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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l 13. 2021

비운의 세대, 란 없다.

"쟤도 참.... 딱하다."

"누구? OO이? 그렇지... 입대를 일주일 앞두고 4단계 됐으니 아무것도 못하고 가게 생겼어. 밤새 놀고 실컷 자다가 오후 4시에 벌떡 일어나더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다시 눕더라."

"쟤네 세대가 그렇잖아. 해병대 캠프 사고, 세월호 참사, 메르스 때문에 수학여행, 졸업여행 한번 못 가봤는데 코로나19로 고등학교 졸업식, 대학교 입학식도 취소되고 OT, MT 같은 것도 못 가봤으니..."

"그렇지. 자기들끼리 비운의 2001년생이라고 하더라."

"우리도 마찬가지야."

"우리? 40대?"

"응. 1997년 IMF 맞아서 취업이 힘들었잖아. 졸업 후에도 학교 도서관에 남아 취업 준비하는 사람 많았잖아. 결혼하고 내 집 마련해야 할 시기에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하우스 푸어 됐고. 지금은, 백신도 제일 늦게 맞아야 하고 직장에서 잘릴까 걱정하는 나이고..."

"그러네..."


식사를 하던 남편의 하소연을 듣노라니 량 맞기 그지없습니다. 하는 일마다 제동이 걸리니 되는 일 참 없는 세대라고 생각할 수밖에요. 2001년생인 아들도 늘 입에 달고 살던 투정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신세계가 시작될 줄 알았는데 태어나 이렇게 운신의 폭이 줄어든 삶은 처음일 테죠. 그것도 대학 신입생 시절을...


2001년생들이 신세를 한탄하니 1999년생이 목소리를 냈습니다.

"아니거든! 우리가 진짜 대박 운 없었거든? 우리는 외환위기 직후에 태어났어. 태어날 때부터 불안한 시대였다구. 11살이던  2009년 신종플루를 겪었어.  6학년 때는 교육과정이 개정되는 바람에 초등학교 때 역사교육을 받지 못한 유일한 세대야. 중3이던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났지. 수학여행은 커녕 운동회도 취소됐어. 고등학교 입학하자 메르스 터졌지, 2학년 때는 대통령 탄핵한다고 어수선했지, 3학년 때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일주일 연기됐지, 우리만큼 우여곡절 많았던 세대는 없다구."


그런데 말입니다.

어찌 보면 모든 연령대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운 없기로는 저리 가라거든?"

국가 위기, 전 세계적 전염병 앞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한 세대가 있을까요.


영유아들은 바깥나들이 한번 하기 어렵습니다. 그뿐인가요? 왕왕 들려오는 뉴스를 보면 태어나자마자 학대에 시달리는 아기들도 많습니다.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어 온전히 부모와 어른들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불안한 아이들이 있는 겁니다.

유치원생들은 그 작은 입과 코를 마스크로 가리고 하루 종일 생활합니다. 모든 유치원 선생님들이 폭력적인 것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아이가 집에 오면 엄마는 묻습니다. "오늘 유치원은 어땠어? 무슨 일 없었어? 선생님은 뭐랬어? 혹시 선생님이...."


상대의 표정을 보며 감정을 익혀야 하는 사회화 시기에 마스크 너머 눈만 쳐다봐야 하는 아이들이 걱정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취학 전 아이들에게도 이 세상은 고단합니다.


초, 중, 고 학생들은 또 어떻구요.

학교에서 친구들과 맘껏 웃고 떠들어본 적이 언젠지요. 밥 먹을 때가 가장 즐거운 법인데 한 칸씩 떨어져 앉아 가림막 안에서 조용히 밥 먹는 행위만 해야 합니다. 모둠활동은 전면 금지됐고 그나마도 매일 학교를 가는 것도 아닙니다. 입학식, 졸업식은 커녕 체육수업도 편하게 못하고요.

집에서 원격수업을 하는 건 또 어떻고요. 모니터만 뚫어져 쳐다보느라 시력이 나빠진 아이들도 많고, 옆에서 챙겨주는 어른이 없으면 1교시 지각, 점심시간 후 낮잠에 빠져 수업을 빼먹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수업 모니터와 게임 모니터를 정신없이 오가며 하루를 보내는 학생들도 많고요. 그러다 보니 학력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고 한번 벌어진 틈은 메우기가 힘듭니다. 그 생활이 벌써 1년 반째... 수학 포기자뿐 아니라 공부 포기자가 늘어갑니다. 친구도 잃고 공부도 잃었습니다.


캠퍼스의 낭만은 잊은 지 오래인 대학생들...

사실 캠퍼스를 밟아본 적 없는 1, 2학년이 수두룩 합니다. 남학생들은 서둘러 군대를 신청해보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시간을 벌어보고자 휴학을 해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아르바이트 자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밖으로 다니는 것 자체가 위험한 세상이니까요. 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면 부모님 눈치가 보이고 나가자니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졸업을 앞두어도 취업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계속 유예를 하고요. 원래 20대는 가장 고민이 많은 나이지만 요즘만큼 답답할 때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취업, 연애, 결혼, 집장만등 포기해야 할 게 넘쳐나는 그들에게 세상은 자꾸 포기하지 말아라, 희망을 가져라, 최선을 다 해라 합니다. 그러니 삶 자체를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이 비운의 세대가 맞습니다. 먹고살기도 힘들고 그냥 살아남기도 힘듭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 고난이라고 생각됩니다.


생각을 바꿔보면, 삶은 원래 그런 것 아닐까요.

삶은 원래 힘듭니다. 예측 불가능한 불행이 도처에 널려있고 겨우겨우 피해 가다가 어느 순간 똥 밟듯 밟기도 하고요. 나만의 불행인 줄 알았지만 우리 모두의 불행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최고 불운의 세대 콘테스트는 그만하고 서로를 토닥여줬으면 합니다.

"많이 힘들어? 나도 힘들어! 내가 더 힘들어!"라는 말 대신

"많이 힘들지?" 여기까지만...


그런데 돌이켜보면, 삶이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잖아요.

신나고 재밌는 일도 많았고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한 적이 더 많잖아요.

그러니 우리, 오늘을 살아요~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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