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전역까지 D-526

by 늘봄유정

아들~~

날이 좀 시원해졌는데, 더위 많이 타는 넌 잘 모르겠지? 덥고 힘들어도 멍 때리는 것보다는 훈련받는 게 더 좋다는 네 전화에 맘이 많이 놓였다.


말복인데, 삼계탕은 먹었겠지?

어떤 엄마가 < 더캠프 > 게시판에 취사병 아들 이야기를 적었더라. 중복 때 몇백 명분 삼계탕을 준비하느라 힘들었다는데 말복 때 또 삼계탕 끓여야 한다고 했다며 엄청 걱정하시대... 집에서 몇 마리 끓이는 것도 더운데 취사병들은 얼마나 덥고 힘들까.

그런데 엄마는, 아들이 취사병이 아닌 나는, 우리 아들이 복날에 영양 많은 삼계탕 먹고 힘냈으면 좋겠다. 아니다. 넌 물에 빠진 닭은 안 좋아하니까 허니 콤보 같은 거 해줬으면 좋겠네. 사악하지? 끓이는 것도 모자라 튀기라고 하다니... 취사병의 어머니들이 들으시면 당장 따지러 달려오시겠구나.


지난 토요일, 아빠가 현관에서부터 소리를 지르며 들어오더라.

"울지 마! 당신 울지 마! 절대 울지 마!"

뭔 소린가 했더니 '장정 소포'를 손에 들고 있는 거야. 훈련병의 옷가지와 소지품을 넣은 상자가 우리 집에도 도착한 거지. 입대 후 3주 만이네.


아빠의 우려? 바람? 과는 다르게 눈물이 나지 않았어. 오히려 신기했달까?

아빠는 요즘 엄마에게 "울지 마, 당신 울지 마!" 혹은 "당신 울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말로는 엄마가 울면 자신도 따라 울어버릴 것 같아서라는데, 뭔가 실실 즐기는 것 같은 악동의 멘트다.


네가 입고 갔던 옷, 휴대폰과 충전기, 신발, 가방, 그리고 맨 위에 네가 쓴 손편지.

편지지 좀 갖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내 말에 넌 "난 편지 같은 거 안 써~"라고 말했지.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저녁에 편지 쓰는 시간이 의무적으로 주어졌나 보더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편지를 썼을 리가 없고 생각했지.

주변 동료들에게 빌렸는지 서로 다른 네 장의 편지지에 매일매일 두세 줄씩 써 내려간 조각 글이 차곡차곡 쌓여있더군. 내용을 읽기도 전에 네가 기특해졌다.


아빠랑 서로 편지 낭독을 미루다가 결국 엄마가 읽기 시작했지.

우리 셋은 네가 쓴 한 문장에 까르르 웃다가, 가끔은 목이 메어버린 엄마 때문에 정적이 흐르기도 했다가, 또 어떤 대목에서는 잠시 멈춰 네 얘기를 나누기도 하며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통화로는 부족했던 무언가가 편지로 채워지는 기분이었어. 말로는 전해지지 않는 감정이 한 글자 한 글자에 꾹꾹 담겨 있는 것 같더라.


소포를 받은 지 몇 시간 뒤 네게서 전화가 왔을 때, 오늘은 정말 여러 번 기쁨을 주는구나 싶었다.

더운 낯 시간 훈련을 피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훈련을 한다는 얘기, 이틀에 한번 꼴로 불침번을 선다는 얘기, 화생방 훈련을 했다는 얘기.

평소에 과묵하던 네가 우리에게 3분 동안이나 떠들어주어 고맙더라.

편지지와 우표 좀 보내달라고 하는 게 웃겼고, PX에서 과자 사 먹었다는 말에 무슨 과자를 사 먹었는지가 왜 궁금한지.


그런 의미에서, 군대는 너와 우리 가족에게 신선한 경험을 많이 선사하는구나.

그런 의미에서, 엄마는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단다.

그저 새롭고, 신기하고, 감동스럽고, 그래서 행복하다.


참!

장정 소포를 받으면 옷에 밴 아들의 체취를 맡으며 그리움에 눈물을 흘린다던데...

퀴퀴한 냄새 때문에 바로 세탁 돌려버렸단다.

감성이 점점 메말라가는 건지 결벽증인지.


그리고...

다이어트 보조제는 왜 들고 간 거임?

이거 때문에 한참 웃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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