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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18. 2021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8개.

자그마치 달걀 8개를 깼다. 아침 반찬 계란말이로는 꽤 많은 양이었다. 개학한 작은 아이만 먹이고자 했다면 세 개 정도도 충분했을 터. 하지만 다이어트를 선언하며 어제저녁 식사를 건너뛴 남편의 아침 도시락 반찬에도 넣고 오래간만에 나도 좀 먹어보자는 계산에 8개나 풀었다. 그러고 보니 내 입에 계란말이를 넣어본 게 언제인지... 


부드럽게 풀어놓은 계란물에 당근과 파를 다져 넣었다. 잘 달궈진 사각 팬에 조심스레 계란물을 흘려가며 한번 말고, 또 흘려 익히고 다시 한번 말고. 이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적당히 두툼해진 계란말이 두줄이 완성됐다. 아침 식사하는 아이에게 한 줄을 몽땅 주고 남편의 아침 도시락 반찬으로 한 줄에서 나온 12쪽 중 7쪽을 넣어주었다. 나를 위한 5쪽은 도마 위에 그대로 두었다. 아이와 남편을 출근시킨 뒤 혼자서 여유롭게, 맛있게 먹을 상상을 하며.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온 남편은 밥상을 한번 쓱 보더니 아이가 남긴 계란말이 몇 쪽을 선 채로 먹었다. 그러더니 싱크대 위에 놓인 계란말이까지 쭉쭉 먹어버렸다. 

헉!

그.... 거.... 내.... 계.... 란.... 말.... 이.... 인.... 데.............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저걸 다 먹을 수가 있지? 아내 먹으라고 몇 개 남겨놓으면 안 되나? 진짜 너무해... '


먹을 것 가지고 아침부터 타박하기 싫었지만 결국 섭섭하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당신 계란말이는 도시락 반찬으로 넣었는데... 그거 내 건데... 내가 먹으려고 남겨놓은 건데. 일부러 큰맘 먹고 계란 8개나 풀어서 잔뜩 만든거라구..."

"헐! 어떻게 해... 몰랐어. 난 그냥 평소처럼 호진이가 먹다 남긴 거 먹는 거라고 생각한 건데. 도시락에 싼 줄 알았으면 안 먹었지..."


그랬다. 그는 몰랐다. 

내가 도시락을 싼 것도 몰랐고 계란말이를 싼 것은 더더욱 몰랐다. 도마 위에 올려진 계란말이 몇 쪽이 아내가 자기 몫으로 남겨놓은 것이라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이따가 다시 만들어서 꼭 먹어."

"내가 나 혼자 먹자고 계란을 풀고 당근을 다지고 파를 썰지는 않아. 프라이나 해 먹고 말지..."

"그렇겠네..."

그는 내가 나 먹자고 반찬을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다. 


나도 몰랐다.

그가 모를 것이라는 것을 몰랐고 말 안 하면 상대가 모른다는 자명한 사실을 잊었다. 



입대한 큰 아이에게 이따금 인터넷 편지를 쓴다. 가족들의 소소한 근황을 알려주고 세상 밖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옆에 있는 작은 아이에게도 편지 쓰기를 권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는 말했다.

"형제는 속정이여~~ 형제끼리 편지 쓰고 그러는 거 아니여~~ 형도 다 이해할거여~"

난 그 말이 그렇게 싫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말하지 않는데 상대가 어떻게 아니? 그리고, 형제끼리는 안되고 자매는 되고 그런 게 어딨냐? 흥! 칫! 뿡!" 


부치지 못한 편지는 안 쓴 편지다.

전하지 않은 사랑은 없는 사랑이다.

말하지 않은 내 마음이란 나만 아는 마음이다. 


하지만...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회사까지 데려다준 아내의 차에 남편이 두고 내린 반찬통. 그 안에 담긴 계란말이. 

그걸로 그의 미안함과 사랑이 전해졌다. 

동시에, '아내가 엄청 무섭다...'도 함께 전해졌다. 



* 남편은 출근길에 매일 작은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준다. 

오늘은 사정 상 차가 없어 내가 아이와 남편을 데려다 주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셋이 함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아이가 물었다.

"근데 엄마는 어디가?"

"아... 내가 말 안 했구나? 너랑 아빠 데려다주러 가."

말을 안 하고 혼자 속으로만 생각하는 버릇이 내게 있나 보다. 결국 모든 일은 말하지 않은 내게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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