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앵님....

by 늘봄유정

반년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분당에 유명한 정시 대비 국어학원이었지요.

지인이 은밀하게 알려준 곳으로, 아무나 다니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입소문으로 검증은 끝난 곳이라고 했습니다.

대기를 걸어두었는데 3주 전 한자리가 났다며 연락이 온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과든 문과든 국어가 당락을 크게 좌우한다더라. 영어, 수학에 비해 국어 모의고사 성적이 낮잖아. 나중에 국어가 네 발목 잡으면 얼마나 후회하겠어. 그때 뭐라도 더 해볼걸, 하고 말이야."

아이는, 흔쾌히까지는 절대 아니었지만 엄마의 노력이 가상해 보였는지 다니겠노라 했습니다.


수업은 일요일 12시부터 4시까지였습니다. 분당 수내동, 학원이 숨 막히게 들어선 건물에 자리 잡은 학원은 카페 같은 세련된 인테리어로 우릴 맞이했습니다. 아이는 한 반에 30명 정도 되는 수업을 들으러 들어갔고 저는 카운터에서 결제를 했습니다. 상담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저 기계적인 안내와 진짜 기계에 카드를 꽂는 행위만 이루어졌지요.

월 단위로 결제하는 그 학원은 10월에 남은 2주 분만을 결제하라고 했습니다. 11월부터는 분당 학교들의 내신 준비 기간이므로 용인에 사는 우리 아이는 몇 주 동안 쉬어야 한다고 했죠. 12월 중순부터 다시 나오라기에, 그럼 그때부터 시작하면 안 되냐는 저의 물음에 실장님은, "그럴 수는 없어요. 이미 대기자가 많아서, 다음 대기자에게 기회가 넘어가요."라고 위풍당당하게 말하더군요. 그렇게 아이는 분당 유명 학원의 수능 대비 국어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다시 왔다가 끝날 시간에 다시 데리러 가느라 길에 버려질 시간이 아까워 1층 커피숍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아들과 남편은 지루하지 않겠냐며 걱정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누릴 수 있어서 내심 좋았답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눈이 닿는 곳마다 할 일 천지인 집안에서 해방되어 커피 한잔 시켜놓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평소에는 잘 누리지 않는 사치였습니다.


아이는 억지로~ 억지로~ 두 번을 채우고 결국 그만두었습니다.

"왜? 왜 그만두고 싶은 건데?"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데?"

"그런 게 어딨어~~ 표현해봐. 그냥 아무 말이나 해봐. 내가 해석해볼게."

"음... 그 안에 내가 앉아 있다는 게 너무 마음에 안 들어."

"그 안이 어떤데? 거기에 앉아 있는 게 왜 싫은데?"

"옆에 있는 애들이랑 나도 똑같이 보일 것 같아서 싫은 기분?"

"옆에 있는 애들이 어땠는데?"

"눈에 초점이 없어."

"좀비처럼?"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너무 수동적으로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

"그게 다야? 또 다른 이유는?"

"난,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생님 강의만 듣는 게 싫어. 4시간 동안 선생님이 계속 강의하고 있는 거 듣는 게 싫어. 중간중간 나 혼자 정리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빡빡해."

"아... 그럼 영어랑 수학은 어찌 다니누? 다 같은 학원인데?"

"영어랑 수학은 달라. 수학은 거의 나 혼자 공부하고 모르는 것만 선생님께 물어보는 식이지. 영어는, 어떻게 공부할지 가이드를 잘해주시고. 그런데 여기는 아니야. 숨 막혀."

"그러면 못 다니지... 그렇지만, 혹시라도 말이야. 네가 싫다고 해도 엄마가 무조건 다니라고 하면, 다닐 거야?"

"아니!"

"알았어...."


더 이상의 회유, 설득은 불가능했습니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호불호가 강한 성격이라 원치 않는 학원은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던 큰 아이와 달리 작은 아이는 해보고 싶은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운동은 땀이 나서 싫고, 과학 실험하는 곳은 멀어서 싫고, 한 달에 한 번인 어린이 천문대 수업은 졸려서 싫고, 기타는 재미없어서 싫다고 했습니다. 형은 3,4년씩 다니며 재미있어하던 것을 작은 아이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수년 씩 오래 다녔던 학원은 미술과 수학학원이 다였기에 돈은 굳어서 좋았죠.


아이의 결정대로 학원을 그만두었지만 엄마로서는 참 아쉬웠습니다.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학원을 알아봐 주는 것도 '수험생을 둔 엄마의 도리'인 것 같은 현실에서 뒤처지는 것 같았거든요.

"얼마나 어렵게 들어간 학원인 줄 알아? 유명한 '쓰앵님'이라고. 엄마가 반년이나 기다려서 어렵게 등록한 건데 그걸 발로 차다니. 언제까지 용인에 머물러 있을 거야? 큰 물에서 놀아야지. 맨날 대여섯 명 앉혀놓고 강의하는 동네 학원에만 있다가 수십 명 앉아있는 학원에 가니 쫀 거야? 그렇게 나약해서 어떻게 입시를 치르려고 그래? 강해져야지!"

철 지난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엄마 흉내를 내니 아이는 깔깔깔 웃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둘이 한바탕 웃고 나니, 그 학원이, 그 쓰앵님이 별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는 속담처럼 아무리 뛰어나다고 소문난 쓰앵님이 있는 곳이라 한들 아이가 싫다는데 도리가 없습니다. 국어 성적이 좀 모자라면 어떤가 하는 마음도 듭니다. 모자라는 게 싫으면 본인이 알아서 채울 테죠.

드라마 속 쓰앵님은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감당하실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라는 대사로 유명합니다. 우리는 거기에 이렇게 답한 셈입니다.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는 예비고 3을 위한 인강 1년 프리패스를 결제해 달라고 했습니다.

분당 학원 한 달치 금액으로 인강 사이트에서 전과목 1년 무제한 수강권을 끊어주고 나니, 김장이라도 해 놓은 것처럼 든든해졌습니다. 이제 아이는, 다양한 쓰앵님이 가득한 그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알아서 공부할 테죠.

덕분에 저는 일요일 한낮의 여유로운 사치를 잃었지만, 대신 편하게 집에서 뒹굴거릴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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