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맞고 오면 꼭 내 옆에서 자야 돼.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 있으면 즉각 즉각 얘기해야 하고."
"알았어~ 알았어~"
귀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었다. 아내의 백신 1차 접종을 앞두고 낑낑거리는 남편의 걱정이 고맙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날 밤이 되니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크게 괘념치 않고 살아오던 부정맥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그저께부터 날 괴롭히던 두통과 찌뿌둥한 몸 컨디션이 맘에 안 들었다. 게다가 지난밤 잠이 오지 않아 들어가 본 맘 카페에서, 어느 전사 같은 한분이 백신의 위험성과 부작용, 사망사례를 언급하며 '개인의 합리적 선택'을 들먹이는 통에 마음이 복잡해지기까지 했다.
백신 접종 당일인 오늘, 남편의 걱정이 최고조에 달했다.
"당신 부정맥 때문에 더 걱정돼서 그래. 백신 맞고 돌아다니면 안 될 것 같은데 작은 애 병원을 가야 하니 어째. 이상 있으면 내가 갈 테니 연락해."
"짧은 시간에 만들었으니 부작용이 많을 수밖에 없지. 질병관리청도 부작용이 없다고 하지는 않잖아. 그래도 맞았을 때 전체를 위한 이익이 더 크다고 여기니 맞으라는 거지."
"내 가족의 일이 되었을 때는 얘기가 달라져서 그래. 당장 당신이 백신 맞고 어떻게 된다고 해봐."
"백신뿐 아니라 뭐든 마찬가지지. 백을 다 만족시키고 백에게 다 좋은 게 어디 있어."
남편의 걱정을 매몰차게 밀어내 버렸다.
100% 만족스러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제도든 그 무엇 하나 완벽한 게 없다.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이 걸린다는 백신 개발을 1년 만에 마쳤으니 종류 불문하고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은 없으니, 최선이라고 생각하니 방역당국은 강행하고 시민들은 따를 뿐이다. 다만 각자의 상태, 때로는 신념에 따라 선택할 수는 있으니 그나마 다행.
살짝 두려움이 일었지만 결국 나는 접종을 선택했다.
"행여나 잘못되더라도 정부는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할 거야.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겠지. 가족 중에 그런 일을 당하면 피가 거꾸로 쏟는 건 당연한데, 지금은 전체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전시상황이잖아. 만에 하나 잘못되더라도 전쟁터에서 죽었다고 생각해."
가족들 웃겨주자고 던진 나의 말에 내가 당황하고 말았다. 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냉정하게 할 수 있는지 나 자신이 무서웠다. 그 말과 생각에 충실하다면 난 내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담담할 것이며 타인의 죽음 앞에서는 더 건조해질 테다.
걱정해준 사람을 단숨에 무력화시키고 전체와 대의를 위한 희생쯤 당연하게 여기는 전체주의자가 된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그런 사이코패스 같은 말을 냉정하게 쏟아부으면서 간밤에 오이소박이는 왜 담갔던 걸까.
나의 부재가 이어질 것을 대비한 이 바쁜 움직임은 무엇일까.
대체 뭐가 왜 두려운 걸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지금, 훈련소에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체력 특급 포상으로 갑자기 전화했다는 아들에게 "엄마, 백신 맞는다~"라고 하니 아들은 "오키오키~"라고 간단하고 밝게 답했다.
한결 가볍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슬슬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