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안쪽에는 나와 작은 아이가 자리 잡았고 문 앞에는 네 명의 여성들이 둘씩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왼쪽에는 8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와 60대로 보이는 그녀의 딸, 오른쪽에는 30,40대로 보이는 엄마와 7,8세 정도 되어 보이는 딸이 서 있었다.
지상 2층에서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나는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왼쪽 모녀는 머리부터 발끝가지 총천연색으로 덮여 있었다. 호피무늬와 꽃무늬가 어지럽게 섞여있고 붉은색이 지배적인 의상을 둘이 똑같이 입고 있었다. 할머니의 머리는 붉은빛이 도는 갈색으로 염색되어 있었다. 딸의 머리에는 장식이 화려한 핀이 꽂여 있었다.
오른쪽 모녀는 연한 하늘색의 원피스를 똑같이 입었다. 아이의 원피스에 세로로 흰 줄무늬가 있었다는 것만 달랐다. 머리에는 아무 장식이 없었고 신발은 단정한 샌들이었다.
대비되는 두 모녀의 모습에 혼자 씩 웃고 있으니 아들이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물었다. "왜?"
난 고개를 저었다. 대상을 앞에 두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두가 지하 3층에서 내려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아들은 또 왜 웃었냐고 물었다.
"차에서 얘기해줄게~" 나는 조용히 답했다.
차에 타자마자 아이는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 다시 물어왔다.
"너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던 두 모녀들의 의상을 봤어? 왼쪽은 총천연색의 화려한 옷을 둘이 똑같이 입었고 오른쪽은 연한 하늘색의 원피스를 입었잖아. 누가 봐도 모녀!라는 게 느껴지더라. 엄마의 취향이 딸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는 게 너무 놀랍고 재미있어서 웃었지."
"아... 난 또 뭐라고."
1932년에 발표된 김동인의 < 발가락이 닮았다 >라는 소설이 있다.
생식 능력을 잃은 주인공이 결혼을 하게 되고 아내의 임신으로 그녀의 부정을 의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아이가 친자임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발가락이 닮았음을 강조한다는 단편소설이다.
흔히 우리가 쓰는 '발가락마저 닮았다'는 표현이 이 소설에 근거했지 싶다.
아이들에게서 나와 남편의 흔적을 탐색한다. 아빠 닮은 반쪽짜리 눈썹, 아빠 닮은 한쪽 보조개, 엄마 닮은 두 턱, 엄마 닮아 쌍꺼풀 없는 눈. 유전된 생김새뿐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한 덕에 닮게 된 말투, 표정, 걸음걸이에서까지 닮은 구석을 찾아내곤 한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일부러 증거를 찾아내지 않아도, 닮은 구석이 하나 없더라도 가족은 희로애락을 나누는 동료다. 애틋하고 끈끈해 어떤 상황에서도 내편이 돼주는 관계.
혹은, 끈끈한 동료애로 뭉쳐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각자 독립된 자아로 서로를 인정하며 어떤 구속 없이 자유로운 관계이기도 하다. 남보다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관계.
무엇으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속내가 다양한 게 가족인데, 가족의 형태와 관계를 정형화시켜 생각해 온 게 아닐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네 명을 바라보던 나의 관점 역시 편견에 사로잡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모녀가 아니었을 수 있다. 고부였을 수도 있고 이모와 조카였을 수도 있다. 우연히 그날따라 비슷한 분위기의 옷을 입었을 수도 있다.
한참을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있다가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아들을 한번 바라봤다.
흰 티셔츠에 검은 바지.
어랏? 나도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