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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l 07. 2021

스벅의 노예

스타벅스가 한국 고객을 길들이는 법

오늘로 3일째다.

아침 6시 30분에 알람이 울리면 채 떠지지도 않은 눈을 비비며 스타벅스 앱을 켠다. 그러면 줄 서기가 시작된다. 앱에 입장하기 위한 줄이다. 2만여 명 정도가 줄을 서있고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들어가나는 7시가 다 되어 스타벅스 앱에 입장을 한다. 기쁜 마음으로 뛰어 들어가면 다시 줄이 보인다. 끝도 안 보이게 늘어선 줄. 줄 끄트머리에 가서 쭈뼛쭈뼛 선다. 전광판에 숫자가 표시된다. 대기인원 99999명, 예상 대기시간 10분 이상.

30여 분간 기다린 게 아까워 또 30분을 기다려본다. 두 시간 동안 에버랜드 사파리 줄에서도 잘 버틴 나다. 이 정도쯤이야. 그렇게 또 하염없는 기다림을 이어나간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전 지역 품절.

"으 즌짜 쯔증느...."


스벅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벅 커피도 즐겨먹지 않는다.

그런데 스벅커피쿠폰 선물을 종종 받는다. 내게 스벅은 쿠폰을 쓰러 가는 곳이다. 그러니 여름과 겨울에 하는 스타벅스 프리퀀시를 위해 스티커를 모은다거나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사은품으로 교환하는 일 따위는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올해는 일단 받아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스티커를 모아두었고 지인이 남는다며 몇 개 준 것까지 합치니 스벅에서 정한 기준을 충족시켜버렸다. 그렇게 '자격'이 생겼다.

몰랐다.

그것은 사은품을 탈 수 있는 자격이 아니라 줄을 설 수 있는 자격이라는 것을 말이다.


애초에 사은품으로 준다는 쿨러나 랜턴은 내게 필요한 것들이 아니었다. 간절하게 원해 줄을 설 이유도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친한 동네 지인 둘은 달랐다. 스티커를 모으지는 않지만 사은품은 갖고 싶던 그들. 서로 달라던 그들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고스톱을 쳐서 1등 한 사람에게 이 스티커를 다 주겠어요!"

나름 공정한 게임을 통해 승자를 가려 스티커를 주기로 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사은품을 탈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한 줄, 그 줄에 서기 위한 자격을 얻기 위한 게임을 제안한 것. 재미 반 승부욕 반이 적당히 버무려진 고스톱판에서 내 친구 순자가 우승을 했다.

그녀에게 그냥 스티커를 넘겼어야 했는데, 마음 약한 나는 내가 타다 주겠노라 호의를 베풀었다.

아니다. 순자가 순진한 눈망울로 쳐다보며 "유정아~ 나 스벅 앱도 없어~~ 그냥 네가 타다 주면 안 돼?"라는 말에 넘어가 순순히 타 주기로 한 것이다.


몰랐다.

스타벅스 프리퀀시 사은품을 타기 위한 줄에 선다는 게 얼마나 힘들며 동시에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

7시부터 시작한다길래 예의상 6시 50분에 들어갔던 지난 월요일. 그때부터 기함을 했다. 앱에 들어가기 위한 대기자만 수만 명이었다. 게다가, 2분으로 설정된 내 휴대폰 화면 끄기 설정 때문에 꺼진 휴대폰을 다시 켰더니 다시 줄 맨 끝으로 보내버렸다. 그렇게 다시 기다리다 들어갔을 때,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둘째 날인 어제는 6시 40분쯤 들어갔지만 더 많은 인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꾹꾹 참으며 기다렸더니 스타벅스 앱에 입장이 되었다. 부푼 꿈을 안고 프리퀀시 사은품 예약신청을 누르니 '대기인원 99999명, 예상 대기시간 10분 이상'이라는 창이 떴다.

절망했다. 줄이 길어서가 아니었다. 사은품을 못 타서가 아니었다.

스벅이라는 기업 앞에서 내가 얼마나 우스워졌는지 자존심 상해서였다. 나와 함께 줄 서있는 저 99999명 이상의 사람들, 대한민국 국민들이 스벅 앞에서 줄 서 있는 꼴에 화가 나서였다.


오후에 만난 순자에게 선언을 했다.

"순자야. 나 스벅 사은품 못 타겠다. 도저히 못하겠어. 그건 할 짓이 못돼. 스벅의 노예가 된 기분이야. 비참하고 한심해. 아주 못된 기업이야. 그러니, 사은품은 잊어라. 원하면 앱을 깔아~ 스티커를 몽땅 보내줄게."

돌아온 건 욕 한 바가지였다.

"야 이 기지배야! 그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열심히 고스톱 안쳤지. 기껏 쳐서 일등 했는데 이제 와서 상품을 안 준다고 하면 어떻게 해! 내놔. 빨리 내 스벅 아이스박스 내놔~ 앱에서 못 받겠으면 당근 마켓에 4만 원에 나왔다니 그거라도 사서 줘라! 이 나쁜 년!"

"푸하하하. 너 그게 그렇게 갖고 싶냐? 이 자본주의의 노예. 스벅의 노예 같으니라고."

"아 몰라 몰라 몰라. 타 와. 무조건 타 와!"


그래서 난 오늘 아침에도 스벅 앱을 켰다. 6시 30분에...

30분을 기다려 입장을 했고 30분을 또 기다린 끝에 드디어 사은품 앞에 다다랐지만, 갑자기 폰 화면이 먹통이 됐다. 그리고 다시 99999명 이상의 뒤로 갔다.


"스벅은, 진짜 나쁜 기업이야."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을 향해 아침부터 스벅 험담을 늘어놓았다.

"어떤 부분이 나쁜데?"

"사람을, 특히 한국사람을 너무 비참하게 만들어. 우리가 뭘 좋아하는지를 너무 잘 알아. 그게 너무 꼴 보기 싫어."

"진짜 대단한 기업 아니야? 그걸 너무 잘 알잖아. 싫네 어쩌네 해도 사람들은 결국 스벅에 목숨 걸잖아. 그러니 대단하지.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인데도 한국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거랑은 대조되잖아."

"그러네... 다른 브랜드에서도 비슷한 사은품 증정 행사를 많이 하지만 사람들은 무조건 '스벅' 것을 원하지. 고유의 색에 고유의 문양이 새겨진 스벅 꺼..."

"그렇게 대단한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데 그걸 우린 못하고 있는 거잖아."

"씁쓸하네..."



씁쓸한 건 씁쓸한 거고, 당장 순자를 어떻게 달랠 지 고민이다.

행사 마지막 날까지 이 '최선'이란 걸 다 해야 하는 건지, 솔직히 말하고 욕을 한 바가지 먹고 그만둘 것인지...

난 스벅의 노예는 아니지만은 이미 오래전부터 순자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왜 이걸 하고 있는건지...

혹시 제친구 순자가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yjjy030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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