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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29. 2021

< 아빠 육아 업데이트 > - 홍석준

알고리즘에 이끌려 보게 되고 좋아요를 거쳐 구독까지 하게 된 채널이 있다.

3살 아이와 백일 된 아이를 둔 부부의 일상 이야기를 담은 채널인데, 별거 없는 그 일상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폭 빠지게 된다. 영상 속 젊은 아빠는 한없이 따뜻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그 모습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열심히 영상을 찍는다.

내 옆에 누운 남편은 귀여운 강아지 동영상을 보며 아빠미소를 띠고 있다. 그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는 그는 '아빠'다.

때로는 측은했고 때로는 꼴 보기 싫었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남편'이라는 이름을 걷어내고 온전히 '아빠'로서의 그를 본 적이 있던가. 그도 영상 속 아빠처럼 아이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준 적이 있던가.


이웃 작가 초록 Joon님의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읽지 않았더라며 나의 남편을 향한 시선에는 사각지대가 존재할 뻔했다. 이 책을 만나 지금이라도 빈틈없이 그를 보게 되어 다행이다.



첫아이 탄생을 앞둔 남편의 꿈은 '친구 같은 아빠'였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라서 아이와 일상적인 대화조차 힘든 아빠는 싫다고 했다. 지난 20년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그와 나의 여정이었다.

지난 여정에서  '아빠로서의 남편'을 생각하면 결정적인 장면 세 개가 떠오른다.


장면 #1. 2004년 어느 날

작은 아이가 태어난 지 채 백일이 안 되었을 때였다.

전업주부였던 나의 일과는 뻔했다. 종일 아이들을 전담해 먹이고 씻기고 재웠으며 쓸고 닦았다. 남편은, 작가가 책에서 말했던 '육안빠(육아 안 하는 아빠)'였다. 똥기저귀 갈고 분유를 먹이며 함께 밤을 새워준 기억이 없다. 주말이면 소파에 아이와 함께 누워 잤던 낮잠을 육아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평일이었던 그날은 유난히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낸 날이었고 남편의 이른 귀가를 고대하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작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데 큰아이는 옆에서 배고프다고 칭얼거렸으며 마루 한편에는 걷어놓은 빨래가 한가득이었다. 장난감은 마루 전체에 발 디딜 틈 없이 펼쳐져 있었고 TV에서는 큰아이를 달래려고 틀어놓은 비디오 프로그램이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거의 다 왔는데 선배한테 전화가 왔어. 집 앞에서 한잔 하자네?"

"아... 오늘은 진짜 빨리 들어와 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종일 놀다 왔어? 그리고 집 앞에 와 있다는데 난들 어떻게 해!"

결국 그날 밤 우리는 크게 싸웠다. 뻔한 말이 오고 갔다.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아냐, 좀 일찍 들어와서 도와주면 안 되냐'는 내 말에 남편은 '나도 밖에서 하루 종일 힘들다. 그러면 네가 나가서 돈 벌어라. 내가 애들 보겠다.'라고.


당시의 남편은 그랬다.

육아에는 문외한이었으며 겁도 많았다. 갓난아기를 안았다가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며 벌벌 떨었다. 아이가 혼자 걸어 다닐 수 있게 되면 그제야 목욕을 시키겠다고도 했다. 친구가 되기에는 아이가 너무 어리다며 징징거렸던 것이다.

p140 아이의 나이와 내 나이의 차이를 따져본다. 그 차이만큼을 내 수고와 정성으로 돌려서 몸을 깊숙이 낮춘다.


남편은 몸을 깊숙이 낮추기보다는 아이가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택한 사람 같았다. 일과 술에 치여 살 주말에도 출근이 잦은  남편이었던터라 나의 육아는 힘들고 외로웠다.

책에는, 단둘이 아이와 놀러 나간 어떤 아빠가 "자네 혹시... 사별했나?"라는 말을 들었다는 웃픈 실화가 나와 있었다. 아무도 내게 그렇게 묻지는 않았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나들이를 갈 때면 괜히 위축되곤 했다.


p36 내 의식 속 '아빠'라는 말 자체에 '일'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p162 이 생각의 변화는 현재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이 두 가지 생각을 깨부수는 것으로 시작하면 좋겠다. 하나는 '여성, 엄마의 육아는 당연하고 그 희생은 숭고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성, 아빠의 육아는 있을 수 없고, 혹시 있어도 보조적일 뿐이다.' 엄마는 육아에 대한 운명적이고 절대적인 책임이 있고 아빠는 육아 때문에 다른 일을 포기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알 수 없는 이중 잣대.



장면 #2. 2013년 어느 날

큰아이가 6학년, 사춘기가 진하게 들어찼을 때였다.

친구들과의 톡방에 엄마에 대한 욕을 찰지게 늘어놓은 것을 당사자인 내가 보고 말았다. 그 절망감, 수치심에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엄마 욕을 한 아이보다 상황을 그렇게 만든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컸다. 따라서 아이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내가 훈육을 할 수는 없었고 아빠가 그 역할을 맡았다.


