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학급의 반정도 되는 아이들이 가정학습을 신청한 상황이라 교실이 휑할 텐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매일매일 책가방을 꾸려 학교에 갑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하던 1년 전과 사뭇 달라진 아이의 모습이, 반갑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귀가후 아이가 책가방에서 수줍게 종이 하나를 건네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반 친구들이랑 롤링 페이퍼했어~"
"와. 아직도 그런 걸 하네? 어디 볼까?"
'너는 생각보다 웃긴 것 같애. 같은 학원인데, 친해지자. 나도 소심해서;;ㅋㅋ 파이팅!'
'공부는 잘하는데 마피아는 잘 못하더라. 파이팅'
'공부광? 대단해. 쉬어가면서 살살해. 고3 파이팅. 성공하길...'
'너... 생각보다 웃기더라. 첫인상은 이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좀 인간적이야. 좋아! 내년에도 공부 열심히 해!'
'너한테 의지가 많이 되더라. 내년에도 겹치는 과목 많으니까 같은 반 됐으면 좋겠다. 사랑해(게이 아님)'
"오호~ 이제야 네 본모습을 공개했나 보지? 웃기다는 말이 있네?"
"그럼~ 요즘 내가 빵빵 터트려주지~"
"학교에서 매일 마피아 게임한다더니, 얼마나 못했길래 애들마다 마피아 못한다고. 하하하"
"아... 너무 어려워. ㅎㅎ"
고등학교 시절 내내 어두웠던 아이의 표정이 밝아진 것, 학교에 다녀오면 응당 나눠야 했을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이제는 확진자가 나와도 등교 수업을 강행하는 학교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곧이어 아이는 무심한 듯 한마디를 더합니다.
"오늘 OO이가 나한테 그러더라? '너 곧 연애하겠어~~'라고."
"엥? 무슨 소리야? 너, 누구 좋아하는 애 있어?"
"날 좋아하는 애가 있다나 봐. 곧 고백을 할지도 모른다 하더라고. OO 이한테 일러뒀어. 그 여자애한테 직접 와서 말하라고."
"아... 우리 아들들은 무슨 마가 꼈나... 여태 모태솔로로 살다가 왜 고 3만 되면 연애를 한다고 난리냐... 너 형 고3 때 기억 안 나니? 수능 17일 남겨두고 페이스북에 '오늘부터 1일'올라온 거? 동네 아줌마들이 알려줘서 알았잖아. 형이 그때 뭐라고 했는지 알아?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모태솔로 딱지 떼어보고 싶다고 했어. 설마, 너도 그런 꿈을 꾸는 거야?"
"하하하. 기억나지."
"만약에 여자 아이가 고백하러 오면 말이야, 최대한 마마보이처럼 찌질하게 말해. '우리 엄마가 고3 되니까 여자애 사귀자 말라고 했쪄!'라고. 알았지? 진심이다!"
"푸하하. 그게 뭐야~"
아들은 끝까지, 연애를 안 할 거라거나 고백을 안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여지를 남겼죠.
"요즘 애들 좀 이상해졌어~ 고3 앞두고 여기저기서 연애 시작하고 난리야~"
작은 아이는 큰아이와 성격도 다르고 학교에서 보여주는 모습도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여태 안 하던 연애를 고3 때 꿈꾸는 건 대체 왜...
공부의 근원적인 의미를 알려주지 않는 학교 교육에 신물을 내며 학교를 싫어하던 아이에게 나타난 긍정적인 변화를 환영하지만, 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중간이 없습니다. 제가 예상하는 혹은 딱 좋아하는 정도를 늘 넘어서지요.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고 학교가 갈만한 곳이 된 것까지는 딱 좋았는데... 학교에 가고 싶은 불순한(?ㅠㅠ) 이유를 들이려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