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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02. 2021

< 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 > - 진아

엄마와의 삶이 완벽했다고?

그럴 리가... 역설적인 제목인 게 분명해.

당신과 엄마 사이에는 어떤 러브스토리가 존재하냐고?

그런 게 있을 리가... 안 싸우면 다행이지.


진아 작가님의 책을 받고 앞면과 뒷면을 먼저 둘러본 나는 이 이질적인 분위기의 책을 꽤나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펼쳐보았다. 내게는, '엄마'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특유의 복받치는 정서와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이라는 것들이 '엄마'라는 단어에 의해 희미해졌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엄마는 그랬다. 아련하고 짠하지만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을 머리에 이고 넘어서야 하는 존재...


엄마와의 사랑이라...

남편과의 러브스토리, 아이들과의 러브스토리라면 얼마든 생각해내고 글로 담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와의 사랑이야기를 생각하니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검색창에 사랑의 반대말이 무엇일까를 내내 검색했다. 미움, 증오, 무관심, 두려움... 엄마에 대한 감정은 그런 것들에 더 가까웠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을 자격이 있을까를 고민하며 첫 장을 펼쳤다.



결핍

버려진 기억은 티끌보다 작았고 거두어진 기억은 태산보다 컸다.  
p99

작가님은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성장했다. 타인들은 그것을 결핍이라고 말하겠지만 작가님에게는 그것이 결핍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충만함이 있었다. 외조부모님과 어머니가 그 모든 것들을 채워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당당했고 충분히 행복했다.

나에게는 어떤 결핍이 있어 엄마와의 사랑을 논하지 못하는가? 난 엄마도 있었고 아빠도 있었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평범함을 누릴 정도는 되었고 웃음꽃이 피어나던 기억도 많다. 그런데 왜 나는 엄마를 떠올릴 때 충만한 사랑을 떠올리지 못할까? 이 책은 내게 묵직하게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어쩌면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빨리 해결하고 싶었을 주제였다.



그녀의 엄마와 나의 엄마

언제나 더 어려운 사람, 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살아가라고, 누리는 것과 가진 것이 많지 않더라도 더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p102

엄마의 말과 행동은 선한 씨앗이 되어 나에게 뿌려지고 있었다.
p103

도시락 뚜껑을 열 때마다, 엄마의 넘치는 사랑이 가장자리를 타고 흘러내리곤 했다.
p168

언제 어디서든, 무조건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토록 거대한 에너지가 되었다.
p194

작가님은 책 곳곳에서 엄마에 대한 존경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며 늘 작가님을 믿어주었던 어머님 덕에 작가님 역시 그런 엄마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게 된 것이리라.


나의 엄마는, '사람은 늘 밑을 보며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에게 그래서 발전이 없다고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하면 '누가 누굴 도와주냐'며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자기 효능감을 느끼려는 노력을 했다. '오지랖 끝판왕'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심 뿌듯해하던 사람이다.


나의 엄마는, 도시락 싸기를 너무 힘들어했다. 기대를 가득 안고 도시락 뚜껑을 열면 늘 싫어하는 콩장, 멸치만 가득했다. 중학교때 다니던 절의 중등부에서 소풍을 가던 날은 김밥 싸기가 귀찮다며 그냥 도시락을 싸주었는데, 김밥 사이에서 콩장 가득한 맨밥을 먹느라 체할 것 같았던 기억이 난다.


나의 엄마는, 늘 나와 가족들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빵을 살 때 포인트 적립을 했는지 쿠폰 할인을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건 귀여운 의심에 속했다. 할 일을 제때에 했는지, 놓치면 안 되는 약속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했고 실수를 하면 "거봐~ 내가 뭐랬어."라며 나쁜 예감은 꼭 들어맞는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빠와 나, 동생은 엄마의 의심을 불식시키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했다. 받으라는 할인 다 받아서 싸게 구입했고, 하라는 대로 꼼꼼히 확인해서 놓치는 것 없이 완벽하게 일처리를 했다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그러면 엄마는 약간 미심쩍어하면서도 넘어가 주었다.


그렇게 작가님의 엄마와 나의 엄마는 극과 극에 서있는 듯 보였다.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고는 아이를 낳았고 길렀다는 것 외에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책을 읽을수록 점점 서글퍼졌다.