친구 같은 남편을 꿈꾸던 남편은 이전까지 한 번도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그때도 그랬다. 조용히 아이를 아파트 벤치로 데리고 나가 한 시간 동안 대화를 하고 들어왔다. 아이는 스스로에게 '한 달간 외출 금지와 휴대폰 반납'이라는 벌칙을 내렸다. 어떤 폭력적인 상황이나 어떤 불편한 기운 없이 평화롭게 해결이 된 것이다. 육아에 문외한이었던 남편이 어떻게 아이와 완벽한 소통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시로부터 3년전, 큰아이가 10살, 작은 아이가 7살 때 우리 부부는 치킨 가게를 운영했다. 24시간을 같이 붙어있던 우리는 장사와 가사와 육아를 둘이 함께 해결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됐다. 저자가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를 전담하게 된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남편 입장에서 보면 육아가 더 이상 아내의 몫만은 아니게 된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 3년은 지난 결혼 20년을 통틀어 우리 부부가 가장 격렬하게 부딪혔던 시기였다. '모든 역할을 균등하게 분담한다는 것'을 정의하고 기준을 정하느라 치열하게 싸웠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남편은 엄마 대신 학교 교통 봉사에 나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됐고 아이들과 관련된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반드시 함께 했다. 아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하던 일 멈추고 귀 기울여 주었으며 아이들로 인해 훌쩍거리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p53 그런 작은 고마움이 쌓이면 부부간의 믿음도 단단해진다. 혼자가 아니고 함께라는 마음을 심어주게 된다.
p153 아내와 지난 군대 시절 이야기는 같이 못 나누지만 치열한 육아 시절의 이야기는 나눌 수 있다.


치열한 몇 년을 보낸 우리는, 온전히 넷이 함께 완성하는 관계를 만들어냈다. 결국 육아란, 아이만을 키우는 과정이 아니라 부부와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p151 애 때문에 못 헤어지고 사는 게 아니라 애 덕분에 더 사랑하며 사는 것이 되었다.
p154 아이에게 진짜 아빠가 되면서 아내에게 진짜 남편이 되는 것. 부부관계, 가족관계에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장면 #3. 2017년 여름휴가

내 디베이트 코치 인생에서 가장 바빴던 해였다.

방학이 되었어도 각종 특강, 캠프, 대회로 하루도 쉴 날이 없었다. 결국 여름휴가를 아빠와 아들만 가기로 했다. 3박 4일의 북경 여행을 떠난 그들이 보내온 사진에는 엄마가 없는 설움이나 아쉬움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친구들끼리 떠난 배낭여행이라도 되는 듯 셋이 신나게 먹고 돌아다니는 모습만 보였다. 나는 그게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다. 대신, 친구 같은 아빠가 된 남편이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육아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남자가 저렇게 성장하기까지 남모르는 고민과 노력을 많이 했겠구나 싶었다. 저자가 말했듯이, 자신의 시간을 아이들에게 많이 쏟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p164 아이와의 관계도 연애와 같다. 내 시간을 쓸수록 상대방이 나의 진심을 알게 되고 마음을 열게 된다.
p165 관계란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려는 시간을 낼 때 만들어진다.



그렇게 남편은 20년 동안 육아 무식자, 육안빠에서 '친구 같은 아빠'가 되었다.

그 결정적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른다. 위에 열거한 장면들은 다분히 내 시점에서 인상적일 뿐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어떤 순간에 위기를 느꼈으며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 깨달음은 아직까지도 이어져 계속 업데이트를 해가고 있다.


작년, 큰아이의 재수를 시작으로 남편은 아이들의 등굣길을 함께 해주고 있다. 출근길에 꼭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것은, 아이들의 편안함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 15분의 루틴이 아빠와 아이가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 어색한 침묵만 흐르는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근황을 묻고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 말이다.


저자에게도 그런 위기와 깨달음의 시기가 있었다. 아이의 어린이집을 알아보느라 100여 개의 목록을 정리하고 직접 전화를 걸었던 때,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이사장이 되었을 때, 아이와 꽉 찬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호주로 떠났을 때. 저자는 위기를 느끼던 순간에 스스로 변화를 모색했고 결국 방법을 깨달았다. 호주에서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지금도 매일매일 아이와 자신을 관찰하고 더 나은 관계를 위해 업데이트를 하고 있다.


기계도 머신러닝을 통해 스스로 업데이트하는 세상이다. 아빠라고 해서 못할 게 무엇이란 말인가. 남편과 저자, 더 나아가 이 땅의 모두 아빠들이 스스로의 자각과 노력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기를 저자는 간절히 원하며 책을 마쳤다.


더 이상 원망만 하지 말자.
더 이상 미루지 말자.
그리고 더 이상 모른척하지 말자.
우리부터 변해야 우리 다음도 변한다.
...
이 책은 '부모만을 위한 육아서'에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를 위한 교양서'를 꿈꾼다. 사회를 바꾸는데 필요한 모두를 위한 책이 되길 바란다. 많이 읽히고 많이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변화는 그렇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p193)

남편의 아빠 육아 업데이트 최신 버전은 '아들과 맞담배 피우기'이다.

6년째 금연 중인 남편이 담배를 피우는 때가 딱 한 순간 있는데, 아버님의 묘 앞에서 담배 두 개비에 불을 붙여드린 뒤 돌아서서 자신도 한대 피우는 때이다. 이제 거기에 하나 더 추가되었다.

큰아이의 입대 직전, 사회에서의 마지막 담배를 피우는 아들 앞에서 남편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얼마 전 면회를 갔을 때도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몸에 안 좋으니 이제 그만 피워~"라는 조언을 해주며 말이다.

진정한 친구다...


남편이 아빠에서 친구가 되어가던 과정을 찾아보다가 한데 묶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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