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마지막 밤

전역까지 D-513

by 늘봄유정

네가 입대한지도 벌써 한 달.

내일이면 논산 훈련소를 떠나 후반기 교육이 있다는 육군 종합행정학교로 가는구나. 너와 내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와 내용은 달랐겠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공평하게 같은 한 달을 보냈단다. 너의 한 달은 어땠니?

엄마는, 너를 향한 짙은 그리움이 일상과 버무려지며 서서히 옅어지는 것을 느낀 한 달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걸 어느 한순간에 규정한다는 게 얼마나 뜬구름 같은 소리인지 얼마나 공허한지를 절감했지.

동시에, 그리움이라는 것은 옅어지는 대신 삶 곳곳에 스며든다는 것도 알게 됐단다. 처음엔 온통 너라는 존재 하나만 그리웠다면 이제는 모든 사물과 장면이 너를 소환해낸다. 고로 나는 네가 내 옆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너와 함께 보낸단다.


지난 주말, 양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네 전화를 받은 감회를 숨기지 못하셨단다.

낯선 전화에 대한 경계심으로 네 전화를 놓치실까 봐 어떤 번호든 무조건 받으시라 미리 일러두었지만 전화를 받기까지 한참을 고민하셨다고 하더라.

무뚝뚝하던 손자가 살갑게 당신의 안부를 묻고 당신의 궁금증에 성실히 답하는 것이 그리 신통하셨을까. 너의 안부전화 덕분에 엄마는 소원하던 할머니와 모처럼 긴 통화를 했단다.

냉정하고 직설적인 딸년에게 오만정이 떨어지셨는지 내 전화를 피하며 문자로 건조한 대화만을 허용하던 외할머니셨다. 떡도 해다 드리고 좋아하는 족발을 사들고 가볼까 시도도 해봤지만 번번이 거절의 문자 한 줄이 다였단다. 그런데 손주의 전화 한 통에 그간 참아왔던 온갖 수다를 쏟아내시더라.

그래서 고마웠단다. 주말에만 한정된 통화 시간을 쪼개 세분의 조부모님께 전화를 드린 게 고마웠고 그래 줬으면 좋겠다는 나의 부탁을 들어준 게 감사했단다.


'목소리가 밝다, 그새 많이 큰 게 느껴지더라'는 할머니들의 소감과 달리 '뭉클하더라.'라는 외할아버지의 한마디는 왜 그리 엄마 마음에 박히던지. 무뚝뚝하기로는 국가대표급인 할아버지인 거 알잖니. '남자는 속정이다' 발언의 원조인 그분이 쓰신 '뭉클'은 그 어떤 감정보다 크게 다가오더라.

엄마가 더 이상은 그분들께 드릴 수 없던 감동이었을 거다. 어느 순간부터 차단당하셨다고 느끼셨을 감정의 결들이 손자인 너로 인해 되살아나신 것처럼 보였다. 나만큼이나 네게 고마워하셨을 테다.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밤이구나.

추적추적 비는 내릴 테고 또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내일에 대한 기대가 잠을 뒤척이게 하겠지. 내일이면 몸뚱이만 한 커다란 짐에 설렘과 긴장까지 함께 꾹꾹 담아 짊어지고 길을 나서겠구나.

삶이란 신기하게도, 힘들면서도 즐겁고 고생스러우면서도 의미 있고 그렇더라. 그러다가 지치고 그러다가 까부라지고 그러다가 짚고 일어서고 그러다가 다시 걸어보고...

그렇게 가지는 거더라. 삶은...

그렇게 가보자. 그렇게 살아보자. 그러다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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