우리의 엄마

언제나 외로웠던 삼십 대의 엄마가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p80

한 번도 자신의 이름으로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엄마가 요즘 들어 자꾸 눈에 밟힌다.
p110

가끔 엄마와 목욕 바구니를 들고 나서던 그 새벽이 생각난다.
p148

이 책은 참 이상했다. 작가님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담히 해주면서 자꾸 나의 엄마를 불러내고 있었다. 내 꽁한 마음속에 큰 똬리를 틀고 있는 삐딱함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게도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님의 어머니처럼 이른 새벽 나와 동생의 손을 잡고 차가운 공기와 깨끗한 물이 준비되었던 목욕탕에 함께 해주던 엄마가 말이다. 우리 둘의 때를 열심히 밀어주고 나서야 겨우 당신의 때를 밀었으며 큰딸에게 등을 내어주던 엄마.

도시락 싸는 건 힘들어했지만 매일 손수 만든 반찬으로 풍성한 저녁을 챙겨주었으며 소풍 가는 날 반 아이 모두에게 나눠줄 떡을 찌고 여름이면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돌렸던 엄마.

생활비는 없어도 공납금에 독서실비까지 꼬박꼬박 손에 쥐어주던 엄마.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형편상 포기해야 했고 딱한 마음에 결혼한 남편과는 늘 티격태격하느라 행복에 목말랐을 엄마.

옛날엔 엄마가 무지했고 먹고살기 바빠 너희들에게 좀 더 살가운 엄마가 되지 못했다며 미안해하는 엄마...

그 모든 엄마가 보이고 기억나기 시작했다.



나와 엄마의 러브스토리

책을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급기야 책을 덮으며 작가님이 던지신 "당신과 엄마 사이에는 어떤 러브스토리가 존재하나요?"라는 질문을 받고는 서늘해지는 마음과 복잡한 머릿속 때문에 어쩌지 못했다.

나에게 엄마와의 러브스토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있었는데 애써 잊고 감추려 했다. 엄마와 나는 사랑이 충만하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많이 어색했다. 그게 난 미움,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생각과 주장이 너무 센 엄마가 미웠고 그런 엄마를 거역해 갈등을 만들어내는 게 두려웠다. 동생과 나는 "절대 엄마처럼 늙지 말자. 서로가 그렇게 변해가면 꼭 말해주기!"라고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난 엄마를 미워하거나 두려워했던 게 아니었다. 그녀를 대하는 내 솔직한 감정은, 슬픔이었다.

8남매의 막내였지만 어리광 한 번 제대로 부리지 못하고 눈치 보며 살아야 했던 엄마의 어린 시절. 부잣집 오빠네 집에서 살다가 가난하고 불쌍한 어떤 이에게 측은지심을 느껴 시작한 결혼. 시부모님 병시중에 세명의 시동생까지 감당해야 했던 젊음. 과묵하다 못해 소통조차 되지 않는 남편.

그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감정이나 욕구까지도 꾹꾹 참아내다가 결국은 터져버린 엄마의 분노와 짜증을 감당할 수 없던 나는, 슬프면서 힘들었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했고 함께 아파하지 못해 회피했다.


엄마는 강한 여자가 아니었다. 한없이 낮은 자존감에 얇은 유리창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맘 편히 기댈 곳을 찾지 못해 한껏 경계를 하며 날을 세우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랑에 목말랐고 관심에 굶주렸다.



이번 생에...

누군가는 다음 생에 자기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고 한다. 이번 생에 넘치게 받은 사랑을 다음 생에 꼭 돌려주고 싶다며. 그렇다면 나는 이기적인 걸까? 나는 또다시 엄마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꼭 이 생에서처럼 더없이 사랑받으며 살고 싶다. 그 이상의 축복은 없을 것 같다.
p138

난 다음 생을 기약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로 태어나도 사랑을 돌려줄 자신이 없었고 딸로 태어나도 완벽한 사랑을 기대할 수 없었다.

늘 마음 한편에 찬바람이 쌩쌩 드나드는, '엄마'라는 구멍 하나를 만들어놓고 사는 나의 이번 생 안에 해결하고 싶었다. 엄마의 '엄마'가 아닌 엄마의 '딸' 그대로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다. 나의 사랑하는 마음이 상대도 '사랑'으로 느 수 있도록 온전하게 전하는 방법을 말이다.

이번 생이 끝나기 전에 서로로 인해 완벽하고 충만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 구체적인 방법도 모르겠고 가능하다는 확신도 없으며 제대로 된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작가님이 마지막에 던진 질문에 언젠가는 답하고 싶다는 열망이 차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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