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도 참.... 딱하다."
"누구? OO이? 그렇지... 입대를 일주일 앞두고 4단계 됐으니 아무것도 못하고 가게 생겼어. 밤새 놀고 실컷 자다가 오후 4시에 벌떡 일어나더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다시 눕더라."
"쟤네 세대가 그렇잖아. 해병대 캠프 사고, 세월호 참사, 메르스 때문에 수학여행, 졸업여행 한번 못 가봤는데 코로나19로 고등학교 졸업식, 대학교 입학식도 취소되고 OT, MT 같은 것도 못 가봤으니..."
"그렇지. 자기들끼리 비운의 2001년생이라고 하더라."
"우리도 마찬가지야."
"우리? 40대?"
"응. 1997년 IMF 맞아서 취업이 힘들었잖아. 졸업 후에도 학교 도서관에 남아 취업 준비하는 사람 많았잖아. 결혼하고 내 집 마련해야 할 시기에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하우스 푸어 됐고. 지금은, 백신도 제일 늦게 맞아야 하고 직장에서 잘릴까 걱정하는 나이고..."
"그러네..."
식사를 하던 남편의 하소연을 듣노라니 처량 맞기 그지없습니다. 하는 일마다 제동이 걸리니 되는 일 참 없는 세대라고 생각할 수밖에요. 2001년생인 아들도 늘 입에 달고 살던 투정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신세계가 시작될 줄 알았는데 태어나 이렇게 운신의 폭이 줄어든 삶은 처음일 테죠. 그것도 대학 신입생 시절을...
2001년생들이 신세를 한탄하니 1999년생이 목소리를 냈습니다.
"아니거든! 우리가 진짜 대박 운 없었거든? 우리는 외환위기 직후에 태어났어. 태어날 때부터 불안한 시대였다구. 11살이던 2009년 신종플루를 겪었어. 6학년 때는 교육과정이 개정되는 바람에 초등학교 때 역사교육을 받지 못한 유일한 세대야. 중3이던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났지. 수학여행은 커녕 운동회도 취소됐어. 고등학교 입학하자 메르스 터졌지, 2학년 때는 대통령 탄핵한다고 어수선했지, 3학년 때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일주일 연기됐지, 우리만큼 우여곡절 많았던 세대는 없다구."
그런데 말입니다.
어찌 보면 모든 연령대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운 없기로는 저리 가라거든?"
국가 위기, 전 세계적 전염병 앞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한 세대가 있을까요.
영유아들은 바깥나들이 한번 하기 어렵습니다. 그뿐인가요? 왕왕 들려오는 뉴스를 보면 태어나자마자 학대에 시달리는 아기들도 많습니다.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어 온전히 부모와 어른들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불안한 아이들이 있는 겁니다.
유치원생들은 그 작은 입과 코를 마스크로 가리고 하루 종일 생활합니다. 모든 유치원 선생님들이 폭력적인 것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아이가 집에 오면 엄마는 묻습니다. "오늘 유치원은 어땠어? 무슨 일 없었어? 선생님은 뭐랬어? 혹시 선생님이...."
상대의 표정을 보며 감정을 익혀야 하는 사회화 시기에 마스크 너머 눈만 쳐다봐야 하는 아이들이 걱정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취학 전 아이들에게도 이 세상은 고단합니다.
초, 중, 고 학생들은 또 어떻구요.
학교에서 친구들과 맘껏 웃고 떠들어본 적이 언젠지요. 밥 먹을 때가 가장 즐거운 법인데 한 칸씩 떨어져 앉아 가림막 안에서 조용히 밥 먹는 행위만 해야 합니다. 모둠활동은 전면 금지됐고 그나마도 매일 학교를 가는 것도 아닙니다. 입학식, 졸업식은 커녕 체육수업도 편하게 못하고요.
집에서 원격수업을 하는 건 또 어떻고요. 모니터만 뚫어져 쳐다보느라 시력이 나빠진 아이들도 많고, 옆에서 챙겨주는 어른이 없으면 1교시 지각, 점심시간 후 낮잠에 빠져 수업을 빼먹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수업 모니터와 게임 모니터를 정신없이 오가며 하루를 보내는 학생들도 많고요. 그러다 보니 학력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고 한번 벌어진 틈은 메우기가 힘듭니다. 그 생활이 벌써 1년 반째... 수학 포기자뿐 아니라 공부 포기자가 늘어갑니다. 친구도 잃고 공부도 잃었습니다.
캠퍼스의 낭만은 잊은 지 오래인 대학생들...
사실 캠퍼스를 밟아본 적 없는 1, 2학년이 수두룩 합니다. 남학생들은 서둘러 군대를 신청해보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시간을 벌어보고자 휴학을 해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아르바이트 자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밖으로 다니는 것 자체가 위험한 세상이니까요. 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면 부모님 눈치가 보이고 나가자니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졸업을 앞두어도 취업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계속 유예를 하고요. 원래 20대는 가장 고민이 많은 나이지만 요즘만큼 답답할 때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취업, 연애, 결혼, 집장만등 포기해야 할 게 넘쳐나는 그들에게 세상은 자꾸 포기하지 말아라, 희망을 가져라, 최선을 다 해라 합니다. 그러니 삶 자체를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이 비운의 세대가 맞습니다. 먹고살기도 힘들고 그냥 살아남기도 힘듭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 고난이라고 생각됩니다.
생각을 바꿔보면, 삶은 원래 그런 것 아닐까요.
삶은 원래 힘듭니다. 예측 불가능한 불행이 도처에 널려있고 겨우겨우 피해 가다가 어느 순간 똥 밟듯 밟기도 하고요. 나만의 불행인 줄 알았지만 우리 모두의 불행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최고 불운의 세대 콘테스트는 그만하고 서로를 토닥여줬으면 합니다.
"많이 힘들어? 나도 힘들어! 내가 더 힘들어!"라는 말 대신
"많이 힘들지?" 여기까지만...
그런데 돌이켜보면, 삶이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잖아요.
신나고 재밌는 일도 많았고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한 적이 더 많잖아요.
그러니 우리, 오늘을 살아요~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