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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22. 2021

완벽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법

기억이 희미했다. 분명 해본 기억은 있는데 구체적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즐거웠던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무섭고 음울한 게임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 오징어 게임 >  이야기다.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해 질 녘까지 즐겨하던 놀이와 동명의 드라마가 글로벌 넷플릭스 2위, 미국 넷플릭스 1위를 기록했다. 추석 연휴는 그러라고 있는 거였다. 드라마 정주행.


"그래서... 드라마를 보고 뭘 느꼈어? 뭘 얘기하는 드라마 같아?"

드라마를 보지 않는 남편, 정확히는 요약해주는 유튜브 채널로 드라마를 이해하는 남편의 질문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드라마에 대한 예의는 쥐똥만큼도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대충 훑어봐도 줄거리와 메시지가 딱 나오는걸 왜 시간 들여 보냐는 사람이다. 그가 물어보는 '드라마 감상평'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또 눈알을 굴리며 대답을 생각하고 있는 나란 사람도 참...


이미 드라마의 줄거리와 감상평이 브런치, 블로그, 유튜브에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한마디.


삶의 벼랑 끝에 놓인 456명의 사람들이 누군가에 의해 어떤 장소에 모이게 되고 게임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1인당 1억, 총합 456억의 목숨 값을 상금으로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 게임', '유리다리 건너기', '오징어 게임', 총 여섯 개의 서바이벌 게임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을 다룬 작품이다.

여느 드라마처럼 호불호가 갈리고 드라마가 가진 한계를 지적하는 글도 많다. 설정이 억지스럽다, 죽는 방식이 단조롭다, 작위적이다, 허점이 많다, 뭘 말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등등.


완벽한 드라마가 없는 것처럼 완벽한 사람,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복잡, 다양하다 못해 종잡을 수 없는 게 인간이고 늘 양가적인 감정에 고달파하는 게 삶이니 말이다.

* 성공한 삶을 살고 싶지만 타인을 밟고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는 않다.

* 타인을 이기고 싶지만 패배한 상대와 등 돌리는 관계가 되고 싶지는 않다.

* 목적한 바를 이루고 싶지만 아등바등 자존심 구겨가며 성취하기보다는 여유롭고 평화롭게 이루고 싶다.

이렇게, 양립하기 힘든 가치, 존재하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이 인간임을 보여주는 드라마라 생각된다.


오징어 게임을 떠올리는 게 유쾌하지 않은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돋보이는 활약으로 우리 팀이 이기기를 희망했지만 그러기에는 전략, 전술, 파워에서 난 늘 밀렸다. 공격팀일 때는 깃발을 꽂을 한 명을 위해 희생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고 수비일 때는 우왕좌왕했다. 이겨도 재미없고 지면 눈치 보이는 게임이었다. 어쩌다 나로 인해 게임이 이겼다고 해도 이미 우리 팀 상당수는 죽고 없었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새도 없이 모두가 다음 판을 재촉했다. 애초부터 누구도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게임이었다.

삶이라고 다를까. '네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너야!'라는 달콤한 잠언들이 넘쳐나지만 과연 그럴까. 각자가 주인공이 되고 싶고 주목받고 싶어 서로를 견제하고 밟아서지만 한편으로는 타인에게 신경 안 쓰는 척, 자신 삶에만 집중하는 척하는 것 아닐까.


드라마 전반에 걸친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최후의 승자를 위해 455명은 들러리일 뿐이었다. 결국 공격팀이 이겼지만 죽은 455명에게는 상처뿐인 영광에 불과하다. 그러니 승자는 찜찜하다. 455명의 환호와 축하가 있어야 하는데 죽은 자들은 말이 없으니 말이다. 비로소 삶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하기엔 조연들이 너무 없다. 그러니 받은 상금을 신나게 쓸 수도 없었던 것 아닐까. 희생자들에 대한 죄책감, 부조리한 게임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이겨도 즐겁지 않고 개운치 않은 것 아니었을까. 게다가 독보적인 승자도 아니다. 게임은 반복되고 새로운 승자는 계속 양산된다. 이겼지만 소모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괴롭다. 뛰어난 전략, 전술, 파워를 기반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리하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하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 게임 전체를 기획했던 001번 노인은 456번에게 마지막 게임을 제안했다. 길에 쓰러진 취객을 12시까지 구해주는 이가 없다면 노인 자신이 이기고 구해주는 이가 있다면 456번이 이긴다는 게임. 12시 직전 취객을 구해주는 이가 나타나 456번이 이기고 001번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 장면에서 남편이 한마디 던졌다.

"저것도 노인이 다 설정해놨던 결말 아닌가?"

아... 드라마 무시론자 남편의 말에 설득력이 있다. 456번이 이긴 것 같지만 그마저도 미리 세팅된 대로 얻은 승리 같다는 논리... 나 혼자의 힘으로 드라마를 이해하고 즐긴 것 같지만 드라마도 안 본 남편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기분이 됐다. 에잇!


가면을 쓴 중간관리자가 '이병헌'일 것 같다는 짐작을 하고 최종 보스가 001번 노인일 것 같다는 추리를 한 나 자신에 상당한 우쭐감을 느꼈지만, 그 역시 뻔한 전개요 뻔한 추리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 잘난 맛을 찾다 보면 드라마가 더 재밌게 느껴지고 시즌2가 기다려진다. 시즌2는 456번과, 죽은 줄 알았던 이병헌의 동생이 새로운 게임에 도전하면서 게임의 배후를 밝히는 내용이 될 것 같고, 시즌3은 드라마의 프리퀄로 이병헌의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이 역시 뻔한 예측이지만 난 또 기대하며 즐거워할 테고, 남편은 보지 않은 드라마를 품평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연애시절 남편과 대차게 싸울 때 던진 말이 있다. 그는 기억이 안 날지 모르겠지만 난 그 말이 더 큰 싸움을 불러왔던 걸 알기에 기억한다.

"사람은 다 자기 잘난 맛에 살게 되어있어!"

솔직히, 살면서 자기 잘난 맛을 온전히 느낄 일은 거의 없다. 저 혼자 잘나서 기쁠 일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난 맛을 찾아 헤매는 게 삶이다. 결말이 뻔한 게임에 뻔하게 걸어 들어가는 게 사람인 것이다. 삶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 안에서 내 작은 '잘남'을 찾기 위해 순간순간 발버둥 치는 게 삶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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