시작된 것입니다.


둘만 남겨진 아이들은 디베이트를 힘들어했습니다. 네 명이 함께 할 때보다 훨씬 부담이 커진 탓이었지요.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아니었고 배경지식이 풍부한 아이들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그랬을 겁니다. 웬만한 주제는 거의 다루어 보았던 터라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통합사회 교과서 속 디베이트'였습니다. 고1 학생들이 공통으로 배우는 통합 사회는 도시화, 산업화, 인권, 경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매 단원마다 디베이트 주제가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1단원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교과서를 한번 쭉 설명하고 거기에 나오는 이슈로 이야기를 나눈 뒤 글쓰기로 마무리... 괜찮은 커리큘럼을 생각해냈다며 스스로 뿌듯해했습니다. 아이들도 만족했지요. 중간고사가 끝난 후 모든 과목 중에서 통합사회 점수가 제일 높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우쭐해진 저였습니다.


하지만 수업은 늘 힘들었습니다. 문해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기본 개념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한 번은 '사유재산'을 열 번이나 설명한 적도 있답니다. 그래도 그런 건 얼마든 해줄 수 있습니다. 열 번 아니라 스무 번이라도 알려줘서 기억할 수만 있다면요. 문제는, 딴청 피우는 아이들을 감시, 통제하는데 드는 에너지였습니다. 한동안 줌으로 수업을 했는데, 아이들은 모르더군요. 줌에서도 딴짓하는 건 다 보이고 느껴진다는 것을요. 컴퓨터 화면에서 저는 실컷 떠들고 있는데 아이들의 시선은 제가 아닌 다른 곳을 보며 실실 웃고 있었습니다. "뭐 허냐~"라고 물어보면 깜짝 놀라며 "쌤 말 듣고 있었죠."라고 합디다. 그런데 무슨 말 하고 있었는지 물으면 "아... 뭐라고 하셨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앞두고 내신 대비를 해주었습니다. 줌으로는 안 되겠어서 직접 만났죠. 설명하고 문제 풀고, 설명하고 문제 풀고... 통합사회 일타 강사라도 된 듯 수업을 준비하고 목이 쉬어라 강의를 했네요. 하지만 아이들은 디베이트 수업 때와는 달리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온전히 자신들의 이야기와 자신들의 주장이 주가 되던 디베이트 수업과 달리 통합사회 수업은, 기존 학원의 수업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이들과의 이별을 생각한 것.


#고민 2. 당당하게 벌고 있는가.

디베이트 수업을 할 때는 해보지 못하던 고민이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적게 받는 게 아닌가 고민할 정도로 아이들은 디베이트 수업을 좋아했으니까요. 하지만 통합사회 수업은 아니었습니다. 수업을 하고 돈을 받는다는 게 이렇게 치욕스러울 수 있구나, 결국 그 몇십만 원 때문에 내가 날 버렸구나 하는 수치심에 사로잡혀야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업이 끝나면 뿌듯함보다는 허무함, 허탈감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농담 삼아 이러다가 통합사회 일타강사 되는 거 아니냐고 떠들기도 했지만 실상은, 힘들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어 불편한 기분이었지요. 불편함을 넘어서서 이제는 불쾌하기까지 했습니다.


'디베이트는 마음에 점 하나, 울림 하나라도 줬다면 이 주입식 수업은 이들에게 뭘 남겼을까... 난 여기서 무엇을 왜 하고 있는가. 재미있니? 보람 있니? 계속... 하고 싶니? 다음 달 수업료를 받는 거, 괜찮겠니?'

그들의 소중한 두 시간을 빼앗는 게 미안했고, 그 두 시간을 위해 수많은 시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제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당장의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고민할 여지가 없었던 이유입니다.


결정적으로, 지난 수업 때 아이들에게 들은 학기말 성적 소식에 좌절했습니다. 그들이 최하위 등급을 받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성적이라는 결과에 좌지우지되고 있는 제 마음이 싫어서였습니다. 디베이트 수업만 했다면 느끼지 않았을 상실과 좌절을 저도, 아이들도 맛본 것입니다. 제 수업에서... 통! 합! 사! 회! 수업에서 말이죠...  전, 통합사회 선생으로는 영 아니었던 겁니다.


#고민 3. 해결책은 없을까?

마지막으로 해결책을 고민해보았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통합사회 내신 대비 수업이 아니라 삶의 기본이 될 만한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건 어떨까. 책을 읽히고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중학생 아니 초등 고학년 수준의 인문서적을 꾸준히 읽히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두 아이는 2년 동안 주어진 책을 읽었던 적이 한 번도 없던 아이들이었거든요. 매일매일 10페이지씩만 읽는 인증제도 해보고 다음 수업에 필요하다며 과제로 내주기도 해 봤지만 늘 돌아오는 건, "앗! 까먹었다.", "앗! 책을 잃어버렸어요.", "변명처럼 들리시겠지만요 쌤! 지난주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이었지요.

제 욕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였습니다.

 


"그동안 너무 애써주셔서 감사드려요. 얼마나 힘드셨을지 저희도 다 알아요. 말귀도 못 알아듣고 그렇다고 성실하지도 않은 애들을 앉혀놓고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라는 어머님들의 말씀을 끝으로 오랜 고민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2년 동안 금요일 저녁마다 8시부터 두 시간 동안 만났던 아이들.

쫑파티도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만나서 치킨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조심스럽습니다. 헤어지기는 아쉬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아쉬움의 이유는, 디베이트쌤이 아니라 통합사회 쌤으로 기억될 것이 두려워서인 것 같습니다.


어머님들이 보내주신 카톡 선물에 배송지 입력을 못했습니다. 면목이 없더라고요. 확진자 수가 줄고, 조금은 맘 편히 만날 수 있게 되면 아이들을 만날 셈입니다.

만나서, 디베이트를 하며 즐거웠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확실한 이별의 의식을 치루어야 '만남에는 반드시 이별이 따른다'는 '회자정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디베이트 쌤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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