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은 마루타가 아니오!
전역까지 D-508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육군 종합행정학교로 떠난 지가 5일째인데 너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구나. 그곳은 인터넷 편지를 전할 수가 없고 밴드나 카페 등 소식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전무한 곳이다 보니 네 전화만 오매불망 기다리게 된다. 전화를 받았다는 군부모들의 글을 통해, 종합행정학교는 논산보다 시설이 나으며 밥도 맛있고 주특기에 따른 훈련이 바로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일과 후나 주말에 개인 시간이 많기는 하지만 PX 줄도 길고 전화 줄도 길다고 하더라. 이렇게 세세히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이번 주말에 너에게서 전화가 온다면 난 이 모든 소식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묻고 또 묻겠지.
대국민 국군 소통 서비스인 < 더 캠프 >는 요 며칠 아주 시끄럽다. 아니, 전국이 시끄럽다.
국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하는 코로나 19 백신 집단 면역 실험을 두고 말이다. 한 국회의원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빌어 이 실험이 대통령의 지시였다고 주장했다. 군의 백신 접종 완료율이 94%에 달함에 따라 군 활동 정상화를 위한 방안 마련을 위해 일부 선정된 부대를 중심으로 마스크 없는 일상의 회복을 '실험'한다는 것이다.
어느 기자가 올렸다 내려버린 기사 하나에서 촉발된 이 사안은 여러 갈래로 확대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기자가 기사로 써도 되는 것인가? 이래서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법이 필요한 것 아닌가? 확인되지 않았다지만 논의되었던 건 사실 아닌가? 질병관리청과의 협의 없이 단독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인가? 집단면역 실험을 군인에게만 한정해서 하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가?.........
아빠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미 위에서는 집단 면역 실험을 결정해 놓은 거야. 그래 놓고 언론에 슬쩍 흘려 여론을 확인하려던 거지. 여론이 아주 안 좋으면 기자 혼자 뒤집어쓰면 되는 거고 슬슬 잠잠해지는 것 같으면 점진적으로 확대하겠지. 20대 애들 모아놓고 아주 잘들 한다."
실제로 일부 언론사의 특종 욕심이 불러일으킨 일이라는 분위기가 있단다. 생체실험을 연상시키는 '실험'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특종을 노린 개인의 욕망에 불과하다는 것이지. 언론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고 가는 이유다.
이렇게 프레임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떠도는 사이 어느 부대에서는 다음 주부터 노 마스크 지침이 내려왔다는 증언이 속출하고 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도통 모르겠구나.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도 모르겠다. 군에 아들을 보낸 부모의 입장에서 보자면 절대 안 될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어떨까를 고민해보게 된다.
'엄마'의 의견은 이렇다.
어느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집단 면역 실험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실험하기에 딱 좋은 조건인 건 알겠다. 제한된 구역에서 생활하고 대부분의 구성원이 백신 접종을 완료했으니 일상 회복의 안전성 여부를 판단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상태가 없겠지. 게다가 혈기 왕성하고 건강한 젊은이들이니 군침을 흘릴만하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면역 실험을 위해 군대에 간 게 아니잖니? 분단 상황에서 국가 수호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것이잖아. 코로나와의 전쟁 시국이니 지금의 주적이 바이러스라서 이런 실험을 하는 게 정당하다고 하진 않겠지?
실험대상을 '군인'이라고 한정 짓고 이유를 나열하는 순간 일부에서는 이런 목소리도 나오더라.
"그럴 거면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해라!"
이건 무슨, 지구 종말을 앞두고 재소자들로 구성된 해결팀을 행성 폭발을 위해 급파한다는 재난영화 같은 스토리라니. 북파공작원으로 보내기 위해 사형수들로 구성된 특수 부대를 훈련시키는 어떤 영화도 생각나고 말이다.
따라서 절대 면역 실험을 특정 집단에게 해서는 안된다. 또 다른 사회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다수의 인권을 위해 누군가의 인권이 또 짓밟히는 현장을 목도하게 될 뿐이다.
휴전상태이기에 더더욱 군인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안된다.
면역 실험이 실패할 경우를 가정해보자. 군대라는 곳이 철저하게 고립된 사회가 아니잖아. 그곳에는 출퇴근하는 군인들도 있을 테고 외출, 외박을 다녀오는 군인들도 있는데 그들로 인한 돌파 감염이 심각한 상황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군사력의 엄청난 손실, 국방력의 구멍으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전시상황에서 군인들의 사기뿐 아니라 체력까지 최대치로 끌어올려놓아도 시원찮은 판에 뭐? 실험? 그것도 면역 실험? 집단 면역이 가능한지의 여부를 따지는 실험이라고? 절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를 생각하려고 노력해본다.
"당장 전 군인에게 적용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부 부대를 대상으로 훈련을 조정하고 외출, 면회를 완화하는 등 점진적인 변화를 진행시켜보겠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있다. '실험'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반감을 불러일으킨 기자의 잘못이지 군에서는 절대 '실험'의 의미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청와대의 해명처럼 '군 활동 정상화'의 취지로 이해해야 한다.
더불어 높은 접종 완료율의 효과 확인이라는 거시적 목표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전 국민 접종률이 그 정도로 높아질 때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할지를 파악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일부 부대라 함은 접종률이 94%를 넘는 곳을 말한다. 항체 형성 기간인 2주가 지난 시점은 집단면역 단계라 판단했다. 군내 신규 확진자 숫자가 제로에 가까운 시점이라는 것도 충분히 고려한 결정이다. 감염 확산의 징후가 보인다거나 집단면역에 긍정적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부 부대에게만 적용한 것이기 때문에 국방력의 상실을 걱정할 일은 없다."
이해해보려고 애썼지만 힘들구나.
네가 속한 부대는 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심이 고개를 드러내고 그 이기심이 드러나지 않는 방법은 이 실험이 백지화되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
도전하는 삶, 분투하는 삶을 지향하던 나였지만 속수무책의 감염병 앞에서는, 아니 아들을 군대에 보낸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저 가만히 있자고 말하고 싶구나. 백신을 맞았어도 마스크 절대 벗지 말고 교류를 최소화하면서 절대적으로 숨죽이며 살자고 하고 싶구나. 그곳이 군대일지라도 말이다.
이제 군 생활의 7.5%를 완료했다고 앱에서 알려준다.
남은 92.5%의 날들, 전역까지 남은 508일이 더없이 까마득하게 여겨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