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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01. 2019

D-100 프로젝트 < D-58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사드려~~~ 에이쒸... 그게 뭐라고~~"

친구의 그 한마디에 199,900원짜리 시계를 계산해버렸다.


runner들을 위한 최고의 시계라며 갖고 싶다고 말한 게 한 달도 넘었는데 그걸 마라톤이 끝난 후에야 사줬다.

사주려고 작정하고 갔다가 "절대 사지 마! 필요하면 내가 살게! 며칠 더 고민해보고~"라는 남편의 말에 그냥 돌아서 나왔더랬다. 어차피 이 집안에서 소비를 담당한 사람은 나이고, 계산기 두드려가며 알뜰하게 살림하는 여자도 아니면서 그때는 왜 주저했는지 모를 일이다.


남편은,

빠듯하다 못해 구멍 투성이인 가계 경제 때문에 자기를 위한 그 무엇 하나도 변변히 사본 적 없는 남자다.

마라톤을 하면서도 운동복이든 마라톤화든 절대 사지 않았다.

'흔한 아저씨 룩'은 절대 피하고 싶어 하고 옷에 관심도 많지만 자기 옷 살 때는 "됐다! 다음에 사자!" 하는 사람이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남편은 유복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사랑받는 막내로 자라 아르바이트도 해본 적 없고 돈 때문에 고민한 적도 없는 삶을 살았다. 대학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혼 한 이후에는 철없는 나를 만나 둘 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명품백을 좋아한다거나 외제차를 사고 치장하는 등에 소비를 한건 아니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판단으로 교육비와 식비에 분별없이 '투자'를 했다. 해마다 해외여행도 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결혼 20년이 지난 지금 안정적인 삶보다는 나날이 불안한 가계를 꾸리게 됐다. (나의 부족함때문이라는 생각에 미안함이 크다.)


무튼, 아이들에게 더 많은 뒷바라지가 필요한 시점이 되고 보니 자기를 위한 것부터 먼저 포기하는 모습에 맘이 아팠다.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거나 뒤로 꿍쳐놓은 목돈이 있는 것도 아니니 무턱대고 다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 시계만큼은 꼭 해주고 싶었다.


함께 시계 구경을 간 친구가 말했다.

"난 아직도 남편의 그 눈빛이 잊히지가 않아.

작년 초겨울 백화점엘 같이 갔어. 거기서 남편이 비싼 점퍼를 입어봤는데 너무 예쁘게 잘 맞더라고. 남편이 '살까?' 하는데 너무 고가라 선뜻 말이 안 나오더라. 그래서 '돈 있으면 사~~'라고 했지. 거울에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며 점퍼를 보던 남편 눈빛이 눈에 선해. 까짓것 사줄걸 하기에는 여전히 비싼 옷이지만 참 미안하더라... 그니깐... 그냥 사줘~~~ 그깟 20만 원이 뭐라고~~~"

그 말에 용기를 냈다.


친구의 남편이나 내 남편이나... 주변 대부분의 남편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정은 비슷하다.

아내들만 많은 것을 포기, 희생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남편들도 청년시절 꿈꾸었던 중년의 삶을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아이의 학비를 위해 사고 싶은 차를 포기해야 하고, 새끼 입에 고기 들어가는 것을 보며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시험기간이라도 되면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쥐 죽은 듯이 휴대폰으로 야구를 봐야 한다. 회사를 가지 않는 주말이면, 아이들은 학원 가고 엄마들은 그런 아이들 라이드 하느라 아무도 없는 집을 혼자 쓸쓸히 지킨다.

한 달 내 뼈 빠지게 일해 번 돈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쓴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고 오히려 죄악시된다. 물론 결혼을, 출산을 선택한 순간 감수해야 하는 미래였지만 생각보다 더 씁쓸할 것 같다. 아내들만 결혼, 출산과 함께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는 게 아님이 나이 드니 점점 보인다.


언젠가도 한번 얘기했지만, 나만 힘들고 나만 희생했다고 생각하면 결혼생활은 불행하게 느껴지고 남편이 꼴 보기 싫어진다. 우리가 알던 그 젊은 청년에게도 '꿈꾸던 미래'가 있었고, 즐기고 싶던 것들이 있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할 것이다.  


시계선물을 받은 남편은,

크리스마스 선물 받은 아이마냥 너무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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