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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26. 2021

자신감이라는 것이 차오른다.


"아들아. 아빠가 재밌는 농담을 들었는데 말이야? 우리처럼 잘 생긴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개그더라."

남편의 뜬금없는 이야기에 아들과 저는 뭔 소린가 싶었습니다.

"무슨 개그인데?"

"어떤 사람이 그러는거야. '제가 얼굴은 아주 세련되게 생겼는데 말은 세련되게 잘 못해요~'라고. 좌중이 빵 터졌어. 못생긴 사람이었거든. 그 사람이 잘생겼어봐. 그 말이 얼마나 재수 없게 들리겠어? 못생긴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까 센스 넘치는 유머가 되는 거지. 하하하. 너랑 나처럼 잘 생긴 사람들은 농담도 함부로 던지면 안 된단다 아들아. 낄낄낄"


"뭐야~~ 둘 다 재수 없어~~"

"재수 없다니. 사실인걸. 하하하하"


"아... 그렇구나... 나는 쓸 수 있는 유머겠다. 하하. 제가 얼굴은 이쁘게 생겼는데 말은 이쁘게 못 해요라든가 제가 몸무게는 많이 안 나가는데 생활비는 많이 나가요... 같은 말. 아주 그냥 좌중의 배꼽이 죄다 빠지겠네."

"에이... 당신이 어디가 뭐 어때서~~ 자신감을 가져~~ 그 사람이 자신감이 없었다면 절대 그런 농담 못 던졌겠지. 못생겼어도 크게 개의치 않으니까 그런 농담도 할 수 있었던 거야."

"거봐~ 못생겼다는 거네~ 흥! 칫! 뿡! 나, 자신감 있거든~?"

아침부터 온 가족이 한바탕 웃었습니다.


...

남편은 제게 자신감 가지란 말을 종종 합니다.

주로 제가 제 자신을 낮추거나 부족한 점을 말할 때 그러죠.

예전에 한 지인도 제게 말했습니다.

"송유정 씨는 자신감이 왜 그렇게 부족해요?"

칭찬을 받았을 때 겸손을 떨었더니 그러시더군요.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자신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게 있으니까요.


일단, 제 체형이 싫습니다.

평생 다이어트했지만 다이어트는 요요와 늘 한 세트더군요.  

전 외모만 봐도 끌리는 사람이고 싶고, 딱 떨어지는 정장 핏이 어울리는 강사이고 싶습니다. 외모의 훌륭함이 매력과 전문성을 한껏 높여준다고 생각하죠.

그렇다 해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키워라, 실력으로 승부해라' 이런 말은 와닿지 않습니다. 제 내면이 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전문성도 어느 정도 갖췄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신언서판이라고, 외모도 어느 정도 제 매력과 전문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건 맞다는 입장입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듭니다.

제 시간을 내어 하는 일들이 그저 자아성취에 그치고 휘발되어버리는 것은 돈에 대한 현실감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것만으로도 알뜰살뜰하게 꾸려서 집을 샀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없이 위축되곤 하지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도 불만입니다.

이것저것 벌려놓기만 하지 한 분야에서 끝장을 보지 못합니다. 특히 글쓰기가 그러하죠.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 작가라는 이름에 도취되어 가졌던 야망이 이제는 사그라들어서, 그저 쓰는 행위만도 좋다며 눌러앉아버렸죠. 자기 합리화 끝판왕...


그렇지만 전, 자존감이 낮고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은 아닙니다.

저라는 사람을 꽤 좋아하거든요. 제가 살아가는 방식, 생각에 꽤 만족합니다. 뭐든 하면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믿음도 있습니다.

후덕한 체형은 상대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기에 딱 좋지요. 날렵한 턱선, 날카로운 인상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한 지인은 제가 10kg 정도 감량했을 때 신신당부했죠.

"유정아~ 너는 살 빼면 안된대이~ 넌 찐 게 이뿌다~. 살 빼니까 이상하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세상에 다양한 관심을 갖고 산다는 것이 흐뭇합니다. 이것저것 관심을 갖고 움직이다 보니 조금씩 수입으로 연결이 되기도 하고요. 경력 단절이 아닌 경력 전무한 40대 여성이 이 정도면 열심히 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돈이 나를 따라오게 해야지, 내가 돈을 쫓아다니면 안 되는 거여!"

일흔 넷이신 아버지. 돈은 없으시지만 늘 평온한 얼굴이십니다.


글쓰기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꾸준히 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는 한낱 쓰레기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글을 발행해놓고서도 저는 흐뭇합니다. 글을 써서 제 마음이 편안해졌고, 글을 써서 삶을 기록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브런치라는 곳이 전문작가만 있어야 하는 곳도 아니고, '그저 쓰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이 얼마든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라 믿기에 이곳에 몸담고 있는 게 참 좋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며 "캬~~~ 잘 썼다~"라며 자화자찬하는 맛도 있습니다.


싫은 건 싫은 거고 불만은 불만이지 그로 인해 스스로가 싫어지거나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늘 경계합니다. 제가 절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건 어디까지나 제 선에서 그쳐야 한다고 말이죠. 자존감,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고 당연히 필요한 마음입니다. 내 안에 충만한 자신감으로 하루를 또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차올라 상대에게까지 흘러들어 가면 자신감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쓸데없이 자만감만 넘치는 사람으로 보인다고 믿습니다.

어디까지나 평가는 상대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기 검열과 평가를 수시로 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하는 시간도 많죠. 그것이 자신감 결여라고 비쳐도 하는 수 없습니다. 그저 조용히 나 자신과 내 길, 내 글을 사랑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렵니다.

'나 잘났다, 내가 최고다, 내 글 멋지다'라고 표현하는 것만이 자신감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뭐 그리 잘난 게 있을까요, 내가 하는 일만 최고겠습니까, 저에게는 멋진 글 입니다만...'이라는 저의 겸손은 자신감의 결여 때문이 아닙니다. 상대의 냉정하고 혹독한 평가를 나와 분리시키기 위함입니다.


...

다음 주에 발행할 글을 미리 써놓고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어머어머... 왜 이렇게 잘 썼니? 기발한데? 웬일이니~"

글을 쓰면 쓸수록 자신감이 차오릅니다. 그저 쓰기만 할 뿐인데도 그렇습니다. 브런치라는 곳은 그러라고 생겨난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타인의 글쓰기가 타인의 자신감으로 이어지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응원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전, 글을 쓰면 자신감이 차오르는 사람입니다.

단, 제 안에서만 자신감을 즐기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제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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