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는 떨 만큼 떨어야...

by 늘봄유정

작은 아이의 기말고사가 끝나던 날, 아이는 평소처럼 친구들과 무한리필 고깃집에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백신을 맞지 않아 친구들까지 모두 입장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청소년은 아직 백신 패스 예외대상이지만 업소에 따라 벌써 적용하는 곳도 있더군요.

결국 백신 미접종 청소년을 받아주는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먹은 아이는 친구들과 PC방에 갔습니다. 또다시 거절...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방에 들어가 조용히 게임을 했습니다. 다음날 학교를 가야 하지만 시험이 끝난 날 만큼은 자신을 위해 한껏 보상, 포상을 주는 아이이니 조용히 간식을 주고 문을 닫아주었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오래간만에 영화관에 가고 싶다는 야무진 꿈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대상포진을 앓은 것이 석 달 전 일이라 면역력 저하가 걱정돼 차일피일 미룬 것이 결국 오늘의 고립을 야기해버렸네요.


...

고등학교 2학년 마지막 시험, 고등학교 전체 성적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시험을 앞두고 마음에 동요가 일었던 것일까요? 시험을 앞두고 아이는 전에 없이 유세를 부렸습니다.

평소엔 엄마 사정 상 학원 픽업이 힘들게 되면 자전거나 마을버스를 타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30분을 걸어 학원을 오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약속이 있어 데려다 주기 힘들겠다고 한 어느 날, 순간 짜증스러워하는 아이의 표정을 봤습니다.

"집에 들렀다 학원 가기는 시간이 애매하지? 학교에서 학원으로 바로 가야겠네?"라고 묻는 제게 평소 같으면 "괜찮아~"라는 다정한 답이 돌아왔을 텐데 그날은...

"모든 동선이 다 꼬이잖아..."라며 살짝 싫은 티를 내더라고요.

평소 엄마를 많이 배려하는 아이였던지라 아이의 작은 짜증에도 엄마는 당황했습니다.

약속시간을 미루고 학원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해결을 했지만, '웬 유세야? 자기도 이제 고3 된다는 건가? 저걸 그냥 둬야 하나? 성질 같아서는 확! 마!'라며 속엣말을 삼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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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이틀째 되던 날 저녁에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극강의 단맛을 찾아 부엌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있는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며 말이죠.

배달어플 속에 있는 생크림과 초코잼이 잔뜩 올라가 있는 와플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불행히도 배달은 종료가 되었고 전화를 해보니 픽업은 가능하다고 했죠.

평소 같았으면 "됐어~ 엄마 힘든데, 내일 사줘~"라고 참았을 텐데 그날따라 아이는 간절한 눈빛으로 절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힘든 거 알아요. 하지만 전 지금 그걸 꼭 먹어야 살 것 같단 말이에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귀찮음을 무릅쓴 엄마가 포장해 온 와플을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순식간에 먹어치웠고 방으로 들어가 열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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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에 애들이 많이 예민해지기는 하나 봐. 집집마다 아이들 짜증이 심해지고 엄마랑 많이 부딪힌다고 그러더라."

"거봐~ 나 정도면 엄청 무난한 거야~"

"알지알지~ 너 정도면 최고지~ 그런데 엄마가 때로는 많이 참고 있다는 것만 알아줘~~ 하하하"

"하! 뭐래~~ 나도 엄청 참고 있거든요~~?"

"알지알지. 표현도 안 하고 혼자 참고 있는 거 알지..."

괜히 한마디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은 저입니다.


'아이와 부딪히지 않는다'는 것을 단순히 '사이가 좋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누를 범하지 말하야겠습니다. 그 말은 어쩌면 '아이가 많이 참고 있다'는 것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때로는 아이의 유세도 기분 좋게 받아주고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기민하게 감지하는 일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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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힘들었던 고등 2년의 싸움을 끝낸 용사는 이번 주말 동안 가상세계에서의 격렬하고도 화끈한 싸움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 즐거운 싸움이 끝나면 현실의 입시를 본격적으로 마주할테고 내년 수능 때까지 몇 번의 유세를 더 부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조용히 받아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입시가 뭐 별건가, 고3이 벼슬인가 싶어 엄하게 대할까 싶다가도,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될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기로 했습니다.


세상에 한 명쯤은 유세 떨 사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엄마일 때, 가장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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