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는 곳은 다르니?

전역까지 D-504

by 늘봄유정

아들아!

결혼하고 널 처음 임신했을 때는 세상이 온통 임신부 천지더만, 이제는 세상에 군인이 가득하구나. 우리 동네에 왜 갑자기 앳된 군인들이 많이 나타났는지, 예전에는 왜 그리 안보였는지 모를 일이다. 그만큼 인간은 자기 편의적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는 거겠지. 이제 임신부는 별로 안보이거든...


지난 주말 넷플릭스에 올라온 새 드라마를 몰아봤는데, 다 보고 난 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단다.

< D.P. >라는 웹툰 원작의 드라마였는데 출연하는 배우들에 대한 기대로 보기 시작했지만 드라마가 끝날 즘, 걱정과 불안을 거둘 수가 없었거든...


탈영병을 잡는 '군무이탈 체포전담조(Deserter Pursuit)'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연 없는 탈영병이 없고 그들을 쫓는 헌병들에게도 각자의 사연이 있었지. 군대 가혹행위를 수면 위로 드러내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 시리즈에 많은 군필자들이 열광했다고 하더라. 누군가에게는 수치스러운 기억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것이며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 작품이다.


"키우던 개가 사람을 물면 그 개는 죽여야 돼, 한 번이라도 사람을 문 개는 용서가 안되거든. 또 그럴 거라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개 입장에선 자기한테 돌 던지고 괴롭히던 새끼를 문 거면 억울하지 않겠냐?"

원작의 제목이 <D.P. 개의 날>인 이유가 이 대사 때문 아닐까 싶더라. 잘못한 건 잘못한 거지만 탈영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거지. 그 이유가 무자비한 가혹행위 때문이었다면 탈영병의 억울함을 알아주고 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처방이 내려져야 하는 게 아닐까, 드라마는 묻고 있었단다.


문제의식과 동시에 드라마는 또 질문을 던지더라. 과연 군대문화의 변화라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2014,15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오늘의 군대와는 다를까.


"차라리 군대가 바뀔 거라고 하십시오."

"바뀔 수도 있잖아. 우리가 바꾸면 되지."

"저희 부대에 있는 수통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아십니까?"

"어?"

"1953! 6.25 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피해자가 전역한 가해자를 찾아가 위해를 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남긴 말은 군대라는 곳이 얼마나 보수적인 사회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군인들이 바뀌면 군대가 바뀔까?

군인들의 의지로 군대를 바꿀 수 있을까?


"당신이 있던 부대에서도 때리는 게 있었어?"

아빠에게 물어보았단다. 그러고 보니 아빠의 군대생활, 후임들을 갈구고 조인트 까는 장면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아빠와 폭력, 폭언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인가 보다.

"당연히 있었지."

"당신도 맞았어?"

"그럼, 한 달에 한 번씩 군기 잡는 날이 있었어. 한꺼번에 모아놓고 때렸지."

"당신도 때렸어?"

"날 몰라? 난 안 때렸지."

"그럼 당신 후임들은 안 맞았어?"

"맞았지. 동기들이 후임들 모아놓고 때릴 때, 난 그 자리에서 벗어나 있었지."

"그건.... 방관이잖아. 이 드라마에서도 나오잖아. 방관했던 사람들도 다 나쁘다고."

"그렇지... 방관했지..."


폭력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 해도 방관했던 사람은 덜 나쁜 걸까? 때린 사람도 지켜보던 사람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 시절엔 그래도 되는 건 줄 알았다고 한다면 과거의 군대는 그런대로 이해해야 하는 걸까. 아빠도 적잖이 당황하고 불편했을 것 같구나.

얼차려와 가혹행위는 다른 걸까. 군 기강 확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얼차려는 허용해야 하는 걸까.


"그런 행위가, 필요했다고 생각해?"

"필요하지. 군대에서는 필요해. 살아온 환경의 스펙트럼이 끝에서 끝인 사람들을 모아놓은 곳이잖아. 생각, 성격 모두 다른 사람들을 모아놓고 나라를 지킨다는 하나의 목표를 심어줘야 하는 곳이 군대지. 단시간에 획일화시키는 가장 손쉽고 빠른 방법은... 폭력일 수밖에 없어. "


과거의 군대도, 현재의 군대도, 미래의 군대도 알길 없는 엄마는 과거의 군대가 과연 과거에 머물러 있을지에 회의적이다. 세상이 바뀌어 군인권센터도 생기고 일과 후 휴대폰 사용도 가능해졌지만 군대 폭력, 성폭력 사건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들이 멈추질 않는 걸 보며 과거의 무식했던 폭력이 은근한 괴롭힘으로 진화하지는 않았을까 우려된다. 야만적인 폭력이 오히려 순수했다고 생각될 만큼 오늘날의 군대 폭력이 더 악랄하고 잔인하게 변모하지는 않았을까...


심심풀이로 본 드라마 하나가 엄마의 머릿속을 뒤흔들어놓았다.

철로 만든 수통이 수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처럼 분단국가의 '군대'라는 극단의 설정 역시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안에 뜨끈한 피가 흐르는 '사람'은 수십 년이 지나며 변하지 않았을까. 과거에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던 일'이더라도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아는 일'이 되었으니 엄마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한 거겠지? 그치?


드라마 말미, 극단으로 치닫는 탈영병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부대가 SDT, 네가 지원한 군사경찰특임대였다. 군대 내 강력 범죄와 대테러 초동조치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그들은, 떨고 있었다. 어제의 동기를 향해 실탄을 장전한 총구를 겨눠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기껏해야 20대 초반의 아들들. 성인이지만 누군가의 손주이자, 아들이자, 애인으로 평범하게 청년시절을 보내던 이들에게 군대는 그 자체로 가혹하고 두려운 존재더구나.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기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자유를 빼앗아 버리는 곳. 그래서 모두가 불쌍한 곳.


"요즘 군대도 옛날과 같아? 드라마처럼 그래?"라고 물었을 때, 휴가 나온 네가 "요즘은 안 그래~"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아들은 마루타가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